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어스름 한밤중에
깊은 산길을 걸어가다
머리에 뿔 달린 도깨비가
방망이 들고서 에루화둥둥
깜짝 놀라 바라보니
틀림없는 산도깨비
에구야 정말 큰일났네
두 눈을 꼭 감고 에루화 둥둥"
위 노래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초, 중등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은 '산도깨비'란 노래이다. 하지만, 이 노래를 연주한 '슬기둥'은 알아도 이 노래를 기획하고 작곡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잘 모른다. 그는 바로 한양대학교 국악과를 졸업하고 많은 창작국악을 작곡한 조광재이다. 그가 이번에 '슬기둥 베스트' 음반을 신나라(회장 김기순)에서 내놓았다.
방송활동을 하던 중 음악기획, 제작자인 문웅희씨의 음반제작 제의를 받고, 문정일(피리, 현 전주 우석대 교수), 민의식(가야금, 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강호중(노래와 기타, 현 추계예술대학 교수), 이준호(대금과 소금, 현 한국방송 국악관현악단 상임지휘자) 등과 함께 '한국 창작무용곡집'을 낸 게 조광재씨의 첫 번째 음반이다.
이들은 '국악의 대중화'란 목표를 가지고, 방송활동을 본격적으로 하게 되는데 이후 오경희(아쟁, 현 슬기둥 단원), 노부영(가야금, 양금), 정수년(해금, 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등이 동참하게 되었다. 그 뒤 문화방송 청소년 음악캠프의 음악을 담당하던 조광재는 당시 윤건호 프로듀서로부터 팀의 이름이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슬기둥이란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슬기둥의 뜻은 '거문고의 현을 연주하는 소리를 입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슬기둥은 전통음악과 창작국악. 예술음악과 대중음악의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들면서, 조화를 꾀하는 손꼽히는 국악 실내악단으로 평가된다. 청중들은 슬기둥의 음악을 통해 신선하고 친근한 전통음악의 이미지를 만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슬기둥을 만들다시피 한 조광재는 이번 슬기둥 창단 20돌을 기려 그들의 베스트 음반을 내놓았다. 한동안 외도를 하던 조광재가 다시 국악의 세계로 회귀한 것이다. 이 베스트 음반에 수록된 곡들은 슬기둥 1기 즉 창단멤버들의 음악이다.
작·편곡 그리고 신디사이저에 조광재, 가야금·철금에 민의식, 피리에 문정일, 소금·대금·단소·북에 이준호, 기타·노래에 강호중, 해금에 정수년, 아쟁에 오경희, 양금에 노부영 등이 참여했다.
이번 음반의 수록곡은 산도깨비, 꽃분네야, 소금장수, 쑥대머리를 비롯하여 뜨락에 낙엽이 지면, 상주 모심기 노래, 우리 가보세, 어이하나, 길 떠나는 그대여, 낙화암, 한계령, 무주구천동, 태평성대, 여인, 여원무, 마포나루가 실려 있다.
또 이 음반에 실린 음악들은 가장 많이 사랑을 받았던 것들로 이 음반이야말로 그들의 진정한 베스트 중에 베스트일 수도 있다. 그가 작곡한 이 음반의 음악은 선율이 아름답고 전통적인 음악을 바탕으로 한 곡으로 조광재의 진가를 보여주는 것이란 평가이다.
그가 '슬기둥 베스트' 음반을 냈다는 소식에 초창기 슬기둥 단원이었던 한국예술종합학교 민의식 교수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 준다.
"나는 국악이 대중들에게 외면당하고 있어서 이를 극복하고, 대중들이 쉽게 우리 음악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 왔었다. 그러던 중 조광재씨가 국악 실내악단을 제안했고, 각 분야에서 연주 실력이 훌륭한 사람들이 참여해주어 슬기둥이 창단된 것이다. 당시 참여한 연주자들이 모두 나와 같은 사명감이 있었고, 호흡이 잘 맞았으며, 조광재란 훌륭한 작곡가가 있었기에 슬기둥이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는 생각이다.
그는 재주가 많았으며, 서양음악도 알았고, 우리와 호흡이 잘 맞았던 사람이다. 그런 그가 음악방향을 잘 잡아주고, 작곡과 편곡을 모두 해주었기에 우리가 쉽게 해낼 수 있었다. 그는 순박하고, 순수한 음악인임은 물론, 음악을 아름답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으며, 천생 우리의 맏형이었다."
조광재 역시 자신은 어쩔 수 없는 국악인이며, 다른 일은 하지 못하겠더라는 고백을 하고 있다. 새롭게 음악활동을 시작하는 그의 베스트 음반을 다시 듣고 올해 3장의 음반을 더 내겠다는 그에게 힘찬 손뼉을 쳐주는 것도 좋을 일이다. 그리고 국악은 이렇게 아름다운 음악임을 다시 한 번 새겨도 좋을 일이다.
| | "'한'이 '흥'으로 승화되는 음악 만들고파" | | | [인터뷰] '슬기둥 베스트' 음반의 작곡자 조광재 | | | |
| | | | | 인터뷰를 하자고 전화를 했다. 그는 흔쾌히 내 사무실로 오겠다고 했다. 약속시간에 정확히 맞춰 그가 들어서자 소탈한 모습에 호감이 갔다. 주변 사람들이 음악인이 아니라 건설 현장소장 같다며 놀린다고 웃는다. 하지만, 예술인입네 하여 이상한 몸차림을 하는 사람에 비하면 그것이 무에 흠이란 말인가?
