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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의 못 말리는 여자들>
<고대의 못 말리는 여자들> ⓒ 꼬마이실
왜 '못 말리는 여자들'이란 제목을 붙였을까? 이렇게 대단한 여자들을 소개하면서 '못 말린다'고 표현한 것은 격이 좀 떨어진다는 느낌이 든다. '고대의 위대한 여걸들'로 바꿔야 마땅하다.

이 책 속에서 굳이 '못 말리는 여자'를 찾는다면 로마 시대의 전문 독살가 '로쿠스타'를 들 수 있다. 그녀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출세하고 싶은 야망을 품었다. 돈도 인맥도 없던 그녀가 선택한 것은 약초를 이용한 독약제조 기술이다.

로마에 사는 많은 귀족들이 친척이나 경쟁자들을 은밀히 제거하기 위해 그녀를 찾았다. '로쿠스타'는 권력을 가진 고객들의 비호 아래 승승장구하여 독살기술을 양성하는 학교를 세울 정도로 그 세를 키웠다.

'로쿠스타'가 고대를 대표하는 여성으로 뽑히게 된 까닭은 그녀의 악행이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네 번째 아내인 아그리피아나는 자신의 아들 네로를 황제로 옹립하기 위해 남편을 독살한다.

황제가 된 네로는 적자인 어린 동생 브리타니쿠스를 독살하는데 어머니처럼 로쿠스타을 고용한다. 그리고 자신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어머니마저 제거한다.

로마황실의 살인 기술자였던 로쿠스타는 당연히 악녀이다. 그녀가 자신의 출세를 위해 인간의 생명을 하찮게 여겼다는 것은 용서받지 못할 일이다. 그러나 고대 여걸 중에 유일한 악녀로 이름이 오른 이유가 웬지 천민 출신이라는 원죄 때문인 것만 같다.

로쿠스타가 하트셉수트처럼 이집트 공주로 태어났다면 그녀처럼 파라오가 되는 것을 꿈꾸지 않았을까, 사포처럼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다면 그녀처럼 시인이나 예술가 혹은 약초를 연구하는 학자로 이름을 남겼을 수도 있지 않았겠는가. 차라리 그녀에게 재능이나 야망이 없었다면 적어도 후세에까지 더러운 이름을 남기지 않았을 것이다.

로쿠스타와 상반된 인물은 히파르키아다. 그녀는 기원전 300년경 최고의 예술과 문화, 철학이 숨쉬는 도시 그리스 아테네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집안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아버지 필립포스 왕이 전쟁을 치르러 갈 때 머물렀을 정도로 부유했다. 그녀는 철학에 심취해 있었고 키니코스학파 중 한 사람과 결혼하였다.

키니코스학파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이 알렉산드로스 대왕과의 일화로 유명한 디오게네스다. 디오게네스는 죽을 때까지 옷 한 벌과 지팡이 하나, 자루 한 개만을 지니고 진흙 항아리에서 살았다.

키니코스학파는 견유(犬儒)학파라고도 한다. '개와 같은 생활'이란 뜻을 지닌 이 학파를 따르는 사람들은 '필요한 것이 적을수록 신에 가까운 자유로운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세상의 모든 질서나 관습, 사치를 '개가 짓는 것처럼' 비난하고 조롱했다.

'냉소'라는 뜻을 지닌 '시니컬(cynical)'이란 말이 이 학파의 이름에서 나온 것이다. 그런 이유로 히파르키아는 부와 안락함을 버리고 남편을 따라 길거리에서 먹고 자는 생활을 시작한다. 그녀는 남자 중심의 아테네 사회에서 여자 철학자로 살았다.

로쿠스타가 부와 출세를 위해 양심을 버렸다면, 히파르키아는 모든 것을 버려 자신을 찾았다. 좀 다르게 보면 로쿠스타는 가진 것이 없기 때문에 얻으려 했고 히파르키아는 가진 것이 있기 때문에 버릴 수 있었다고도 하겠다. 고대에 이름이 알려진 여인들은 공통적으로 자아가 강하다.

