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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번 국도를 타고 남원을 넘어 구례읍을 지나기 전에 서시천을 잠시 이웃에 두고 달리게 된다. 서시천은 지리산 밑 산수유 마을로 유명한 산동에서 시작해서 섬진강으로 흘러간다. 전설에 의하면 진나라 시황제의 사신으로 불로초를 캐러 왔던 서시가 동남동녀 200명을 데리고 이곳을 지나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 길을 달리는 자동차들은 가끔 서시천 풍경에 빠져 자동차를 잠시 세우기도 한다. 이 곳은 멸종 위기에 놓여 있는 수달이 많이 살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서시천에 수달이 많은 이유는 뭘까? 수달의 먹이는 물고기다. 즉 서시천에 그만큼 물고기가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물고기가 모두 수달의 먹이만 되는 것은 아니었다. 서시천에서 평생 낚시를 했다는 김보근씨는 겨울 붕어를 놓고 수달과 한판승부를 벌인다.
그는 구례군 용방면이 고향이라고 한다. 평생을 이 곳에서 서시천을 끼고 살았다. 또한 낚시를 좋아해서 항상 낚시를 했다고 한다.
"서시천은 수달이 너무 많아. 수달은 말이야! 붕어가 좀 있다 싶으면 자리를 깔고 기다렸다가 잡아먹지. 수달은 물고기를 잡으려면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알지."
그가 처음 나에게 꺼낸 말이었다. 뭔가 고수의 냄새가 풍겼다. 그는 겨울 내내 이 부근에서 낚시를 한다고 한다. 그가 하루에 잡는 붕어는 대략 10여수 정도라고 하는데 겨울 붕어 낚시꾼치고 매일 이 정도를 잡는 사람은 드물다고 한다. 특히 이곳처럼 수십이 아주 낮아서 1m 미만인 곳에서는 더욱 어렵다는 것이다. 그가 붕어 잡을 것을 보고 인근 남원 낚시꾼들이 여러 명 왔지만 손맛 한 번 못보고 돌아갔다고 한다.
그의 말이 허풍일까 했는데 내가 함께 했던 1시간 동안 그는 무려 3마리의 붕어를 낚아 올렸다. 크기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말이다. 옆에 함께 하던 초보 낚시꾼이 한 마리도 잡지 못한 것에 비해 놀라운 성과였다.
그는 내가 옆자리에 앉아서 이것저것 질문을 하면 답변도 하곤 했는데, 그의 눈은 찌의 미세한 움직임도 놓치지 않는 최첨단 레이더처럼 움직이곤 했다. 붕어를 잡아 손으로 쥐고 있는 순간에도 그의 눈은 남아 있는 2개의 찌에 고정되곤 했는데 그런 집중력이 그를 겨울 붕어 낚시의 고수로 만들었던 모양이다.
"겨울에는 사람이나 붕어나 움직임이 별로 없어. 에너지를 최소화 시키려고 하니까 그런 거지. 붕어들도 거의 움직임이 없고 한 번 도망가서 갈대숲으로 가고 나면 하루 종일 나오지 않지. 그래서 아주 조심하면서 움직여야 돼. 내가 앉아 있는 곳 밑에 두더지라는 놈이 살고 있거든. 이 놈도 아주 예민한 놈인데 내가 앉아 있으면 그 놈이 땅 속에서 움직이는 것이 느껴진다고, 그 놈이 사람이 위에 있는 걸 모르는 거야. 내가 낚시를 하는 동안은 거의 움직이지 않아. 물 속은 물 밖보다 미세한 소리에 더 예민하지. 그러니까 사람의 미세한 움직임도 물고기가 이미 땅과 물을 타고 붕어가 느끼고 있다고 봐야 해."
물고기가 소리에 민감한 것은 여름이나 겨울이나 비슷하지만 겨울에 특히 더 민감하다고 한다. 그래서 겨울 붕어 낚시는 여름보다 10배는 더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찌도 그래. 여름에 찌가 춤을 추면서 움직인다면 겨울에 거의 잠자고 있다고 해야 할 거야. 움직임이 거의 없어. 바람만 살짝 불어도 붕어가 물었는지 아닌지 구분하기 힘들지. 그 미세한 움직임을 알아내는 것이 결국은 겨울 붕어 낚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어."
그가 낚시를 하고 있는 곳은 물이 흐르는 서시천의 본 천이 아닌 서시천 귀퉁이의 자연방죽 같은 작은 곳이었다. 그는 거의 한 겨울 내내 거기서 낚시를 한다고 한다. 이 작은 곳에 붕어가 있으면 얼마나 있다고 긴 겨울 동안 거기서 낚시를 하는 것일까?
그의 말에 따르면 보이기엔 여기가 아주 작은 방죽처럼 보이는데 여름에는 여기 전체가 물로 가득 차 있다고 한다. 가을이 되고 겨울이 되면서 물이 점점 줄어들어 작아 보이지만 사실은 물로 가득 차 있을 때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지금 보이는 이 작은 방죽은 큰물이 줄어서 만들어진 곳이지 처음부터 작은 곳이 아니라는 것이다. 큰물이 줄어들어 작아진 곳에 물고기가 얼마나 많이 있겠냐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또한 이 곳에 물고기가 많다는 것은 수달을 보면 되는데 수달이 매일 여기 와서 산다고 한다. 낮에는 그가 있으니까 수달이 모습을 보지 않지만 밤이나 이른 아침에 수달이 여기서 고기를 잡는다는 것이다. 즉 수달이 모이는 곳에 반드시 물고기가 많다는 것이다.
그가 진짜 고수인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이곳의 생태에 대해 잘 안다는 것이다. 거의 60년을 넘게 여기서 살았기 때문에 이곳에 대해 그는 모르는 것이 없었다. 어렸을 때는 여기서 물고기 잡고 멱을 감으면서 살았고 겨울이 되면 붕어 낚시를 하며 살았다고 한다. 특히 그는 겨울 붕어 낚시를 즐겨하는데 그 이유는 피라미 같은 물고기가 입질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겨울에 잡히는 것은 오직 붕어뿐이란다. 이틀 전에는 여기서 30cm급의 붕어를 낚아 올렸다고 한다.
기다림과 신중함, 그리고 지금의 모습이 아닌 사물 전체를 보는 눈이 세상사에도 필요하듯이 낚시를 하는 것에도 역시 중요한 요소였다.
"붕어를 낚으려면 붕어보다 똑똑해야지. 나는 붕어와 끝없는 신경전을 즐겨. 낚시를 시작하면 흥분과 기대감이 밀려오지. 그래서 이 한 겨울에 낚시를 하는 거야."
서시천의 겨울 붕어 낚시 고수 김보근씨와 수달이 오랫동안 즐거운 경쟁을 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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