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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일본은 가까운 장래에 수도권지역에 대지진이 예상된다며 각별히 경계를 하고 있다.
ⓒ TBS 화면캡처
일본은 대지진 공포에 휩싸여있다. 수도권 및 관동지방, 태평양 연안인 동해, 동남해, 남해 지역에 마그니튜드(리히터 규모) 8.5의 대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경고가 계속되고 있는 것. 만일 지진 사정권 안에 있는 도쿄에서 이른바 '도카이대지진'이 일어날 경우 그 피해규모는 예측불허다.

이 가운데 지진발생 가능지역인 수도권에서 최근 2년 새 지어진 14개동의 아파트 및 호텔이 진도5강의 지진에도 붕괴될 수 있을 정도로 허술하게 지어졌다는 게 알려지면서 파장이 일고 있다. 현행 일본 건축법에 따라 진도6강~7의 지진에 견딜 수 있는 내진강도를 갖춰야 하는데 이를 속였다는 것.

진도5강 정도면 책장의 책이 쏟아지고 텔레비전이 떨어지거나 무거운 가구가 쓰러지며, 대부분의 사람이 행동에 지장을 느낄 수 있는 정도의 상황이다. 2005년 7월에는 도쿄 및 인근 3개 현에 진도5강의 지진이 발생해 27명이 사망하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는 14개 건물에서 끝나지 않았다. 국토교통성은 1월 20일 현재 18개 도도부현 95동의 건물에서 위와 같이 내진강도가 위조되었다고 발표했다. 국토교통성은 범위를 확대해 내진강도가 위조된 건물이 더 없는지 조사 중이다.

대지진 예고 속 내진강도 위조건물 '들통'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 일본은 최근 거품경제 붕괴 이후 최대의 건축 붐을 맞고 있다. 특히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아파트 건설이 호황을 맞아 99년 이후 매년 8만호 이상이 건설되었다. 그러나 업체간 과다경쟁은 건축비 절감 압력을 불러왔고, 이는 부실공사를 부추기는 결과를 낳았다.

▲ 아네하씨가 구조설계를 하고, 휴자에서 판매한 아파트. 새 아파트지만 붕괴의 위험이 있어 해체가 불가피하다.
ⓒ 아사히TV 화면캡처
이번에 문제가 된 건물은 이치가와 시 아네하 건축설계사무소의 1급 건축사인 아네하 히데스구 1인에 의해 구조계산이 이뤄졌다. 아네하씨는 1998년 이후 건축규제 완화조치의 일환으로 민간기업도 건축 확인 검사가 가능해졌다는 점을 악용해 구조계산서를 위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조계산은 건축물이 진도6강~7의 지진에 견딜 수 있는지 여부 등을 컴퓨터로 산출하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국토교통성이 인정한 전용 컴퓨터 프로그램이 사용된다. 철근 수, 굵기 등이 이 구조계산서를 기초로 결정된다. 아네하씨는 외력치를 기준의 절반정도로 입력해 인증번호를 받아낸 후 정상적인 수치를 입력한 서류 일부와 바꿔치는 단순한 방법으로 구조계산서를 위조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그 결과 아네하씨가 구조계산을 맡았던 건물들은 철근 량이 현저히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나가와 현의 그랜드 스테이지 후지사와라는 아파트의 경우 내진강도가 0.15에 불과했다(내진강도는 진도6강에 견딜 수 있는 강도를 1로 본다). 즉 '진도5약'의 지진에도 붕괴될 수 있다는 것. 이밖에 다른 건물들의 내진강도도 대부분 0.3~0.4 안팎이었다. 2005년에 일본에서 발생했던 진도 5약 이상의 10번의 지진 중 하나라도 이들 아파트 근처에서 일어났더라면 대형사고가 벌어질 뻔했던 것.

청문회 "누가 내진강도 위조를 지시했나"

▲ 내진강도 위조와 관련한 3인방. 왼쪽부터 민간검사기관 이-홈즈 대표, 아네하 전 1급 건축사, 판매회사 휴자의 오지마 사장.
ⓒ 아사히TV 화면캡처
이 어이없는 사건을 두고 아네하씨 개인차원의 위조였는지 아니면 조직적인 것이었는지에 관심이 모아졌다. 위조 당사자인 아네하씨를 비롯해 발주 및 판매회사인 '휴자(Huser)', 건설·시공회사인 '기무라건설(木村建設)', 민간검사확인기관인 '이-홈즈(e-Homes)', 경영자문회사인 '소켄(總合經營硏究所)' 그리고 '국토교통성'이 주요 책임자로 거론되고 있다.

국토교통성은 2005년 11월21일 경찰에 아네하씨에 대한 고발장을 제출했고, 12월20일과 21일 경시청과 지바 현 및 가나가와 현 경찰로 구성된 합동수사본부는 관련자들의 가택수색 및 압수수색을 실시하며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중의원 국토교통위원회는 지금까지 총 다섯 차례의 청문회를 열어 관련자들을 참고인 및 증인 소환해 조사를 벌였다. 청문회에서는 위조시작 시기, 위조압력 여부, 아네하씨와 기무라건설의 관계, 소켄의 역할 등이 집중 추궁됐다.

이 과정에서 아네하씨는 "업무의 90% 이상을 하청 받고 있던 기무라 건설로부터 압력을 느꼈으며, 병약한 아내가 입퇴원을 반복한 상황이라서 안되는 줄 알면서도 위조할 수밖에 없었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기무라건설 등 아네하씨에 의해 위조에 관여했다고 지목된 당사자들은 압력은 없었으며, 위조에도 관여하지 않았다고 맞서고 있는 상황이다.

