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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꼭 필요한 말 이외에는 별 말이 없는, 무뚝뚝한 남편이 지난 토요일(14일)에 저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어제 거기 컴퓨터 책상 서랍에 있는 사진을 우연하게 보았는데, 그 사진 중에서 한 장이 내 마음을 아프게 하더라."

"무슨 사진을 보았는데? 정말 마음이 안 좋았어요?"

"음.. 그 사진을 보니까 나도 모르게 마음이 찡하고. 마음 속으로 많이 반성을 했어"

저는 남편의 말을 들으면서 책상 서랍을 열어 보았습니다.

그 서랍 속에는 그동안 제가 디지탈카메라에 저장하려고 모아 둔 사진들이 제법 들어 있었습니다.

도대체 어떤 사진이 저토록 무심해 보이는 남편의 마음을 아프게 했는지 궁금하여 사진들을 찾아보다가, 저 또한 어느 사진에서 눈길을 멈추었습니다. 그 사진을 들고 남편에게 보이며 "이 사진이야?"하고 물었더니 남편은 맞다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남편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는 사진은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딸아이와 아들아이가 하루에도 몇 번씩 서로 치고 받고 싸운 후에,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번쩍 들고 벌을 받는 사진이었습니다.

▲ 딸아이의 우는 모습이 남편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는 문제의 그 사진.
ⓒ 한명라
방문 앞에 무릎을 꿇고 벌을 받는 두 아이 앞에 빗자루도 놓여 있었고, 형제끼리 싸우지 말고 우애 있게 잘 지내야 한다고 아이들에게 꾸지람을 하는 남편의 등 뒤에서 제가 순간 포착으로 촬영한 사진이었습니다.

두 아이가 벌을 받는 모습이 나중에 재미난 이야기 거리가 될 수 있겠다 싶어서 카메라를 찾아 들었을 때, 아들아이는 표정관리를 한다고 활짝 웃고 있었고, 딸아이는 무엇이 그리도 서러웠는지 카메라를 향해서 한층 더 서럽게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그 사진을 보면서 그때 딸아이를 좀 더 넓은 마음과 사랑으로 따뜻하게 안아 주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딸아이가 서럽게 우는 모습을 보면서 안쓰러운 마음을 느꼈다고 스스로를 자책하고 있었습니다.

벌을 받으면서도 개구쟁이 특유의 눈웃음을 짓고 있는 아들아이와 달리, 자신은 억울하다는 듯 서럽게 울고 있는 딸아이의 모습에서, 저 또한 아들아이에 비해서 딸아이에게는 따뜻한 사랑과 관심을 많이 나누어 주지 못했음을 깨달았습니다.

딸아이와 아들아이는 15개월 차이가 나는 연년생입니다. 올해 딸아이는 중학교 3년이 되고, 아들아이는 중학교 2학년이 됩니다.

딸아이가 태어난 지 7개월째에 둘째 아이를 임신하게 되었고, 딸아이가 돌이 지나고 아장 아장 걷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둘째아이를 출산했습니다. 그때 딸아이는 엄마, 아빠라는 말도 제대로 배우지 못했던 때였습니다.

아들아이를 출산하느라 제가 병원에 입원하면서 딸아이가 셋째 이모집에 일주일 동안 가 있었던 일을 제외하고는 이제까지 두 아이 모두 제 손으로 직접 길렀습니다.

아직 어리기만한 연년생 두 아이를 기르던 그 당시, 두 끼의 식사를 먹으면 그 날은 잘 챙겨 먹는 날이었습니다. 저의 등에는 항상 두 아이 중 한 아이를 업고 있었던 적이 많았습니다. 머리를 감을 때에도 업고 있었고, 심지어 화장실에서 급한 볼 일을 볼 때에도 아이를 업어야 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저녁에 아이들을 재우기 위해 방에 불을 끄고 누우면, 아이들보다 제가 먼저 깊은 잠에 빠져버리기 다반사였습니다.

하루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게 바쁘게 살아왔던 그때, 그렇게 서둘러서 동생을 보지 않았더라면 딸아이는 엄마, 아빠의 따뜻한 사랑과 보살핌을 보다 많이 받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유난히 개구쟁이였던 동생을 둔 탓으로, 딸아이는 엄마 아빠라는 말을 배우기도 전에 다 자란 누나가 되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유난히 고집도 세고 욕심도 많은 동생과 다툼이라도 벌이면, 우리 부부는 아직 어리기만한 딸아이에게 누나인 네가 양보하라고 강요하기 일쑤였습니다.

▲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항상 똑같았던 아이들.
ⓒ 한명라
이제서야 우리 부부가 새삼스럽게 깨달은 사실은 동생을 그렇게 빨리 본 것도, 그리고 유난히 장난이 심한 개구쟁이 동생을 둔 것이 결코 딸아이 때문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우리 부부 깨닫지 못하고 있었을 뿐, 빨리 본 동생 때문에 많은 서러움과 불이익을 당해야 했던 사람은 딸아이였다는 것을 10년 전의 사진을 보면서 뒤늦게나마 깨닫게 된 것입니다.

딸아이가 지금까지 자라오면서 행여 엄마 아빠에게 서운했던 마음을 가졌더라면, 이제라도 서로 마음을 열고 대화를 나누면서 그것은 결코 엄마 아빠의 진심이 아니었음을 들려주어야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중학생이 된 지금도 여전히 두 아이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투닥투닥 다투다가도 또 언제 그랬느냐 싶게 다정한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부모 입장에서 지켜보노라면, 남도 아닌 남매로서 좀 더 사이좋게 잘 지내주었으면 하는 마음에 속이 상하기도 하지만, 어쩌면 두 아이들에게는 오늘을 살아가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아주 대수롭지 않은 일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10년도 더 지난 아이들의 낡은 사진 한 장을 보면서, 어느새 성큼 자라 버린 지금의 아이들 모습과 우리 부부의 아이들에 대한 이해의 폭도 훨씬 키울 수 있는 뜻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어제(1월 15일) 저녁, 딸아이에게 문제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아빠의 마음을 전해 주었습니다. 딸아이는 우리 부부가 생각했던 만큼 심각해 하지도 않았고, "정말로 아빠가 그러셨어요?"하고 활짝 웃는 얼굴로 되물었습니다. 얼마나 다행스럽던지요. 앞으로도 딸아이가 지금처럼 항상 웃는 얼굴로 잘 자랄 수 있기를 마음으로 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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