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사립고등학교를 졸업한 나는, 가난한 집안 형편 덕분에 담임선생님과 자주 상담을 했다. 일년에 네 번씩 '꼭' 내야 하는 수업료를 제 때에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존심이 강했던 터라 '상담'을 할 때면 늘 부들부들 떨렸다. 형편이 어렵다는 것도 부끄러웠고, 떼어먹는 것도 아니고 좀 늦게 '지불'한다고 '닦달'하는 선생님도 미웠기 때문이었다. 언제까지 납부할 거냐고 다그친 선생님은 늘 같은 말씀을 되풀이 하셨다.

"너희들이 수업료를 안내서 선생님들이 월급을 못 받고 있다."

음식을 먹었으면 음식값을 내는 것이 당연한 일이고, 돈이 없으면 굶는 것이 양심일 것이다. '은혜롭게도' 공짜로 먹여주면 감지덕지하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학교에 꼬박꼬박 나가고도 '선생님의 월급을 못 준' 가난한 농군의 아들은 자괴감에 죄의식을 덤으로 안고 살았다.

사범대를 졸업하고 '공립'학교에 발령을 받았다. 의무교육이 법으로 보장된 대한민국의 학교는 여전히 학부모들의 '지불'을 요구하고 있었고, 나의 지난날을 '대물림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지난날의 강렬한 기억은 나로 하여금, '나의 경험을 전수당한 아이들'을 채근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런 아이들은 적지 않았다.

내가 아이들을 '채근'하지 않아도 되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국가에서 봉급을 받는 공립학교 교사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나는 사립학교 교사들은 재단에서 봉급을 준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믿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몇 년이 지나도록 '국가에서 국민의 세금으로 사립학교 교사들에게 월급을 준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나는 많은 학부모와 학생들 그리고 시민들이 아직도 이런 '당연한 무지' 속에 놓여 있다고 생각한다.

선생님들의 월급은 물론 재단이 '마음껏' 채용한 교내 직원들도 모두 국가(교육청)에서 보수를 지급한다. 그뿐인가? 체육관 강당, 급식 시설, 화장실 개선, 교구 구입, 시설 관리 등 대부분 소요 경비를 국가가 지원한다. 심지어 재단이 법적으로 부담해야 하는 경비까지 국가가 대신 내 주는 경우가 허다하다. 교육과정 학사운영 등도 공립과 차별성이 없다. 사실상 '사립을 위장한 공립학교'인 셈이다.

물론 공립학교와 차이점도 있다. 가장 큰 차이점은 학교 내에 '가족'이 많다는 점이다. 공립학교는 부부교사도 한 학교에 배치하는 것을 피하지만, 사립학교는 이상하리만치 아들, 며느리, 처, 매형 등의 혈연관계가 폭넓게 형성되어 있다.

또한 공립학교와는 달리 젊디젊은 '이사장', '교장'이 있다는 것이다.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공주'님은 29살에 대학교의 이사장이었다고 한다. 반대로 연로하신 분들이 '대장'인 경우도 많다. 80세가 넘어서도 재단 이사장으로 혈기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는 분이 있는가 하면, 공립학교에서 정년퇴직한 분들이 못 다한 '교육 열정'을 불태우기 위하여 사립학교의 교장 선생님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사회를 하면 온 가족이 자연스레 모이게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요즘 한나라당이 엄동설한에도 불구하고 사립학교법 '개악'을 무효화하기 위하여 투쟁하고 있다고 한다. 한 달이 넘었다. 폭설로, 황우석 파동으로, 재래시장 화재로, 경찰의 자살로 톱 순위에 '랭크'되지 못하는 설움을 두 배 세 배 겪으면서 '고난의 행군'을 벌이고 있는 듯하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많은 시민들이 '전교조에게 우리 아이들을 맡길 수 없다'는 구호 외에 한나라당의 주장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화려하긴 한데 도대체 무슨 광고인지 알 수 없는 것처럼, 한나라당의 '장외' 투쟁은 '이해의 장애'를 가져다 줄 뿐이다.

다만 지지자들의 이해를 지키기 위하여 '용감하게' 오직 한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만큼은 높이 살만하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다. 정당이라면 모름지기 그래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지지자들의 바람을 버린 채, 아무 곳이나 막 '열어주는 정당'이 반면교사로 삼을만하다.

나는 한나라당이 멈추지 않기를 바란다. 그들의 지지자들인 부패사학, 기득권 집단, 보수 종교 지도자들의 이해를 지키기 위하여 타협 없이 전진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장렬하게 산화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사립학교법이 개정되자 '학교 문을 닫겠다, 신입생을 받지 않겠다'는 분들도 있었다. '가까이 오면 이 여자를 죽이겠다'는 드라마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오한'이 느껴졌다. 여자의 목에 칼을 들이댄 이유가 고작 '째려봤다'는 것이라면 그 드라마는 유치할 뿐이다. 유치한 드라마는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고 곧 막을 내리겠지만 말이다.

민간기업에도 있는 개방형 이사를 일부 둘 수 있도록 하고, 비리를 저지른 재단이 복귀하는 것을 좀 어렵게 하며, 이사회의 회의록을 공개하고, 학교 예결산을 학교운영위원회에서 자문하도록 하며, 이사장의 가족을 교장으로 임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등의 법 조항이 학교 문을 닫고, 거리로 뛰쳐나가 전교조를 향해 '악담'을 늘어놓는 이유가 된단 말인가?

견제받지 않고 마음껏 '부패할 수 있는 자유를 달라'고 거리를 헤매고 다니는 그들의 뻔뻔함을 벌하기 위해 이 겨울이 이리도 매서운가 보다.

덧붙이는 글 | 조용식 기자는 전교조 울산지부 정책실장입니다.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42,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교육문제를 사회적으로 알려나가고 이슈화하여 맑고 투명한 교육행정과 이에 기반한 교육 개혁을 이루어 나가는 하나의 방도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 가입하고자 합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