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의 <빌라도의 예수>를 다시 읽게 된 것은 순전히 <다빈치 코드>류의 역사 추리소설의 범람 때문이었다. 인류의 가장 오랜 친구인 기독교 교리를 뒤집는 이 책의 성공으로 이와 비슷한 주제를 가진 각종 역사 추리소설이 봇물이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예수가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았고 성배는 그 예수의 배우자였던 막달라 마리아 그 자체라는 설에서부터(다빈치 코드), 예수가 사실은 신의 아들이 아니라 사람이 아들이었으며 템플 기사단은 그 비밀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전원 살해당할 수밖에 없었다는 설(최후의 템플 기사단), 심지어는 예수라는 인물이 역사상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는 설까지(지저스 퍼즐). 절대적인 진리로 인식되어졌던 성서에 의구심을 일으키는 수많은 책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이러한 책들을 접하며 서서히 종교를 역사와 문화의 산물로 인식해가던 어느 날, 책장에서 우연히 <빌라도의 예수>라는 책을 발견했다.
몇 년 전 작가에 대한 호감으로 사두었다가 그 내용이 너무 난해해서 중간에 포기했던 책. 종교에 관한 다양한 사유로 벌겋게 충혈 된 내 시선은 <빌라도의 예수>라는 책의 난해함을 정면 돌파할 성실성을 충분히 부여해주었다.
소설의 중심인물은 빌라도이다. 로마의 통치아래 놓여 있던 유대인의 땅에서 당시 로마파견 총독이었던 본디오 빌라도. 아내 프로쿨라와 함께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파견근무를 나온 그는 그 지역 통치가 고도의 전략을 써야하는 교묘한 일임을 알고 신중을 기한다. 유대인들은 뚜렷한 선민의식을 가지고 깊은 신앙심으로 똘똘 뭉친 민족이기 때문에 로마는 다른 식민통치지역과는 달리 그들 종교의 독자성을 상당히 인정해주면서 총독의 권한을 제한되게 부여하는 특별한 정책을 취하고 있었다. 이 땅에서 유대인과 마찰을 일으키지 않으면서도 로마의 통치구역으로 안정되게 만들기 위해서는 노련함과 빠른 정치적 결단력이 필요했던 것. 이를 위해서 빌라도는 유대인들과 그들의 종교에 대해 깊게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게 된다.
어떤 현상도 그 핵심을 파고 들어가 보면 정치적 이유와 기득권 집단의 이익 향배가 철통처럼 자리하고 있기 마련이다. 유대인들의 종교적 믿음도 마찬가지였다. 성전인 예루살렘을 장악하고 있는 안나스 대제사장과 그 일파는 예루살렘이라는 성전을 통해 막대한 경제적 이익과 독점적인 권력을 거머쥐고 있었고, 그 반대에는 '율법' 자체에 여유로운 해석을 보였던 디아스포라 학파와 소외된 갈릴리 지방 사람들이 있었다.
주류를 이루지 못했던 이들은 점점 세력화했고 마침내 이들 사이에서 '요한'이라는 예언자가 나타나 예루살렘 주류 지식인들을 비난하기 시작한다. '요한'이 헤로데에 의해 처형된 후 '요한'을 따르던 무리들의 2인자였던 인물이 사회에서 천대받던 모든 천민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건네며 폭풍처럼 빠른 속도로 급부상하니 그 인물의 이름이 '예수'였다.
이 소설이 재미있는 것은 '예수'를 당시의 역사 상황에서 철저히 정치적으로 해석했다는 점이다. 예수가 정치적으로 철저히 소외되었던 갈릴리 출신이라는 점, 혁명의 주도세력이 되기 마련인 가난한 자들 위주로 크게 어필했다는 점, 유대인들이 모두 한자리에 몰려들어 관심이 증폭되는 유월축제를 겨냥해서 기적을 행했다는 점 등 저자 정찬이 묘사하는 예수는 탁월한 정치력을 가진 열정적인 혁명가였다.
예수에게 사형을 선고했던 빌라도의 시점에서 서술되었다는 점이 소설을 더욱 흥미진진하게 만든다. 소설은 예수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빌라도의 팔레스타인 지방 취임에서부터 그의 개인적 성향, 냉철한 정치적 판단, 그리고 로마의 제 2인자였던 세야누스와의 관계, 황제 티베리우스에 의한 세야누스의 거세와 그에 따른 빌라도의 실각가능성 등 철저히 빌라도의 생애를 중심으로 내용을 전개한다.
그 와중에 등장하는 유대인의 신앙과 예수의 혁명적 정신, 그리고 빌라도의 아내 프로쿨라의 입교로 상징되는 신흥종교의 출발에 대한 묘사는 당시의 로마와 팔레스타인 지역의 정치적 역학관계와 그리스문화와 유대문화의 결합, 유대교에서 기독교가 떨어져 나와 자생하게 된 상황 등을 생생하게 재현해내고 있다.
