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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어떤 근거의 주장인지는 모르나 요즘 멧돼지 (개체)수가 20만 마리를 넘었다는 얘기가 퍼진다. 그렇다면 우리는 멧돼지를 더 자주 만나야 한다. 참 '좋은 일'이겠지만 이런 계량(計量)은 억측이라는 말도 들린다.

▲ 깨끗한 곳을 좋아하는 멧돼지는 교배종도 난폭하기가 야생과 비슷해 번식과 사육에 힘과 돈이 많이 든다.
ⓒ 강상헌
제주대의 정동기 교수 같은 이는 "비무장지대라는 천혜(天惠)의 야생 지대까지를 범주로 쳐서 추측해보면 기껏 10만 마리 정도에 가까울 것"이라고 귀띔한다. 태백산맥과 지리산에 많은데, 최근 도시 주변의 산에서도 서식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멧돼지 '농사'에 이골이 난 어떤 이가 들려주는 이 말은 요즘 접하는 멧돼지들의 정체성(正體性) 즉 본디를 의심하게 한다. 7, 8년 전 IMF로 파산하거나, 사료 값을 마련하지 못해 멧돼지 사육장 돈사(豚舍)를 열어줘야 했던 상황에 대한 한숨 섞인 귀띔이다. "그 때 차라리 땅이라도 파 묵고 살라고 눈물로 보낸 놈들이 야생에서 출세(!)해 데모하는 것이제."

진정한 야생 멧돼지와 잡종인 이런 녀석들이 섞일 수도 있다. 멧돼지의 아이덴티티를 따지는 데는 이제 '경우(境遇)의 수'의 개념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부러 암컷 집돼지에 '맛난' 오줌을 잔뜩 발라 뒷동산 소나무에 묶어두어 밤새 멧돼지 '씨'를 받는 것과 같은 전통 방식의 인공적인 교배(交配)도, 수의학적 연구의 결실인 인공수정을 활용하는 육종도 요즘 많이 활용하는 멧돼지 씨 내기다. IMF로 기틀이 망가진 멧돼지 농사는 이렇게 많아야 열 마리, 스무 마리 정도의 소규모 멧돼지 사육농으로 명맥(命脈)을 이어왔다.

▲ 양지바른 곳에서 이녀석들은 쉬지않고 땅을 판다. 먹이질이다.
ⓒ 강상헌
스태미나 많이 아쉬운 '스포츠맨' 남성들이 많이 찾는 골프장 '레스토랑'이나 골프장 주변 식당에서 인기 높은 멧돼지고기의 공급원인 것이다. 또 당뇨병 환자에게 인기 메뉴다. 보다 야생에 가까운 놈도 잡고(때론 불법도 있겠다), 돼지 혈통이 많이 섞인 놈도 식탁에 오를 것이다.

여하간 이런 '활용'이 많아져 농가의 고소득 작목으로 떠오르는 추세라 하니, 이제 멧돼지는 집 안팎에서, 또 산과 들에서 더 요란을 떨겠다.

식재료 등으로의 활용방안이 적극적으로 강구되어야 할 시점이다. 그렇지 않으면 호랑이의 대타인 이 '야생의 왕자'가 천더기로 강등될 판이다.

일본이나 미국, 유럽에서도 멧돼지 고기는 애호가가 많다. 멧돼지 고기의 영어권 이름은 일반 돼지고기(포크)와 이름부터 격(格)이 다른 브론(brawn)이다. 힘을 주고 기쁨을 준다하여 '브론 딜라이트(delight)'라는 말도 있단다. 격이 다른 만큼 값도 훨씬 높게 친다.

불도장(佛跳牆)이란 이름의 중국요리가 있단다. 청나라 때 처음 만들어진 스태미나 수프요리라는데, 어찌나 맛이 좋은지 부처님도 먹고 싶어 담을 넘는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느 식당에서 맛볼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슴 힘줄, 잉어 부레, 송이, 해삼, 전복 등과 함께 멧돼지 고기가 이 요리의 주요한 재료라고 한다.

멧돼지 고기의 영양성분 분석 등의 작업은 아직 제대로 되어있지 않다. 다만 먹고 한 시간쯤 지나니 힘이 불끈 솟더라느니, 구울 때 기름이 오래되어도 굳지 않고, 잘 닦이는 것으로 보아 다른 고기와 확실히 다르다는 등의 경험과 관찰의 담론이 무성하다.

고대 그리스 와인항아리(오이노코에)의 그림에서 헤라클레스와 한판 벌이는 멧돼지의 위용도, 우리 반구대 암각화처럼 멧돼지가 얼마나 인간에 '기여'해 왔는지를 웅변한다.

최근 경남 창녕에서 출토된 신석기 시대 통나무 배 유물에 멧돼지로 추정되는 그림이 있다는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자고로 동서를 막론하고 멧돼지가 우리의 '친구'였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겠다. 언제까지 우리는 '그'의 친구일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생명시대신문>(http://www.lifereport.co.kr)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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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등에서 일했던 언론인으로 생명문화를 공부하고, 대학 등에서 언론과 어문 관련 강의를 합니다. 이런 과정에서 얻은 생각을 여러 분들과 나누기 위해 신문 등에 글을 씁니다. (사)우리글진흥원 원장 직책을 맡고 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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