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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니아 연대기>와 <청연>
<나니아 연대기>와 <청연> ⓒ 정명희
<외출>과 <형사>
<외출>과 <형사> ⓒ 정명희
그러면서 '세련된 것 좋아하는 요즘 젊은 사람들이 저 극장에서 영화를 보려고 할까', '뭔가 변화에 맞춰서 건물을 새로 올리든가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곤란할 걸' 해가며 영화 한 편 봐주지는 못할망정 악담을 늘어놓았다.

그러나 생각보다 그 극장은 쉬이 망하지(?) 않았다. 그 사이 IMF 구제금융 시대도 있었건만 그 극장은 용케도 살아남았다. 나는 구제금융 시대도 거뜬히 버텨내었기에 그 극장의 내실을 인정하기로 하고 듣는 이 없다지만 더 이상 도움 안 되는 악담을 하지 않기로 다짐하였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 나도 가끔씩 그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게 되었다.

그 극장은 차도에서 100m쯤 들어간 곳에 있는데 극장 건물이며 간판이 옛 모습 그대로라서 그 극장으로 들어가노라면 꼭 1980년대쯤으로 되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난 젊은 날에 그랬던 것처럼 그 극장의 간판을 즐겨 보게 되었다. 영화를 보러 갈 때가 아니라도 가끔 버스를 타고 그곳을 스쳐갈 때면 습관처럼 어떤 그림이 걸려 있나 보게 되었는데 그것은 그곳을 지날 때만 느낄 수 있는 작은 기쁨 중 하나였다.

얼마 전 가족과 함께 영화를 보러 갔다가 용기를 내어 극장 사장님에게 극장 간판을 누가 그리는지 물어 보았다. 그랬더니 직접 그리신다고 하였다. 난 이왕 말이 나온 김에 몇 가지 더 물어보았다.

- 극장 간판 그리신 지는 얼마나 되었나요?
"한 30년 되었지요. 영화를 좋아하다보니 삼촌(60)에게서 배웠습니다. 지금도 삼촌과 함께 그립니다."

- 한 달에 몇 편 정도 그리시는지요?
"대략 6편정도 그립니다."

- 간판은 계속 덧칠해서 씁니까?
"예, 하얗게 페인트칠 한 다음 그 위에 배경그림 그리고 색칠합니다. 그리는 데 하루 정도 걸리고 말리는 데 이틀 정도 걸립니다."

- 가장 감명 깊게 본 영화는 무엇인지요?
"<벤허>입니다."

- 슬하의 자녀는요?
"대학생, 고등학생 2남입니다."

- 성함과 나이는 어떻게 되시는지요?
"이름도 몰라요. 성도 몰라요, 나이도 몰라요.(웃음)"

- 앞으로도 계속 이 극장을 고수할 생각이십니까?
"글쎄요. 언젠가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겠지요."

사장님의 말로는 이 극장이 일제 강점기 때 처음 문을 열었으니 극장의 역사가 자그마치 70년이나 된다고 하였다. 지금의 사장님이 인수한 지는 12년 정도 된다고.

세상에나, 70년 동안이나 쉬지 않고 끊임없이 영화가 상영되었다니 새삼 그 극장이 특별해 보였다.

막연히 역사래야 한 20년쯤 되겠지 생각하고 물었는데 70년이라니, 70년은 사람의 한평생과 거의 같은 세월이 아닌가. 지금 70인 할머니 할아버지가 태어나서 성장하고 결혼하고 자식 키우고 그리고 늙어 주름진 그 많은 시간 동안 그 극장은 꼿꼿하게 버텨온 것이다.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하는 현대의 변화무쌍이 그 극장의 입지를 자꾸만 좁게 하는 것은 아닌지 안타까웠다. '역사 속으로'를 발음하던 극장 사장님의 목소리에는 시대조류와는 조금 떨어져 살아야 하는 사람의 고독이 묻어났다. 한편으로는 그 극장의 70년 역사만큼이나 당당함과 의연함도 느껴졌다.

이 세상 모든 것에는 끝이 있기 마련이지만, 그 극장만큼은 지난 70년을 한결같이 외길을 걸어왔듯이 앞으로도 쭉 그대로 전진하기를 빌어본다.

세월이 느껴지는 극장 전경
세월이 느껴지는 극장 전경 ⓒ 정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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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이라는 말이 좋습니다. 이 순간 그 순간 어느 순간 혹은 매 순간 순간들.... 문득 떠올릴 때마다 그리움이 묻어나는, 그런 순간을 살고 싶습니다. # 저서 <당신이라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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