빌라도라는 한 인물의 일생을 따라가면서 당시의 시대상황을 총체적으로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몇 천 년 전, 기원전 이야기이다. 사도신경에 단 한 줄 '본시오 빌라도 치하에서 고난을 받으시고 묻히셨으며...'로 등장하는 인물에게 조명을 맞춰 이토록 생생한 성격으로 육화시켰다는 데에서 작가에게 감탄을 금치 못하게 된다. 소설가에게 상상력이란 어쩌면 가장 중요한 재능일지도 모른다.
그가 그려내는 예수는 철저히 사람의 아들이다. 강렬하게 분노하고, 강렬하게 아파하고, 강렬하게 저항하고, 강렬하게 선동하는 사람냄새 물씬 풍기는 사람이다. 약자의 아픔에 철저하게 슬퍼하고, 약자의 고통을 온몸으로 어루만져주고, 기득권세력의 돈상자를 기득권세력의 총화인 성전에서 망설임 없이 뒤집어엎는 열정적인 혁명가이다.
...강도의 소굴, 강도의 소굴... 안나스는 식초에 적신 수건으로 뜨거워진 이마를 문지르며 되뇌었다. 예수의 대담성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다. 자신의 몸뚱이가 짓밟히는 것 같았다. 참혹한 감각이었다. 눈앞이 흐려지면서 사지가 떨렸다. 고통은 막대기같이 뻣뻣한 살을 뚫고 심장으로까지 파고들었다. 그는 신음을 내지 않으려 애를 썼다. 시종이 물을 탄 아몬드 즙을 가지고 왔다...
성서에도 나오는 이 유명한 장면의 묘사는 가히 독자들의 마음에 뜨거운 무엇이 솟구치게 하는 책의 클라이맥스다. 예수라는 대담한 혁명가가 기득권층 권력의 산실로 상징되는 성전에서 한 치의 망설임 없이 탁자를 뒤엎는 이 장면에서 나는 불현듯 남아메리카의 혁명아 체 게바라를 떠올렸다. 정찬의 예수는 이렇게 철저한 사람의 아들, 똑같은 사람으로서 부당하게 핍박받는 약자들의 고통을 온몸으로 아파했던 사람, 그 자체였던 것이다.
권력의 집중은 언제나 부의 집중을 유발하고 부의 집중은 결국 다수 민중의 고통으로 이어져 혁명을 부른다. 역사상 있었던 많은 사건의 발단이 소수의 금전욕에서 비롯되었음은 이 작품에서도 어김없이 발견할 수 있다.
...성전에 물자를 공급하는 상인이나 수공업자의 생계가 보장되었다. 이 특권들은 몇몇 유력한 가문이 독점했다. 진설병 제조는 가르모 가문이 세습했다. 훈향 제품 제조는 유티노스 가문이 세습했다. 제단용 땔감 공급은 베냐민 가문이 맡았다. 이 가문들은 수많은 수공업자와 노동자, 상인을 거느렸다. 성전은 예루살렘인을 먹여 살리고 있었다. 빌라도가 그들의 동향을 물은 것은 이유가 있었다.
"예루살렘인들이 요한에 대해 날카로운 반응을 나타내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성전을 부정한다는 것은 경제적 삶의 토대를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으니까요."...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이 기독교 하느님에 대한 비판과 허구성을 이성적으로 조목조목 지적한 책이라면 정찬의 <빌라도의 예수>는 예수의 신성보다는 인성에 강조점을 두고 인간으로서 예수의 삶을 정치적, 역사적, 문화적으로 다각도에서 조명한 감성적인 책이다. <사람의 아들>을 읽은 후에는 기독교 교리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이는 데 반해 <빌라도의 예수>를 읽은 후에는 아름다운 한 인간이었던 예수에 대한 깊은 존경심을 가지게 됐다.
정찬은 끊임없이 종교적인 주제에 천착하는 작가이다. <세상의 저녁>에서 한 신부의 삶을 추적하는 형태로 기독교에 대한 깊은 사유를 보여주었던 그가 '예수'라는 기독교 교리의 핵심 인물을 본격적으로 묘사했다. 작가 특유의 '깊고 진지함'이 유감없이 배어들어간 작품이 되어 묵직한 종교적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종교란 무엇인가? 종교는 인간에게 어떤 의미가 되어야 하는가? 예수는 꼭 신의 아들이어야만 했는가?
진지하고 깊이 있는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 종교에 대해 깊이 사유하고 싶은 사람, 예수 전후의 역사적 상황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은 필히 읽어야 할 책이다. 한가지, 이 책은 반드시 정독해야 한다. 라디오를 들으면서 보거나,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읽거나하는 멀티태스킹은 금물. 작정을 하고 책상에 앉아 허리를 꼿꼿이 펴고 100% 마음을 던져 읽어야 그 향내를 맡을 수 있는 묵직하고 엄격한 책이다. 하지만 반드시 그렇게 하라고 권하고 싶다. 일단 그 세계에 접속하면 그 깊이가 주는 울림에 한없이 전율하게 될 것이므로.
덧붙이는 글 | 참고서적 : 얼 도허티 <지저스 퍼즐>, 댄 브라운 <다빈치 코드>, 레이먼드 커리 <최후의 템플 기사단>, 송대방 <헤르메스의 기둥1,2>, 이문열 <사람의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