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학에 대한 선입견 깨기
신영오의 <사람처럼 개처럼>은 112쪽의 작은 책이고 세계적인 진화 생물학자 도킨스의 <조상 이야기>는 694쪽에 달하는 두꺼운 책이다. 아마도 생명과학, 특히 진화론에 대해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도킨스의 <조상 이야기>를 접하기 전에 그 분량을 보고서는 질려 버릴 것이다.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다. 뒤로 갈수록 전문적인 생물 용어를 번역했다는 점에도 불구하고(특히 미생물 이름이 그렇다) 인류를 시작으로 그 조상을 거슬러 올라간다는 점에서 흥미 있게 다가오는 책이다.
그래도 부담스럽다면 <사람처럼 개처럼>을 주요리에 앞서 먹는 애피타이저처럼 음미해 보자. 작은 분량에 걸맞게 내용도 간출하기 그지없지만 책에서 전하는 내용만큼은 그 색깔이 분명하다. '과학'이라는 것에 대한 명확한 정의와 이를 넘보는 종교적인 가치관에 대해 짧고도 강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사람처럼 개처럼>에서는 '무신론'을 자연과학의 기본전제로 본다. 이는 다른 저서를 통해서도 누차 무신론자임을 자처한 <조상 이야기>저자 리처드 도킨스의 입장과도 일맥상통하고 있다.
우리의 조상 찾아가기
아마도 종교적 편견이 강한 독자라면 <사람처럼 개처럼>이라는 애피타이저부터 질색할지도 모르지만 이는 절대 논외로 봐야 한다. 종교는 하나의 확신이지만 생명과학은 탐구하는 여정이다.
조작으로 유명한 필트다운인 사건(원숭이와 사람의 뼈를 교묘히 붙여 중간화석으로 조작한 사건)이나 우리나라의 황우석 사태 등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생명과학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생명과학은 모두의 공통조상이라는 종착역을 향해 뒤집어 올라가도 그 방대함에는 끝이 없으며 불확실함은 더해진다.
도킨스는 이런 한계에 대해서도 솔직히 인정하며 머나먼 여정으로 독자를 안내한다. 이리하여 독자는 이 책을 통해 우리와는 전혀 다른 생명들과 더불어 39차례의 공통조상을 만나보게 된다. 나 자신의 조상을 끊임없이 거슬러 올라가면 과연 어떤 존재와 마주치게 될까?
약 700만 년 전의 공조상1은 우리와 99% 이상의 DNA를 공유하는 존재인 침팬지와 인류가 합류하는 존재이다. 이는 책에 실린 삽화와 함께 강렬한 인상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침팬지를 닮은 이 존재는 머나먼 여정의 시작단계일 뿐이다.
더욱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수록 여정에 합류하는 '순례객'의 숫자는 늘어간다. 모든 포유류가 합류하고 뒤를 이어 파충류가 합류하고, 새와 멸종한 공룡도 합류하며 양서류, 어류, 무척추 동물들이 끊임없이 합류한다.
이 장엄한 여정의 종착지에 도달했다고 여긴 순간 우리는 그 동안 보잘 것 없다고 여긴 존재들이 이루어낸 더욱 큰 줄기들을 만나게 된다. '동물'과 '식물'에 국한되어 보던 생명의 여정이 사실 수많은 생명체들의 가지 중 조그마한 지류에 지나지 않음을 알게 되며 이 책의 결론에서 다시 한번 그 방대함에 놀라게 된다.
생명과학에서 인간은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그 생명의 바다에서 자그마한 가지의 끝에 붙어있는 존재이며 그렇기에 현존하는 생명체들의 우위에 있는 존재가 절대 아니다. 이러한 책들을 통해 그렇게 여기는 것은 인간의 오만일 뿐이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닫지만 생명과학이 추구하는 바가 그에 있는 것은 아니다. 생명과학을 접하는 첫 태도를 그렇게 가져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처럼 개처럼>에서는 <조상 이야기>에서 길게 풀어놓은 이야기를 모질게 한 마디로 압축한다.
"자연과학의 인간은 어쩌다가 우연히 태어나서 살다가 죽는 것으로 끝난다."
그렇다고 생명과학이 우리의 존재를 가치 없는 것으로 보는 것은 절대 아니다. 모든 생명체는 여기까지 와서 생존하며 투쟁하며 살고 있기에 소중한 것이며, 생명과학은 장엄한 생명의 바다 속에서 그 법칙을 하나하나씩 정립해 나가는 난제를 안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