그러나 그녀들은 신분을 뛰어 넘지 못했다. 대부분의 여걸들이 처음부터 귀족의 딸이거나 공주라는 신분으로 태어났다. 물론 모든 귀족의 딸이나 공주들이 위대한 행적을 만든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위대한 여인들 속에 낀 악녀 로쿠스타가 유일하게 천민 출신이라는 것이 당시, 여인이 신분을 뛰어넘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려주고 있는 것만 같아 씁쓸하다.

한편 이집트의 파라오 하트셉수트, 뛰어난 외교술로 로마을 사로잡은 클레오파트라, 고대 아시리아의 정복왕 세미라미스, 수메르의 제사장 엔헤두아나, 로마를 놀라게 한 사막의 왕 제노비아, 이스라엘 해방 전쟁을 승리로 이끈 드보라와 야엘이 등은 나라의 지도자로서 남자들 못지 않게 야망과 역량을 펼쳤다.

동양의 인물로는 베트남의 독립을 위해 싸운 쯩 자매가 있고 역사 책 <한서>를 완성한 반소가 있다. 우리나라에도 역사 속에 묻혀 좀 생소한 인물이지만 '소서노'와 '허황후'가 있다. 소서노는 졸본 땅의 토착 세력으로 북부여에서 도망온 고주몽 두번째 부인이다. 그녀는 비류와 온조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소서노는 고주몽이 고구려를 세울 때 일등공신이었고 아들 비류가 백제를 세우는 것을 도왔다. 고구려와 백제 건국의 어머니인 것이다. 허황후는 가야국의 왕 김수로의 부인이다. 아유타국에서 배에 석탑을 싣고 왔다. 우리에게 최초로 불교를 전한 것이 허황후라는 설이 있다. 금슬이 좋았던 부부는 자손 중 한명에게 허씨 성을 물려주었다고 한다. 허황후가 김해 허씨의 시조인 것이다.

이 외에도 소크라테스의 스승이고 페리클레스의 연인이었던 당시 최고의 지성인 아스파시아가 있고 이집트의 수학자이면서 철학자인 히파티아가 있다. 히파티아는 진리와 결혼했다고 했을 정도로 학문에 몰두했다. 그러나 기독교 광신도들에 의해 이교도로 몰려 조개껍질로 살을 찢기고 불에 태워지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다.

고대의 여인 중에서 가장 매력적인 여인은 단연 시인 사포이다. 사포는 레즈비언이었다. 200년 전까지만 해도 '레즈비언'이라는 말이 에게해의 '레스보스 섬에 사는 사람이나 그곳에서 난 물건'을 뜻했다. 그러니 사포를 동성애자로 오해하지는 마시라. 그녀는 수금연주와 시 쓰는 것을 좋아 했다.

그녀는 젊은 여자의 체험을 바탕으로 솔직하고 정확하게 감정을 표현했다. 또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받드는 모임을 만들어 합창곡이나 종교 축제에 쓸 시도 많이 지었다. 축제가 열릴 때면 말이 끄는 전차나 소가 끄는 꽃수레를 타고 다녔다. 사포가 죽은 지 200년 뒤에 플라톤은 사포를 이렇게 칭송했다.

"어떤 이들은 뮤즈가 아홉 명이라고 하나 이는 틀린 말이다. 레스보스 섬의 사포를 보라. 뮤즈는 사포를 더하여 열 명이라 해야 옳다."

동양의 여걸들이 아들의 섭정이나 남편의 조력자로서 권력을 취했던 것에 비해 서양의 여걸들은 대륙을 지배하려는 욕망을 품었다. 고대 여인들도 철학이나 학문, 예술분야에 뛰어난 역량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 책에 나오는 몇 명의 여인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여성들은 신분적 제약으로 자신의 뜻을 펴고 사는 일은 꿈조차 품을 수 없었고, 남성의 권력 앞에서 자신의 능력을 사장시켜야 했다.

덧붙이는 글 | <고대의 못 말리는 여자들>/비키 레온/꼬마이실 펴냄

<리더스 가이드>와 <알라딘>에도 실었습니다.


고대의 못 말리는 여자들 - 교양 있는 우리 아이를 위한 세계역사 이야기

비키 레온 지음, 최재호 그림, 손명희 옮김, 꼬마이실(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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