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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록담 능선에 오르는 길엔 거센 눈보라가 몰아쳤습니다.
백록담 능선에 오르는 길엔 거센 눈보라가 몰아쳤습니다. ⓒ 서종규
한라산 산행은 늘 큰 기대를 갖게 합니다. 제주도에 한 번 가기가 쉽지 않은데다가 백록담을 한 번 볼 수 있다는 희망때문입니다. 그래서 한라산 산행을 결정하고는 늘 꿈을 꾸는 것이지요.

겨울 한라산 산행은 두 가지를 꿈꾸며 갑니다. 그 하나는 한라산 눈꽃이겠지요. 더 말하여 무엇 하겠습니까. 또 하나는 백록담을 한 번 보는 것입니다. 한라산 등반하여 깨끗한 백록담을 보는 것은 평생 기억으로 남을 행운입니다.

한라산에 정상 부근에 눈이 많이 왔습니다.
한라산에 정상 부근에 눈이 많이 왔습니다. ⓒ 서종규
1월 16일 아침 7시에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 '풀꽃' 13명이 숙소에서 성판악으로 출발했습니다. 아니 다른 일행과 함께 버스엔 31명이 탔습니다. 아침 6시에 일어나 배낭을 챙기고, 스패츠(각반)를 차고, 아이젠을 준비했습니다. 숙소에서 준비한 점심과 물도 준비했습니다.

새벽부터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사방은 캄캄한데, 버스의 창문에 와이퍼가 계속 부딪치는 빗방울을 밀어내고 있었습니다. 차안의 사람들은 조금 긴장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기상 조건이 걱정되었던 것이겠지요. 하지만 등산을 통제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믿음은 확실했습니다.

버스가 7시쯤 성판악 매표소(750m)에 도착했습니다. 모두 매점에서 비옷을 사서 입고, 아이젠을 착용하고, 장갑과 배낭끈을 조정하여 준비를 철저히 했습니다. 빗줄기는 계속해서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한라산 산행, 출발했을 때에는 많은 비가 내렸습니다.
한라산 산행, 출발했을 때에는 많은 비가 내렸습니다. ⓒ 서종규
눈이 많이 내린 한라산 등산로는 다져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등산로를 한 발이라도 벗어나면 발이 깊숙이 빠졌습니다. 거의 허리까지 빠져들기 때문에 사람들은 좁은 등산로를 따라 한 줄로 올라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 줄로 등산을 하기 때문에 추월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혹 앞사람이 멈추면 뒷사람도 멈추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습니다.

눈이 많이 내린 한라산은 많은 생채기가 나 있었습니다. 작은 나무들은 대부분 눈에 덮여 있었고, 가지가 휘거나 부러져 나뒹구는 나무들도 많았습니다. 어떤 나무는 통째로 부러져 등산길을 가로막아 안타까웠습니다.

산행에서 한 시간 정도 가다가 쉬는 것이 보통입니다. 하지만 좁은 등산로와 내리는 비 때문에 계속 앞으로만 가야 했습니다. 몇 명이 모여서 담소할 여유도 없었습니다. 일행 중에 이미 뒤에 처져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비옷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들으며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한라산엔 까마귀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한라산엔 까마귀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 서종규
까마귀 울음이 계속 따라왔습니다. 한라산에 까마귀들이 많이 살고 있습니다. 빗방울 소리와 까마귀의 울음이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지만 사람들은 한 줄로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여전히 주위 나무들에 난 생채기들이 안타깝기만 하였습니다.

쉬지 않고 세 시간 정도 산행을 하였습니다. 발이 피곤하기 시작했습니다. 등산을 하면서 한 시간 정도의 간격으로 쉬기도 하고, 과일이나 사탕, 초콜릿 등으로 영양분을 공급하기도 해야 하는데 그럴 여유를 갖지 못하고 세 시간 동안 줄곧 산행을 하다 보니 다리가 아팠습니다.

