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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는 큰고모 같았던 누나. 과연 3년 전 교보문고 앞에서 제 큰 아이와 찍은 사진을 기억할 수 있을까요.
아이들에게는 큰고모 같았던 누나. 과연 3년 전 교보문고 앞에서 제 큰 아이와 찍은 사진을 기억할 수 있을까요. ⓒ 유성호
종로5가에서 한식당을 경영하던 누나는 저의 큰 누나와 같은 연배에 삶의 굴곡 역시 너무도 닮아 있었습니다. 머리를 다쳐 생계를 책임질 수 없는 남편과 2녀1남의 가계를 이끌어가는 생활이며 그런 가운데서 자기보다 어려운 주위를 먼저 챙기는 모습에서 죽은 큰누나가 겹쳤습니다.

온갖 세파를 막아내던 마디 굵은 누나의 손끝을 보면 내 돈 내고 사먹는 밥이지만 미안했습니다. 그런 누나는 언제나 밥이며 반찬을 남보다 더 많이 담아내왔고 제게는 누나처럼, 제 아이들에게는 친 고모와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큰 딸이 대학에 들어갈 때가 되고 그 동생들이 커가자 수익성이 낮은 식당을 접고 이 일 저 일을 온 몸으로 부딪혀 발버둥치는 누나를 바라보면서 아무 것도 해줄 수 없었습니다. 그때마다 오히려 제 집안 걱정을 먼저 해주던 누나였습니다.

3년여를 이것저것 해봤지만 집안 살림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던 누나는 지난 해 종로구 제동 현대사옥 뒤편에 조그만 카페를 얻었습니다. 누나의 사정을 아는 주변 지인들이 십시일반, 마지막 잔고를 털어 마련한 카페였습니다. 마지막 승부수를 띄운 셈입니다.

누나는 카페 인테리어와 소품들을 구입하느라 많은 신경을 썼습니다. 또 지인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기 위해 조그만 개업기념 연극을 준비하느라 밤을 낮 삼아 일했습니다.

그런데 개업을 불과 이틀 남겨 둔 어느 날 밤, 집에서 잠을 자던 누나는 몇 차례의 경련과 실신을 반복하다가 끝내 의식불명인 상태로 이대동대문병원으로 실려 갔습니다. 아이들 말에 따르면 심한 감기몸살쯤으로 알았다고 합니다.

그것도 모르고 개업식 날 그곳을 찾은 저는 누나의 부재와 변고를 전해 들었고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당시 전해들은 바로는 중환자실에서 의식불명인 상태로 이틀이 됐다는 말과 깨어나더라도 정상으로 돌아오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말이었습니다.

눈앞이 캄캄했지만 이번 역시 아무 것도 해줄 수 없음에 안타까움만 더했습니다. 오로지 기도만이 제가 할 수 있는 전부였습니다. 어떤 원망도 없이 온전히 누나의 회복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주여, 제겐 누나가 있습니다. 먼저 주님께서 거두어 가신 큰누나와 생김은 달라도 제겐 똑같이 소중한 사람입니다. 그런 그녀가 지금 생사의 길목에 서 있습니다. 모두가 주님의 긍휼한 자식입니다. 그녀는 오로지 가족을 건사하기 위해 몸을 혹사한 것이 죄라면 죄입니다. 그것이 정녕 죄라면 죄 값이 너무 혹독합니다. 모든 것이 주님의 손안에 있음을 믿사온데, 부디 저의 서툰 기도를 들어 주시어 그녀를 이 땅에서 다시 볼 수 있도록 도와주시오소서."

누나의 기억이 되돌아 오는 기적을 또 한번 바랍니다.
누나의 기억이 되돌아 오는 기적을 또 한번 바랍니다. ⓒ 유성호
지난해 7월 22일 아침, 기적처럼 누나가 눈을 떴습니다. 병원에 있던 지인의 떨리는 목소리가 수화기 저편에서 광영처럼 번졌습니다. 은혜의 감탄사가 목청을 밀고 저절로 터져 나오면서 가슴이 벅차오르고 목이 메면서 기쁨의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습니다. 무려 한 달 보름만에 의식을 되찾은 것입니다. 누가 뭐라 해도 이는 기적입니다.

여름과 가을을 내내 병원에서 후속치료를 받아야만 했던 누나는 그러나 기억을 상당 부분 잃어버렸습니다. 의식을 잃고 누워 있던 45일 동안, 아주 어렸을 때와 주변 가족들에 대한 기억 말고는 죄다 사라졌습니다. 어쩌면 고통의 순간이었기에 스스로 기억의 '삭제' 키를 눌렀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더더욱 안타깝습니다.

지인들은 누나가 스스로 기억을 되찾을 수 있도록 자극하지 말고 멀리서 지켜보자고 했습니다. 의료진도 깨어난 것만 해도 기적이라며 절대안정을 취하도록 권고했습니다. 그래서 보고 싶지만 먼발치에서 서성거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서 또 한 번의 기적을 바라고 있습니다.

누나의 기억 더듬이가 잃었던 지난 기억들을 더듬어낼 수 있도록 소원하고 있습니다. 아픈 기억보다 행복했던 기억들이, 증오했던 기억보다 사랑했던 기억들이 오롯이 떠오르도록 기억 더듬이가 부활하는 기적을 기다려 봅니다. 그것이 봄소식과 함께 어울려 온다면 봄은 더없이 찬란할 것입니다.

"누나, 우리 아이들과 함께 했던 전곡리 선사유적지 추억 기억 않나? 누나 아들과 함께 북한산을 숨 가쁘게 올랐던 기억은? 얼마 전까지 살았던 아파트를 누나가 골라 줬잖아. 그리고 이사 기념으로 소파를 사준다며 나랑 같이 시장을 둘러본 기억은? 누나, 힘들겠지만 기억의 더듬이를 움직여 봐. 또 한번 기적을 바라자,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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