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해 너머로 아득하게 남덕유산이 보인다. 광포한 눈보라와 싸우며 오르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지리산의 마루금이 아스라하게 펼쳐진다. 지리산 종주는 서쪽의 노고단에서부터 동쪽 끝에 자리한 천왕봉까지 이어지는 장쾌한 능선을 따라 걷게 된다.
제석봉 아래로 광활한 구름바다가 펼쳐졌다.
누구나 가슴 속에 보내지 못한 편지가 있다. 더러는 죽는 날까지 편지를 안고 가리라. 장터목 대피소의 빨간 우체통이 가슴 속 사연을 기다리듯이 망연하게 서 있다.
멈춰있는 듯 하지만 시시각각 변하는 운해. 어느덧 뭇 봉우리들이 운해 속으로 잠겼다.
천왕봉. 볼 때마다 지엄하고 신성하다. 제석봉을 내려선 후 20여분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면 닿을 수 있다.
땀 흘려 여기까지 온 이들만이 하늘에 이르는 문을 통해 천왕봉에 오를 수 있다. 이제 10여분 남짓 더 오르면 천왕봉에 닿는다.
천왕봉은 다시 운해 속으로 흐릿해진다. 천왕봉을 보는 모든 이들은 그를 경외하라.
제석봉의 고사목은 사실은 화사목(火死木)이다.이 숲이 살아나는 날까지 인간의 탐욕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벌거벗은 채 그들은 이 겨울을 이겨낼 것이다. 눈시린 하늘은 그들에게 더욱 슬프다.
이름만으로도 신성한 반야봉이 섬처럼 떠 있다. 운해는 그 밑에 도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