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낫, 괭이, 곡괭이, 약괭이, 톱을 가지고 뒷골로 갔다. 눈이 벌써 녹았다. 한참을 파들어 가자 내 장단지(종아리)만큼 굵은 칡이 나왔다.
낫, 괭이, 곡괭이, 약괭이, 톱을 가지고 뒷골로 갔다. 눈이 벌써 녹았다. 한참을 파들어 가자 내 장단지(종아리)만큼 굵은 칡이 나왔다. ⓒ sigoli 고향-맛객
백아산은 눈이 많이 내린다. 서해에서 만들어진 물방울이 이 산에 부딪혀 눈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새벽같이 일어나 바지게에 져다가 냇가까지 옮겨 오전 내내 눈을 치우면 등허리에도 땀이 뻘뻘 났다. 앞산 뒷산 동서남북에 온통 눈꽃이 피면 바둑이만 좋아하는 게 아니다.

눈이 펄펄 내려 눈이 모두 녹으려면 며칠이나 기다려야 한다. 복조리도 벌써 섣달 중순에 맞춰 다 절었으니 재료 자체가 없어 올해 해야 할 양도 바닥이 났다. 예전엔 몹시 추워 군불을 하루 세 번을 때야 했으니 나무 하는 날과 양도 보통이 아니었지만 이럴 때 한번 며칠 쉬어가면 꿀맛 같은 기분이다.

80년대 90년대를 거치면서도 연탄아궁이를 구경할 수 없도록 가난한 산골 마을이니 나무를 쌓아둔 더미가 집채만 하게 서너 개는 있어야 한겨울을 날 수 있었다. 농한기라고 해도 농번기 못지않게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시절이 그 때다.

우리 마을 이름은 양지마을이다. 양지 뒷골은 웬만큼 와서는 쌓였던 눈도 봄바람에 녹듯 금세 자취를 감추고 말았으니 전우놀이나 숨바꼭질, 썰매, 연날리기를 하고 사냥한다. 그래도 무료하면 소일거리를 찾게 마련인데 궁금한 입도 달랠 겸 별의별 상상과 기괴한 놀이를 떠올린다.

조청단지를 끼고 살고 깍쟁이에 설탕물을 얼려 먹어도 온 몸을 근질이는 이보다 더 성가신 게 궁상을 떠는 어린 마음이다. 차라리 밖으로 나가 꼼지락거리는 게 낫다는 생각에 이른다. 이 때 해마다 거르지 않고 했던 놀이 겸 작업이 칡 캐기였다.

드렁 칡은 한 때 옷감으로 널리 쓰였고 늦여름엔 보랏빛 꽃을 따서 술을 담근다. 가을부터 겨울까지는 넝쿨을 떠서 나무다발을 묶는 요긴한 재료였다. 밭 가 쪽으로 칡이 뻗기 시작하면 쑥대밭보다 엉망진창이 되니 발을 디딜 틈을 주지 않고 잘라내는 게 상책인데 요놈의 칡은 뿌리로도 우리에게 근사한 주전부리를 선사한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콩과 식물이다.

보랏빛향기 가득한 칡꽃으로 술을 담근다.
보랏빛향기 가득한 칡꽃으로 술을 담근다. ⓒ sigoli 고향
캐는 시기도 아무 때가 아니다. 서리를 맞고 죽은 듯 있지만 웬만한 추위에는 아랑곳 않고 굳건하게 땅 속에 버티고 있으니 음력으로 시월이나 동짓달보다 이월 전까지 섣달이나 정월에 캐야 한다. 질겅질겅 씹는 맛이 좋다고 양력으로 3월에 캤다가는 벌써 땅 속에서는 우윳빛 싹에게 맛난 물을 빼앗기고 만다.

누구에게나 늘 한 몸이듯 친한 동무가 있게 마련이다. 마치 사립문을 바라보고 있는 방향이 세 집이 하나로 통한 듯 붙어 있지만 유병용이네는 사촌지간 왕래가 잦을 뿐 아니라 대궐 같은 대문이 턱 버티고 있으니 아쉽다.

병문이네는 집안 간에 아짐과 아제로 허물없이 지낼 뿐 아니라 아이들끼리도 아무 때고 드나들 수 있는 막역한 사이다. '만만한 게 홍어 뭐'라고 했던가. 병문이 집을 어슬렁거렸다.

"야 병문아 뭣허냐?"
"누구여?"
"누구긴 임마. 성님도 몰라보냐?"
"들와."
"고게 아니고…."
"왜?"
"칡캐로 안 갈텨?"
"눈이 녹았을랑가 몰러."
"가보면 알제. 뒷골은 하마 녹았겠제. 대밭 가상은 언제나 일찌감치 녹잖녀. 다 챙겨 놨응께 옷 하나 걸치고 나와라 알았제?"

