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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원제에 꼴통이라는 단어가 들어있지는 않다. 이 책은 종교적 이데올로기적 '근본주의자(fundamentalist)'들과의 토론방식을 논의하고 있으며 주로 '광신도'들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사실 <꼴통들과 뚜껑 안 열리고 토론하는 법>이라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을 달고 있어서 그렇지, 이른바 '꼴통'들을 안면 깔고 무시하는 책은 아니다.
광신도와 대결할 때는 언제나 지적이고 일관성있게 생각하는 사람과 상대하고 있다고, 그들의 행동은 결코 '비합리적', '비이성적'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중략)…. 이들에게도 논거는 있기 때문이다.(97쪽)
물론 그 어떤 논거에도 흔들리지 않는 것은 진짜 광신도의 본질적인 특색이다. 그래서 광신도는 사실 그대로 놔두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는 게 사실이지만, 그래도 그가 초래할 위험을 줄여보기는 해야 한다. …(중략)…. 계몽가의 목표가 반드시 광신도를 무너뜨리는 것일 필요는 없다. 오히려 광신도의 입에서 뿜어져나오는 열변에 대해 대중을 면역시켜서 관심이 쏠리지 않게 하는 데 목표를 두어야 한다. 물론 안타깝게도 그 길은 매우 멀다.(174~175쪽)
특별히 광신도로 분류되지 않더라도 대체로 우리는 누구나 자기가 아는 것을 강하게든 약하게든 주장하면서 살아간다. 어쩌면 내가, 혹은 당신이, 지금 이 순간 제3자에 의해 꼴통으로 지칭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슐라이허르트는 지적한다. 누군가가 모순이라고 느끼는 일이라고 해서 실제로 모순인 것은 아니라고.
슐라이허르트는 근본주의자들, 광신도들을 다루는 방법을 몇 가지, 제시한다. 그의 방법을 실행해보려면 우선 근본주의자들이나 광신도들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대화에 임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 이데올로기에 심취되어있는 자들이 하는 말을 집중해서 잘 경청해야만 한다. 슐라이허르트는 니체의 표현을 빌려 이렇게 표현한다.
어떤 사람, 어떤 책을 가장 날카롭게 비난하는 방법은 그 사람, 그 책의 이상형을 그려보여주는 것이다.(188쪽)
상대방의 입장에 초점을 맞추고, 그가 어떤 원칙을 따르는지를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이다.(190쪽)
상대방의 입장과 의견을 객관적인 말로 그의 눈앞에 그저 보여주고 스스로 생각하게 만들면 된다는 게 슐라이허르트의 주장이다. 그는 또 말한다.
“계몽가 볼테르는 그저 눈앞에 보여줄 뿐이다. 그래도 보려고 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도울 수 없다.”
그리고 그는 광신도들을 상대하는 또 다른 방법을 제안한다. 그것은 바로 웃음이다.
모든 종류의 이데올로기들, 그 중에서도 특히 종교들은 웃음을 싫어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잘 알기 때문이다. 어떤 일을 두고 웃는 사람은 그 일에 대해 겁내지 않는다.…(중략)…. 독재자는 모두 정치적인 농담을 무자비하게 색출, 처벌하고, 종교독재가 이루어지는 곳에서는 종교를 웃음거리로 만드는 일을 범죄행위로 간주한다.(225-226쪽)
슐라이허르트는 이 웃음을 '해방적 웃음'이라고 칭한다. 광신도의 앞에서 흥분하거나 발끈하기보다 슬쩍 뒤로 물러나듯 웃어버리는 것(비웃음 아님!), 이것이 (철학교수로 오랫동안 재직해온) 슐라이허르트가 제안하는 토론과 논증의 핵심기술이다. 토론에는 꼭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요인만이 필요한 건 아닌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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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통들과 뚜껑 안 열리고 토론하는 법
후베르트 슐라이허르트 지음, 최훈 옮김, 뿌리와이파리(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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