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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희용
돼지를 다 잡고 나면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입을 즐겁게 할 차례입니다. 마당 한 쪽에 장작불을 지피고는 갓 잡은 돼지고기를 숯불에 올려놓습니다. 석쇠에 고기를 올려놓고 굵은 소금을 착착 뿌리면 지글지글 고기 익는 소리와 연기가 입 안 가득 침을 고이게 합니다.

갈매기살, 안심, 등심 등 연하고 맛있는 부위만 골라 굽기도 하려니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운 좋게 한 점 먹으면 어찌나 그리도 맛있는지, 아이들은 연신 "또 주세요! 또 주세요!"를 외칩니다. 평소에는 고기를 잘 먹지 않던 애들도 이렇게 마당에서 먹는 재미가 있어서인지 가리지 않고 부지런히 먹으니, 지켜보던 엄마들은 당신 아이들 이참에 영양보충 시킬 욕심(?)에 고기가 익자마자 서둘러 집어가니 그야말로 전쟁터가 따로 없습니다.

"아휴, 형님! 그 고기 다 안 익었어요."
"다 익었어. 안 익었다고 하고서는 내가 내려놓으면 동서가 가져가려고 그러지? 안 속지."
"하이고, 형님도 참!"

"엄마, 또 줘."
"천천히 씹어 먹어."
"서방님 쪼기 고기 다 익은 거 아닌가? 저건 내가 찜 했어요 서방님!"
"아이고 정신없어. 나는 한 점도 못 먹었구만."

"아따, 잘들 먹네 그랴. 저기 있는 게 죄다 고기니께 하나도 남기지 말고 다들 먹고 가."
"다들 제 새끼 먹이느라고 정신없네, 정신없어!"
"그래도 이렇게 북적대는 애들이 있어야 명절 쇨 맛이 나는 겨. 실컷 먹어라 잉."

"그러지 말고 다음 명절에는 두 군데서 구우유. 그럼 이렇게 안 복잡하지."
"이 사람아 그게 아녀. 잔뜩 줘봐 맛있나? 넘치면 맛없는 겨 이 사람아. 이렇게 북적대며 먹어야 그게 맛있는 겨."

ⓒ 장희용
ⓒ 장희용
여기저기서 동시에 한 마디씩 하니 고기가 입으로 들어가는 지 코로 들어가는지, 고기가 익었는지 안 익었는지 도무지 정신이 없습니다. 아이들은 이제 배가 조금 불렀는지 하나 둘 가마를 떠나서 소와 돼지 구경을 하러 갑니다. 숯불이 점점 약해지자 아이들 때문에 제대로 먹지 못했던 당질들은 번개탄을 살려서 다른 곳에서 구워먹다가 맛이 없다며 다시 이곳으로 오기도 합니다.

사촌형님들께서는 소주 한 잔 기울이시면서 이번 한식 때 할 묘 이장에 대해 말씀을 나누십니다. 두 곳으로 나뉘어져 있는 산소를 이번에 한 곳으로 모두 옮길 예정입니다. 간간이 큰 소리를 내기도 합니다. 한식(4월 6일)이 평일이다 보니 앞 당겨서 2일(일요일)에 하자는 말에 생일도 아니고 제사를 무슨 당겼다 미뤘다 하면서 지내냐고 의견충돌이 있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대로 편리하게 살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결국 제사를 옮길 수는 없다면서 한식날에 묘 이장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사촌들 모두 참석하기도 하되 정 바쁜 사람들은 할 수 없고, 대신 참석 못하는 사촌들은 그 날 온 사촌들하고 일꾼들 막걸리 값이라도 내는 선에서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소를 많이 키우는 사촌형님들이 소 값이 많이 떨어졌다며 걱정을 하십니다. 자연스럽게 농촌 현실과 정치 이야기로 화제가 옮겨집니다. 이야기하자면 길어집니다. 뭐, 정치 똑바로 하라는 것이지요. 정부도 그렇고 국회도 그렇고, 제발 국민 생각 좀 하라는 말이지요. 이번에 소를 열 마리 팔았는데, 마리 당 50만원씩 손해 봤다는 셋째 사촌형님은 단단히 부아가 나셨나 봅니다. 말로만 '국민, 국민'하지 말고 똑바로 하라면서 소주 한잔 들이키십니다.

분위기가 좀 험악(?)해지자 큰 사촌형님이 엉덩이에 묻은 지푸라기를 툭툭 털면서 한 말씀 하십니다.

"이렇게 온 식구가 모여서 고기 구워 먹이니께 좋기는 좋네 그려. 역시 설에는 이렇게 돼지 한 마리 잡아야 분위기가 산당께. 어이, 잘 먹었다! 그만 들어가서 얼큰하게 내장국 한 그릇 먹어야지. 어여들 일어나."

다들 방으로 들어가시고 둘째 사촌 형수님이 점심에 먹을 내장국을 푸고 계십니다. 장손도 아니면서 해마다 이렇게 고생만 하십니다. 그래도 불평 한마디 안 하십니다. 사촌들과 당질들까지 모이면 50여명이 넘습니다. 아무리 사촌 동서들이 도와준다고 해도 그 많은 식구들 맞이하는 게 보통 쉬운 일은 아닐 거라 생각합니다.
다들 방으로 들어가시고 둘째 사촌 형수님이 점심에 먹을 내장국을 푸고 계십니다. 장손도 아니면서 해마다 이렇게 고생만 하십니다. 그래도 불평 한마디 안 하십니다. 사촌들과 당질들까지 모이면 50여명이 넘습니다. 아무리 사촌 동서들이 도와준다고 해도 그 많은 식구들 맞이하는 게 보통 쉬운 일은 아닐 거라 생각합니다. ⓒ 장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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