갈경이, 갈전리, 갈현리에만 칡이 많은 게 아니다. 우리 마을 뒤쪽 대밭 가에도 칡이 많았다. 괜스레 많은 사람을 대동하고 가봐야 시끄럽기만 할뿐 물건다운 칡 하나 발견하여 나누고 나면 안 가느니 못하니 오늘은 두 집 형들도 빼고 단둘이 가기로 작정을 했다.

괭이 약괭이에 삽과 낫 톱을 챙겨 고샅길 뒤쪽을 돌 무렵 후배 용기가 어기적거리며 나온다.

"성 어디 간가?"
"보면 몰러? 칡캐로 간다. 같이 갈텨?"
"째까만 지달려 성. 옷 좀 갈아입고 올께."

후배 하나까지 덤으로 얻었으니 번갈아가며 칡 캐기에 안성맞춤이다. 뽀삭거리는 눈을 밟으며 양지쪽 대밭 제일 위쪽에 이르렀다. 철룽이라고 하는 대보름날 성황당 근처다. 평소에도 귀신이 나올 듯해서 접근을 꺼렸던 곳이지만 눈부신 대낮이라 거리낌 없이 올랐다.

얼마 가지 않아 칡넝쿨이 쫙쫙 뻗어 있다. 얼기설기 얽혀 있는 것 중에서 밑동이 굵은 걸로 보아 갈근 칡뿌리가 제법 실하겠다. 칡넝쿨 아래엔 토끼가 어제나 오늘 아침에 다녀간 듯 까만 콩자반처럼 토끼 똥이 자르르 깔려 있다.

"야, 여그다 몽매 놨으먼 직방인디?"
"올핸 글러부렀어야. 올 가실엔 꼭 놓자."
"용기 너는 성들이 벼준 까시랭이를 쩌짝으로 땡겨서 쟁여라."

칡넝쿨을 제거하고 주변에 꽉 들어찬 찔레나무 가시를 하나하나 베어서 한곳에 버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보스락거리는 낙엽까지 긁어 바닥까지 말끔하게 정리되었다. 괭이 날이 무지막지하게 큰 걸로 땅을 힘껏 내리쳤더니 얼음과 돌에 부딪혀 "팍팍" 튈 뿐이다. 낮에 불꽃을 보긴 오랜만이다.

"찬찬히 하자. 한삐짝만 뚫리면 금방이랑께. 긍께 병문아 한 곳만 계속 파부러."
"잉, 그려."

마 넝쿨은 쉽게 찾을 수 있다. 나무에 걸린 마 줄기를 따라가면 세 쪽으로 나뉜 누런 씨앗주머니가 무척이나 크다.
마 넝쿨은 쉽게 찾을 수 있다. 나무에 걸린 마 줄기를 따라가면 세 쪽으로 나뉜 누런 씨앗주머니가 무척이나 크다. ⓒ sigoli 고향
서릿발이 조금 보이다가 이내 붉은 흙 생땅이 나왔다. 도토리나무 뿌리와 소나무 뿌리도 보인다. 낫으로 한번 잘라내고 다시 시작하기를 10분이 지났다. 오돌토돌 둥글납작한 마가 속살을 하얗게 드러내 진을 질질 흘리며 톡 끊어진다.

"고것이 뭣이다냐?"
"묵어봐."

바지에 대강 쓱싹쓱싹 문질러 먹어봤다. 설컹거리면서도 속은 무척이나 부드럽게 살살 녹는다.

"참말로 부드럽구만. 씹을 일도 없네."
"언넝 파자."

더 파가자 칡 윗대가리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더니 차차 굵어지기 시작했다. 이 때부터는 다치지 않게 조심조심 주변을 넓혀가야 한다.

"규환아, 무신 칡 같어?"
"나무 칡은 확실히 아닌 것 같고…."
"글면 밥칡인가 성?"
"술칡일지 밥칡일지는 쫌 더 봐야 알 겄다."

어린 우리가 알았던 칡은 세 가지다. 나무처럼 딱딱하고 물도 없어 캐다가 버리고 마는 일명 '나무칡'이 있고 물기는 오살나게 많으면서도 소태만큼 쓰기만 하여 씹는 재미가 거의 없는 '술칡'이다. 이건 아버지가 좋아한다.

우리가 좋아하는 '밥칡'은 조금 과장하여 밥이 들어 있는 칡인데 씹으면 씹을수록 찧다만 인절미에 들어 있는 밥알처럼 오도독 쌀밥이 연달아 나오는 진짜배기 칡이다. 칡이 아니라 거의 밥에 가까워 밀껌이나 보리껌보다 맛난데 캐다가 톡톡 떨어지기도 한다.

이제 구덩이를 파는 사람이 교대가 되었다. 웃옷을 벗어던지고 넓혀가자 오소리가 숨기 딱 좋을 만큼 널찍하다. 주변엔 흙과 돌이 고스란히 쌓여갔다. 뿌리를 따라 괭이자루만큼 깊어졌다. 쥐새끼를 먹은 듯한 뱀처럼 잔뿌리가 잔뜩 배가 불렀다가 가늘어진 칡뿌리가 서너 가닥 나왔다.

