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5일 오전 서울 세종로 외교통상부 청사 2층 현관에서 농성을 벌였던 80여명과 청사 주위에 있던 40여명 등 모두 120여명의 오리온 전기 노동자들이 연행됐다. 석간신문은 "외교통상부 청사 뚫렸다"는 제목을 달았다. 농민시위를 강경 진압한 책임을 지고 경찰청장이 사퇴한 이후 시위에 소극 대응한 것이 원인이 아닌가라는 부제도 달았다.
그들이 느닷없이 청사에 진입한 것은 아니다. 공장이 청산되고 하루아침에 길거리로 나앉게 된 오리온 전기노동자들이 정부청사 주변에서의 선전전마저 봉쇄되자 항의의 표시로 청사현관에서 농성을 벌이게 되었다. 이들 노동자들을 전원 연행됐고 건조물 침입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오리온 전기는 브라운관을 생산하는 제조업체다. 2003년 5월 법정관리, 2004년 10월 대구 지방법원이 매틀린 패터슨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 2005년 2월 최종 매각에 합의했다. 그런데 10월 31일 갑자기 임시 주주총회를 열어 법인을 해산했다. 2명이 참여하여 결정했다고 알려지고 있다.
지난 해 초 미국계 매틀린 패터슨 펀드는 회사를 인수하면서 3년간 고용보장과 신규투자를 약속했다. 노사간 합의서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인 외자유치 4개월 만인 지난 10월 31일 투기자본에 의해 청산되었다. 정부의 경제통상대사는 이 회사로부터 외자유치 공로를 인정받아 감사패를 받은 지 2개월 만에 벌어진 일이다.
1300명의 오리온 전기 노동자와 1200명의 하청노동자들은 졸지에 해고자가 됐다. 그들은 동시에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져들었다. 수천 명과 노사간 합의서가 이렇게 휴지조각이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오리온 전기 노동자들은 이 과정에 연루된 국무조정실과 이를 허가한 법원이 '사기 드라마'에 가담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오늘 오리온 전기 노동자들이 정부청사에서 항의농성을 벌인 이유다. 오리온 전기에 투자한 투기자본은 투자자금의 회수와 공장설비의 중국유출을 통한 이중적인 단기차익을 실현하려 한다. 전형적인 '먹튀(먹고 튀기)'식 기업사냥이다.
오리온 전기 노동자들은 크게 4가지를 요구하고 있다. 첫째, 오리온 전기 청산 저지와 공장 정상화, 둘째, 고용보장 합의 이행, 셋째, 사기매각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 넷째, 해외투기자본에 대한 감시와 규제 강화책 마련 등이다. 설날을 앞두고 설레는 마음으로 공장에서 열심히 일해야 할 노동자들이 지금 서울 광화문에 차가운 바람에 맞서다 경찰에 연행되는 신세가 되었다.
언론은 온통 정부청사 경비가 소홀해 노동자들에게 뚫렸다는 것이 주요 관심사다. 정부가 그토록 좋아하는 법질서를 지켜야 한다면 법원에 의해 법정관리 상태에 있는 기업을 인수한 외국자본이 노사가 합의한 합의서를 휴지조각으로 만들고 노동자를 길거리로 내 몬 책임부터 물어야 할 것이다.
투기자본의 횡포에 의해 갑자기 공장을 문을 닫고 나면 노동자들은 삶의 벼랑에 서게 된다. 아주 절박한 심정으로 거리에 나선다. 가슴에 유서를 품고 국가와 사회에 대한 분노를 표출한다. 양극화 해소 운운하는 노무현 정권과 정치권은 이들이 곧 다가올 설날 조상에 대한 차례상조차도 차릴 수 없는 상황을 이해하고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