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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부동산 중개 사무실 내부
부동산 중개 사무실 내부 ⓒ 한나영
그러고 보니 며칠 전 서비스맨이 다녀갔다는 말을 큰 딸로부터 들은 게 생각났다. 그 서비스맨은 우리 주방 싱크대의 개수기 수리를 요청하는 전화를 받고 왔다는 것이었다. 그는 중개 사무실에서 열쇠를 받아 우리 집 문을 열고 들어왔다(미국에서는 세입자가 서비스를 신청하면 집에 사람이 없어도 이렇게 얼마든지 들어올 수 있다고 한다).

때 마침 집에 있던 큰 딸은 이층에서 천천히 내려왔다가 낯선 사람의 출현에 놀라 누구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 서비스맨은 개수기 수리 때문에 왔다고 했고 우리는 서비스를 신청한 적이 없다고 딸아이는 분명히 말했다. 하지만 그는 주방으로 가더니 막무가내로 개수기를 점검하고는 '이상 무'라며 돌아갔다.

그날 오후, 남편은 딸로부터 이런 해프닝을 전해 듣고 사무실의 책임자인 캐라에게 항의를 했다. 그러자 캐라는 "네 아내가 우리 음성사서함에 개수기 고장 사실을 알리며 서비스를 신청했다"고 억지를 부렸다. 물론 사실이 아니었다. 나는 그 때 한국에 있었고 우리 집 개수기의 고장 사실도 알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미국에 왔고 남편은 바로 며칠 전의 일이라며 함께 캐라에게 가자고 했다. 뭔가 잘못 되어서 그랬을 거라며 가서 따져 묻자고 했다.

"캐라, 지난 여름에 보고 오랜만이다. 그동안 잘 지냈냐? 그런데 내가 어제 미국에 도착해서 남편으로부터 들었는데 내가 전화로 우리집 개수기의 서비스를 신청했다고 하는데…."

"맞다. 누군가(somebody)가 분명히 881번지의 개수기 보수를 신청했다. 여자 목소리였다. 그래서 내가 확인해 보니 네가 일하는 JMU의 직장 전화번호였다."

"오, 노! 캐라, 너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냐? 나는 이곳에 일터가 없다. 당연히 직장 번호도 없다. 그리고 나는 어제 한국에서 왔다. 네가 지금 무슨 착각을 하고 있는 모양인데 그 서비스맨의 보고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집 개수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당연히 서비스를 신청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너는 지금 우리더러 출장비를 내라고 한다. 말도 안 된다. 너는 우리가 전화를 했다고 주장하는데 물론 안 했다. 하지만, 설사 전화를 했다고 하더라도 서비스 출장 전에 다시 우리에게 확인을 했어야 하는 게 아니냐. 그건 네 과실이다. 신청하지도 않은 서비스로 우리가 돈을 낼 수는 없다. 캐라, 다시 잘 알아봐라."

"이미 내가 조사를 다 해봤다. 네가 전화로 신청을 한 게 맞다. 내 음성메일에 남긴 번호를 확인해 보니 분명 네 전화번호였다. 그러니 너는 그 돈을 내야 한다. 만약 내지 않으면 추가로 벌금을 더 내야 한다."

"아니, 내가 전화를 안 했다는데 도대체 너,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냐? 그럼 내가 남겼다는 음성메일을 보여 달라."

"그건 삭제해 버렸다. 그래서 남아있지 않다. 네 음성 메일을 듣고 내가 분명히 기록해 두었다."

진실을 말하시오! 캐라가 일하는 곳
진실을 말하시오! 캐라가 일하는 곳 ⓒ 한나영
아니, 세상에 이런 일이…. 속된 말로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 수'도 있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캐라의 거짓 주장은 몇 가지 지적만으로도 금세 탄로가 날 만큼 허술했기에 나는 이 문제가 곧 해결될 줄 알았다. 왜냐하면 캐라의 주장 말고는 우리가 그에게 개수기 수리를 신청했다는 증거가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느긋하게 마음 먹고 일단 캐라에게 주의만 환기시킨 뒤 사무실에서 철수(?)했다. 그리고 이런 캐라의 부당한 주장을 <오마이뉴스>에 올릴 요량으로 당당하게(?) 제목을 뽑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우린 봉이 아니야"
오마이 시민기자, 미국에서 본 때를 보이다


물론 오마이 시민기자가 아니어도 이런 정도의 부당한 사건은 누구라도 쉽게 해결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경우에 사람들은 이처럼 사소한 일에 얽혀드는 걸 싫어한다. 우선은 귀찮아서이고, 또는 대세(?)에 지장이 없으면 대충 함구하거나 무시하는 게 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편의주의가 비록 개인적인 일이라고는 하지만, 간혹 더 큰 부조리를 낳는 경우도 있고, 심지어는 사회악을 생산하는 경우도 있는지라 나는 이번 사건에서 개인의 권리가 그렇게 호락호락 침해당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그런데 사건은 그렇게 내 마음같이 수월하게 진행되지 않았다.