이 가운데 민주당 마부치 의원이 소켄의 시카쇼 이사가 철근량을 줄이도록 구체적으로 지시한 내용이 담긴, 일명 '시카쇼 메모'를 공개해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여기에 지난 1월17일 청문회에 증인소환 된 휴자의 오지마 사장이 이토 코스케 전 국토교통성 장관과 아베 신조 관방장관을 상대로 청탁을 했는지 글에 대한 답변을 30회 이상 거부하면서 의혹이 더 증폭되고 있다. 오지마 사장의 답변거부로 불똥은 정치권으로까지 번지고 있는 양상이다.

발 빼는 당사자들, 속 타는 주민들

▲ 해체가 시작된 치바현 소재의 한 아파트.
ⓒ 아사히 닷컴
이 가운데 가장 속 타는 사람들은 주민들이다. 현재 문제가 된 아파트 및 호텔 대부분은 퇴거명령이 내려졌고 일부는 해체명령이 내려져 해체가 진행중이다. 주민 대부분은 주택융자를 얻거나 퇴직금 등을 털어 새 집을 마련한 사람들로 자칫 전 재산을 날리는 것은 물론 이자 빚과 새로 집을 장만할 돈까지 고스란히 떠안게 될 상황에 처해있다.

도쿄 기타구의 분양아파트 '그랜드스테이지 아카바네(9층, 18세대)'의 관리조합 이사장(43)은 <마이니치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너무 피곤해서 붕괴에 대한 공포조차 느낄 수 없게 되었다"고 하소연했다. 실제로 대부분의 주민들은 2개월여 간 붕괴에 대한 공포와 직장일, 퇴근 후의 대책회의, 이사할 집구하기 등으로 극도로 피로해진 상태다.

도쿄 에도가와구의 '그랜드스테이지 스미요시'의 67세대를 대상으로 한 앙케트 조사에 따르면 주민 대부분은 불면증, 정신불안으로 안정제 복용, 기분저하, 위통, 두통, 스트레스로 인한 안내출혈 등을 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초기에는 붕괴에 대한 불안이 원인이었으나 지금은 지원대책에 대한 갈등이 원인이 되고 있는 것.

인근주민들도 붕괴의 공포에서 자유롭지 않다. 보통 10층짜리 아파트가 붕괴될 경우 인접 가옥에도 피해가 미치기 때문. 그러나 이들을 위한 피해보상책이나 안전대책은 거의 논의 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그랜드스테이지 아카바네에서 15미터 가량 떨어진 목조2층집에 사는 주부(62)는 <마이니치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지진이 나서 이쪽으로 무너지는 건 아닐까 불안해서 견딜 수 없다"며 "위험한 건물이라면 인근주민들도 피난시킬 필요가 있는데 구에서는 아무런 말이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책임질 사람이 없다

문제는 이 부실아파트에 대해 책임질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이 사건으로 아네하씨의 1급 건축사 면허는 취소됐고, 기무라 건설도 작년 11월24일 파산신청을 냈다. 또 발주 및 판매회사인 휴자는 자신들이 파산하면 보상자체가 물 건너가게 된다는 점을 들어 구입액의 106%로 자신들이 다시 사들이겠다는 초기 보상책을 103%로 하향수정 하는 등 보상내용을 수차례 변경, 주민들의 불안을 부채질했다.

▲ 아네하씨가 구조설계 한 도면의 일부. 원칙상 빨갛게 표시된 정도의 철근이 더 들어가야 하는데 3분의 1정도만 넣도록 설계되었다.
ⓒ 아사히TV 화면캡처
급기야 일본정부는 지난 해 12월 6일, 관계각료회의를 열어 각 지자체가 문제의 아파트를 해당 주민들로부터 토지가로 매입해 해체한 후 재건축 한 뒤 다시 분양키로 하는 공적지원책을 발표했다. 이 방안에 따르면 이사비용, 임시 거처할 집 월세의 3분의 2, 아파트 해체비 전액, 재건축 비용 일부, 이자부담, 고정자산세 감면, 융자금 변제기간 연장 등에 대해 국가가 45%, 해당 지자체가 55%의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그러나 해당 지차체가 반기를 들고 나선 데다 공적지원에 대한 여론이 곱지만은 않은 상태다. 지난 1월 10일 도쿄도 이시하라 지사를 비롯한 4개 현 지사들은 국가가 건축 확인업무를 제대로 못한 책임을 왜 지자체에 떠넘기느냐며 정부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합의하고, 국가의 책임과 지원범위를 명확히 해줄 것을 요구했다.

공적지원이 이뤄진다고 하더라도 문제다. 이번 공적지원은 내진강도 0.5 이하인 분양아파트에만 적용돼, 현재 위조가 밝혀진 95동 중 10동만 지원대상이 된다. 때문에 지원대상에서 제외된 내진강도 0.5 이상의 분양아파트 주민, 호텔 경영자, 임대아파트 업자 등으로부터 불공평하다는 불만의 소리도 높다.

안전대국 일본의 신화는 이미 끝난 것인가. JR열차사고, 석면피해에 이어 이번 내진강도 위조사건 등 연이은 인재로 일본사회는 신뢰를 상실한 채 불안에 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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