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지난 18일 '장애인 연극 체험' 행사의 일환으로 대학로 나들이를 했다. '장애인 연극 체험'은 장애인들의 문화욕구를 해소시키고자 지난 2003년 시작된 행사로, 매달 1~2회씩 마련되는 김 간사의 작품이다.
"장애인하면 남에게 의지하고 항상 무언가를 받는 존재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장애인들 역시 '홀로 서기'를 통해 당당한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다해야 합니다."
'홀로 서기'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장애인의 정신력과 의지가 중요하다는 것이 김 간사의 생각이다. 그 역시 뇌병변(뇌 손상으로 일상 동작에 큰 제약을 받는 중추신경장애 총칭) 2급 장애인. 하지만 문화활동을 통해서 많은 것을 얻었기에 자연스레 떠올린 것이 바로 연극 등 문화 체험이었다.
미국작가 얼 쇼리스가 소외계층을 위해 극장, 연주회 관람, 강연 등으로 구성된 인문학 강좌 '클레멘트 코스'를 열었던 사례가 연상되는 대목이다. 쇼리스는 10여 년 전 '왜 사람들은 가난할까?'란 질문에 '정신적 삶이 없기 때문'이라고 답했던 한 죄수로 인해 그 일을 시작했다. 현재는 우리나라의 노숙자 재활프로그램에 도입될 만큼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김 간사의 아이디어는 적중했다. 평소 문화 체험 기회가 거의 없다시피한 데다 바깥나들이에 익숙지 않은 장애인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은 것. 19일 문화 체험의 일환으로 음악회에 참석한 시각장애 1급 박정화(29)씨는 "작년 한 해 매달 한 번 정도는 공연을 봤다"며 "참여 못할 때도 있었지만 이런 기회가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힘이 된다"고 말했다.
장애인 위한 낮 공연 활성화돼야
하지만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은 높았다. 18, 19일 양일간 진행된 '연극 체험'에 장애인 참여자는 소수에 그쳤다. 그나마 온다던 사람들도 공연이 오후 10시 넘어 끝난다는 말에 쉽게 발걸음을 옮기지 못했다고 김 간사는 귀띔했다. 거동이 불편한 재가 장애인들의 경우 오후 공연은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
참여자 중 한 사람은 집이 인천인데, 오후 8시에 시작하는 공연을 관람하려고 오후 4시에 집을 나섰다. 지하철을 환승하면서 걸리는 시간까지 감안한 까닭이다. 따라서 끝나고 집에 갈 생각을 하니 '앞이 캄캄하다'는 그의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게다가 추운 날씨까지 겹쳤으니 참여율이 떨어진 것은 오히려 당연해 보였다.
19일 연주회 장소였던 '예술의 전당'은 그나마 사정이 나았지만 대학로에 산재해 있는 소극장들은 시설이 열악했다. 특히 휠체어에 의탁한 장애인들에게는 악몽과 같은 곳이란다. 연극 체험을 위해 찾았던 극장 역시 지하 2층이었는데 휠체어로는 이동할 수가 없었다. 비장애인들의 손길이 절실한 대목이다.
"안타까운 것은 기회가 주어져도 그것을 잡을 수 있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자원봉사자들이 많이 도와주고 있지만 아직 많이 부족한 형편입니다. 아울러 장애인을 위한 낮 공연이 더욱 활성화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김 간사의 소박한 소망이다. 하지만 그의 행동으로 봐서 단순히 소망에서 그칠 것 같지 않다. 그동안 부정기적으로 진행했던 문화 체험을 가칭 '문화체험단'으로 제도화하겠다는 계획을 구체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 비장애인들의 봉사와 예술단체 및 기업들의 지원을 이끌어내고 행정적인 틀을 갖추겠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연극 <바쁘다 바뻐>를 보고 나온 후에도 많은 생각에 잠긴 듯한 김 간사. 그가 '바쁘면 바쁠수록' 세상은 더욱 따뜻해질 것만 같았다.
덧붙이는 글 | 원래 문법적으로 '바쁘다 바빠'가 맞지만 연극제목은 '바쁘다 바뻐'였습니다. 그래서 그대로 표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