캐라의 억지 주장은 너무나 단호했다. 그녀는 아무런 증거도 들이대지 못하면서 자기 메모만을 증거로 무조건 돈을 낼 것을 요구했다. 그래서 '22불50센트' 사건은 금세 해결되지 못한 채 며칠 더 묵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우리는 남편의 대학 국제 협력처에 들르게 되었다. 그곳에서 일하는 직원이 우리에게 별 불편이 없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우리는 '캐라 사건'을 말해 주었다. 그러자 그 직원은 캐라가 뭔가 착각한 것 같다며 내 편을 들어주었다. 그런데 그 직원은 캐라가 도대체 얼마의 돈을 내라고 하는 거냐고 다시 물었다.

"22불50센트"
"큰 돈은 아닌데…."

말끝을 흐리는 직원의 표정은 큰 돈도 아닌데 뭐 그렇게 속을 끓이냐는 표정이었다. 차라리 그 돈을 내고 잊어버리는 게 골치 아프지 않겠냐는 표정으로 말이다.

"이건 그냥 돈 문제가 아니라 일종의 진실게임이에요.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느냐는…."

캐라가 분명히 거짓말을 하고 있고 자신의 잘못을 내게 전가시키고 있는데 그걸 참는다는 것은 부당한 일이라고 나는 '단호히' 말했다. 그러자 그 직원은 국제협력처의 변호사에게 자문을 구하라고 했다. 사건이 커지고 있었다. 주변의 아는 사람들은 이쯤되면 캐라 쪽에서 사과를 하고 없던 일로 할 거라고 말했지만 캐라는 뻔뻔했다.

결국 그 사건은 어떻게 되었을까? 학교 변호사가 캐라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캐라가 주장하는 '누군가'는 분명 내가 아닌 다른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고 증언해 주었다. 왜냐하면 내 여권이 이를 말해주고 있었으니까. 그런데도 캐라는 이를 수긍할 수 없다며 끝내 버텼다. 그래서 내가 변호사에게 물었다.

"캐라의 주장을 반박할 수 있게 전화국 같은 데서 통화내역을 조회하면 될 게 아니냐."

인상좋게 생긴 여자 변호사 딜로가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하자면 비용이 훨씬 더 든다. 뭔가 잘못된 게 분명하지만 이번에는 그냥 돈을 내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대신 앞으로는 절대로 전화로 신청하는 일이 없을 거라고 말해줘라. 이메일이나 직접 찾아가는 방법을 택할 거라고. 하여간 이번 일은 어쩔 수 없다. 미안하다."

"엄마, '캐라 사건' 말이야, 말로 해결이 안 되면 여기서 발행되는 신문에 고발한다며…. 제목까지 써 두고 <신문고>를 울린다더니 왜 슬며시 빠지려고 해."

사실이 그랬다. 나는 캐라의 뻔뻔함을 보면서 '정직하지 못한 어느 미국인'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다.

"응, 그렇게 하려고 했는데 내 발목을 잡는 사람들이 많네. 변호사도 그렇고 학교 직원도 그렇고, 미국에 오래 산 정미 아빠도 그냥 참으라고 하고. 이러다가 소탐대실할 수도 있다고 아빠도 그러시고…. 이제 그만 조용히 지내자고 하잖아. 똥이 뭐,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사실 이번 결론은 엄마도 마음에 안 든다. 하지만 어쩌겠니, 우리가 약자여서 그러는 것 같은데."


다음날 나는 다시 캐라를 찾았다. 그리고 따끔한 한마디를 해주었다.

"너, 여전히 내가 전화를 했다고 믿느냐? 분명히 말하건대 나는 '결코' 안 했다. 네가 뭔가 실수를 하고 있다. 그런데도 너는 네 잘못을 인정 안 하고 무고한 사람에게 돈을 요구하고 있다. 나중에라도 네 잘못을 깨달으면 그 돈 다시 돌려주기 바란다. 다시는 이런 실수 하지 않기를 바란다(캐라, 인생을 그렇게 살지 마!)."

이번 일을 겪으면서 나는 문득 19세기 말, 프랑스 전체를 뒤흔들었던 그 유명한 '드레퓌스 사건'의 주인공인 드레퓌스 대위를 떠올렸다. 물론 이깟 사소한 일로 그 엄청난 사건을 떠올린다는 게 언감생심, 말도 안 되긴 하지만 억울한 드레피스 대위의 심정을 손톱만큼이나마 헤아려볼 수 있었다.

미국에 오래 산 사람들은 대체로 미국인들이 정직하다고 말한다. 아마 사실이 그럴지도 모른다. 내가 목격한 대학의 도서관이나 서점 앞 물건 보관소에서도 자신의 소지품을 전혀 주저하지 않고 내려놓는 학생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으니까.

학생들은 주저하지 않고 서점 앞 책상에 가방을 두고 간다
학생들은 주저하지 않고 서점 앞 책상에 가방을 두고 간다 ⓒ 한나영
하지만 그런 미국이라 하더라도 때로 부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고, 더욱이 외국인에 대한 차별이 있다고 느끼는 건 아직 미국을 제대로 보지 못한 내 편협한 시각 탓일까. 그나저나 억울한 일로 눈물짓는 사람이 없는 세상이 되어야 할 텐데, 요원한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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