날씨는 춥지 않았지만 흐르는 땀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비 오는 날씨라 겉옷을 하나 더 입은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그 위에 비옷까지 입고 있었으니 온 몸이 땀인지 비인지 몰라도 흠뻑 젖어들었습니다. 피곤한 몸에 땀까지 흠뻑 젖어 몸이 마비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한라산 진달래대피소에도 많은 눈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한라산 진달래대피소에도 많은 눈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 서종규
11시에 힘겹게 성판악에서 7.2km 지점인 진달래대피소(1500m)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진달래대피소 부근에서부터 비가 눈으로 바뀌었습니다. 차라리 다행이었습니다. 한라산 눈꽃을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무들마다 하얀 눈이 가득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진달래대피소에서 뜨거운 물을 마셨습니다. 그리고 과일과 사탕으로 영양분을 보충하였습니다. 그리고 비옷을 벗어 배낭에 묶었습니다. 원래 한라산 등반 규정상 성판악에서 출발할 사람은 진달래 대피소에, 관음사에서 출발한 사람은 용진각 대피소에 11시30분까지 도착하지 못하면 정상에 오르지 못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구상나무 위에 많은 눈이 쌓였습니다.
구상나무 위에 많은 눈이 쌓였습니다. ⓒ 서종규
눈을 맞으며 다시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한라산 중턱 이후에는 많은 구상나무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정상까지 이어지는 구상나무들에 눈이 쌓인 모습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눈 쌓인 나무들 사이로 까마귀들이 날고 있었습니다. 다행인 것은 바람이 거의 불지 않아서 포근한 느낌으로 눈을 맞았습니다.

백록담 아래 계단에 도착했습니다. 약 800m 정도인 이 계단을 오르면 한라산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한라산은 쉽게 정상을 내주지는 않았습니다. 바람이 거의 없던 한라산이었지만 이 계단 부근에 불어치는 바람은 상상을 초월하였습니다. 뺨에 부딪치는 눈발이 볼을 사정없이 때렸습니다.

한라산 정상인 백록담 능선에선 눈보라 때문에 서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한라산 정상인 백록담 능선에선 눈보라 때문에 서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 서종규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히말라야 능선의 눈보라 같았습니다.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기가 힘들었습니다. 고지가 바로 저기인데 어떤 사람은 뒤돌아서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좁은 길에 사람들이 지체되어 기다려야 했습니다. 오르는 사람과 내려오는 사람이 스쳐 지나가기도 힘들었습니다.

12시20분, 한라산 정상인 백록담 능선(1950m)에 올랐습니다. 성판악에서 오르는 백록담 능선만 개방이 되어 있습니다. 백록담에 내려가거나 백록담 능선을 한 바퀴 도는 것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백록담 능선엔 더욱 눈보라가 거셌습니다. 조금도 서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추위가 엄습하였습니다. 사진 몇 장만 찍었습니다. 사진기도 김이 서려서 얼어가고 있었습니다. 사진이 제대로 찍히지도 않았습니다. 백록담은 아예 보이지도 않았고, 아래로 패인 백록담 분화구 위 부분만 조금 보였습니다.

저 아래 백록담이 보여야 하는데.
저 아래 백록담이 보여야 하는데. ⓒ 서종규
대부분의 사람들은 곧바로 성판악 쪽으로 하산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우리 일행 여섯 명은 관음사 쪽으로 내려갔습니다. 구상나무에 붙은 눈꽃이 가득했는데 눈보라 때문에 발길을 급하게 재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관음사 코스는 백록담 능선에서 용진각 대피소까지가 아주 가팔랐습니다. 특히 용진각대피소 바로 위는 도저히 걸어서 내려갈 수가 없었습니다. 일행들은 모두 엉덩이를 땅에 대고 미끄럼을 타고 내려갔습니다. 오히려 내려가는 시간이 훨씬 단축되었습니다. 모두의 입에서 환호가 터져 나왔습니다.

구상나무에 가득 달라붙은 눈꽃입니다.
구상나무에 가득 달라붙은 눈꽃입니다. ⓒ 서종규
오후 1시30분에 용진각 대피소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용진각 대피소는 아주 비좁고 어두웠습니다. 그래도 모두 쪼그려 앉았습니다. 보온 도시락과 보온 물통을 준비한 것이 다행이었습니다. 미처 먹지 못했던 과일까지 후식으로 먹었습니다. 굳었던 얼굴이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백록담 능선에 불던 바람도 잠잠했습니다. 내리던 눈도 다시 비로 변하였습니다. 용진각대피소에서 관음사 매표소까지는 완만한 능선이 계속되었습니다. 내리던 비도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사방은 구름에 싸여 멀리까지 보이지는 않았지만 소나무 사이 길로 계속하여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오후 3시30분에 관음사 대피소에 도착했습니다.

카메라에 서린 김이 얼어서 사진도 얼었습니다.
카메라에 서린 김이 얼어서 사진도 얼었습니다. ⓒ 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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