- 이런 음악을 작곡하고, 슬기둥을 창단한 까닭은?
"대중들에게 외면받는 국악을 보면서 국악의 대중화를 위해서 뭔가 새롭게 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틀에 박힌 게 싫었다. 또 방송에서 음악을 담당하면서 국악 실내악단의 필요성을 느꼈다. 마침 훌륭한 연주자들이 흔쾌히 동참해주어 슬기둥이란 국악 실내악단이 생겼고, 좋은 음악을 만들게 되었다. 하지만, 초창기엔 원로들에게 야단을 많이 맞았는데 이젠 칭찬을 받고 있어서 다행이다."
- 작곡을 하면서 특히 염두에 두는 것은?
"나는 언제나 예쁘고 밝은 음악을 만들려는 노력을 한다. 그래야, 사람들의 삶을 풍요하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또 우리 음악이 단순히 한의 음악만은 아니란 생각이다. 한으로 멈추지 않고 오히려 흥으로 승화되는 음악을 만들 생각이다. 다만, 서양음악을 반영하는 대신 뿌리가 있어야 하며, 국적이 없는 음악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은 늘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그러면서 문득 이런 것들이 자기 음악의 범주에 붙들어두는 것은 아닌지 고민이 되기도 한다."
- 슬기둥이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데 이에 대한 생각은
"훌륭한 연주자들이 참여해준 슬기둥이 인기가 있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끔 조광재란 이름이 슬기둥에 묻혔다는 생각이 들 때는 좀 아쉽기도 하다. 이젠 슬기둥의 조광재보다는 작곡가 조광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계속 슬기둥을 하고 있는 후배들에게 짐이 될까 두렵기도 한 것이 사실이다."
- 이번 음반에 대해 이야기를 해달라.
"이 음반의 이름을 '슬기둥 베스트'라고 붙였지만 사실은 진정한 베스트라고 보기는 어렵다. 여기 실린 곡들은 주로 초창기 것들로 내가 음원을 가진 것들에 한정되어 있다. 지금까지 나온 모든 음반을 망라하여 베스트를 만들고 싶었지만 음원이 여러 곳에 나뉘어 있고,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서 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참 아쉬운 점이다."
나는 이 즈음에서 '산도깨비' 가사의 문제점을 짚어보았다. 가사란 노래의 중요한 또 한 부분이다. 그래서 가사가 좀 더 시적이며, 잘못된 부분이 없어야 훌륭한 노래일 것이란 생각이다. 그런데 '산도깨비'의 도깨비는 "머리에 뿔 달린 도깨비가...", "저 산도깨비 날 잡아갈까 / 꽁지 빠지게 도망갔네" 등으로 표현하여 일본 도깨비 '오니'를 생각하게 한다는 지적을 받는다.
사실 우리 도깨비 설화는 목 위로 표현된 것이 없다. 그저 도깨비를 '키가 팔대장 같은 넘', '커다란 엄두리 총각', '다리 밑에서 패랭이 쓴 놈', '장승만한 놈', '팔대상 같은 놈'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도깨비는 춤추고 노래부르는 것을 좋아하며, 예쁜 여자를 좋아하고 심술을 부리기도 한다. 또 힘이 장사이고, 신통력을 가져 사람을 부자로 만들어주거나 망하게 하기도 한다. 이렇게 신통력을 가졌지만 우직하고 소박하여 인간의 꾀에 넘어가는 바보 같은 면도 있다.
- '산도깨비'가 진정 우리 음악이라면 일본 도깨비 '오니'가 아닌 친근한 우리 도깨비를 등장시켜야 한다. 그런 지적을 알고 있는지? 또 고칠 생각은 없는지?
"전에 어떤 방송에선가 뿔이 하나 달린 것은 일본 도깨비 '오니'라고 들은 기억이 있다. 가사에 잘못이 있다면 분명 고쳐야 할 것이다. 특히 일본 것이라 더더욱이나 잘못을 바로잡는 것이 마땅하다는 생각이다. 추후 새로운 작업 때 리메이크하면서 고칠 계획이다. 그리고 나는 음악인으로 작곡은 할 수 있지만 좋은 가사를 짓는 데는 자신이 없다. 훌륭한 작사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조광재는 몇 시간의 인터뷰 내내 속에 있는 많은 이야기를 했다. 참으로 그는 "예술가입네!" 하는 것이 아닌 소박한 한 사람이었다. 그는 우리에게 앞으로 더 많은, 가슴을 따뜻하게 해줄 아름다운 음악들을 창작해 낼 것이란 믿음을 주고 있었다.
지금 그에겐 50여 명의 팬클럽이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가 대중가수도, 탤런트도 아니지만 그의 음악에 푹 빠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그의 인간성과 음악성이 어떻다는 것을 얘기하고 있음이다. / 김영조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