"툭" 잘라서 땅에 던져줬다. 대충 흙을 털고서는 톡 볼가진 송곳니로 쭈욱 찢는 소리가 들렸다.

"마침 잘 골랐구만. 밥칡이다."
"글먼 우리 한번 땡겨보까? 빠져나올지도 모르잖어. 인자 가늘어지기 시작했거든."
"아녀 쫌 더 파야겄는디. 아직도 퉁거워."
"이번엔 병문이 니가 파봐라. 땀이 허벌나게 나는구만."
"약괭이 일로 줘봐봐."

구멍이 좁아지면 약 캘 때 쓰던 뾰족한 괭이가 제격이다. 흙과 돌이 뒤섞였지만 동무는 여러 번 해보았는지라 능수능란하게 안쪽을 더 넓혀간다. 이제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냉기가 가시지 않았지만 이곳은 춘삼월같이 따스하다.

빨치산이 소굴을 파듯 땅파기를 한 시간은 너끈히 했을 무렵이다. 오늘은 용케 괭이 날을 부러뜨리지도 않았다.

"땅겨~ 땅거!"

묵직한 무쇠 작두로 칡을 썰면 "북북! 북북!" 참으로 듣기도 좋았다.
묵직한 무쇠 작두로 칡을 썰면 "북북! 북북!" 참으로 듣기도 좋았다. ⓒ sigoli 고향-맛객
셋이서 곡괭이자루 만큼 두꺼운 칡을 잡고 젖 먹던 힘까지 써서 힘껏 잡아당겼다.

"끄응~"

며칠간 몸 속에 머물러 묵었던 내용물이 대장에서 곧 밀려나올 듯도 하고 얼굴에선 실핏줄이 터질 듯 괴력을 발휘해 보았지만 쉽게 딸려 나오지 않았다.

"아따 심든 거. 째까만 더 파보자."

낫 끝으로 속을 쑤시듯 파도 칡뿌리가 안으로만 자꾸 들어가는 게 아닌가. 안 되겠다싶어 톱으로 잘라내기로 했다. 간신히 들이밀어 슬겅슬겅 당기고 밀자 칡밥이 무수히 쏟아졌다.

어찌나 구덩이에서 씨름을 했던지 흙 범벅이 되었다. 그 자리에서 몫을 나눴다. 두껍고 긴 원뿌리 칡을 2:4:4로 나눠 가장 작은 것은 용기에게 줬다. 한 짬 쉬고는 칡뿌리를 어깨에 둘러매고 콧노래와 휘파람을 불며 칡을 질겅질겅 씹으며 뒷골에서 내려오는데 흰눈이 펄펄 날렸다.

한 덩어리는 아버지께 술을 담그시라고 드리고는 방에서 꿈쩍도 않던 형을 불러내 작두로 칡을 썰어 삼태기에 담아 일부는 바짝 말릴 채비를 하였다. 밥을 안치려고 쌀을 일던 어머니는 오늘도 여전히 바쁘다.

"어디 갔다 오냐?"
"잉, 옆집 병문이랑 칡 캐각고 오요. 엄마 칡뿌랭이 드실라요?"
"아녀 니기들이나 묵어."
"한번 드셔보시지 그요? 아부지가 밥맛이 좋아진다고 허던디요."
"아서라. 니 엄닌 이가 좋지 않아서 못 씹어."
"엄마 이건 밥칡이랑께요. 밥알이 쏟아져 나온디라우. 째까만 드셔보싯쇼."
"그려 그먼 니 손에 있는 한쪽만 주니라."
"워쩌요? 달달 하제라우?"
"그려 곧이곧대로 구만. 밥이 솔찬이 많어."

그날 칡 물이 입술 양쪽으로 질질 흘러 옷엔 갈색 물이 흠뻑 들었다. 저녁을 먹고 주머니에 넣어온 마를 아궁이 잔불에 넣어뒀더니 수분을 다 덜어내고 포근포근 익었다. 그날 내 입은 심심하다고 궁시렁 대지 않았다.

설이 지난 어느 날 어머니는 말린 칡으로 나무 새싹이 돋기 전 갖가지 나무뿌리와 껍질을 달여 우리에게 맛난 식혜, 약 단밥을 만들어 주셨다. 쌉쌀하면서도 달달한 맛이 일품이었다.

덧붙이는 글 | 김규환 기자는 고향에서 동무들과 지냈던 아름다웠던 추억과 어머니 손맛, 초가집에서 오순도순 살았던 지난 시절 이야기를 주제로 시골아이 고향이라는 인터넷고향신문을 만들고 있다. www.sigoli.com에 가면 포근하고 따뜻한 이야기가 담뿍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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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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