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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철궁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일단 부닥쳐 본 대군의 무공은 과거와 확실히 달랐다. 일대 일이라면 몰라도 회마까지 합공하는 현재로서는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더구나 아무렇지도 않은 듯 보였지만 한 자나 파고든 요서보검은 그의 내부를 진탕시키고 있었다. 요서보검은 백련교도들의 한이 응집되어 스며든 귀기(鬼氣)가 서린 검. 독기가 스며있다고 할 수 있는 검이었다.

하지만 장철궁은 부러질지언정 굽히지 않는 인물이었다. 그는 대소를 터트리며 주먹을 말아 쥐고 빠르게 대군의 무릎을 노리며 휘둘렀고, 발을 살짝 들어 하체를 노리고 파고드는 회마를 짓누르는 듯 했다. 아주 간단한 동작이었지만 회마는 장철궁의 발에 맞서지 않고 뒤로 몸을 뒤집으면서 재차 허리를 노리며 할퀴어 갔다.

이미 그의 두 팔은 대군의 공격에 맞서 허공에 들려있는 상태라 허리가 비어있었던 것이다. 마치 장철궁의 반격을 예상했다는 몸놀림이었다. 허나 장철궁은 대군의 마지막 발차기를 팔목으로 막으며 권을 내지름과 동시에 회마가 가까지 오기를 기다려 몸을 슬쩍 돌리면서 왼발을 들어 연속적으로 다섯 번을 차냈다.

빠박--파파팍---!

대군은 장철궁의 주먹에 무릎 근처를 맞고는 급히 뒤로 물러섰고, 회마 역시 손톱을 세워 장철궁의 발을 막음과 동시에 발목을 할퀴려 들었으나 손목이 부러지는 듯한 고통과 함께 뒤로 주륵 물러섰다.

"……!"

대군과 회마의 얼굴에 실망감이 떠올랐다. 그것은 자기 자신들에 대한 실망감이었다. 아무리 절대구마의 진전을 완벽히 이어받지 못했다고는 하나 둘이서 장철궁 하나를 어찌해보지 못했다는 자괴감이었다.

본래 붉은 대군의 전신에 불이 붙은 듯 시뻘겋게 변했다. 그의 전신이 마치 불꽃이 타오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회마 역시 더욱 죽어버린 재처럼 잿빛으로 변하며 기괴한 기류를 흘리고 있었다. 두 인물 모두 공력을 최대한 끌어올리고 있다는 증거.

허나 정작 공격을 시작한 것은 장철궁이었다. 그 역시 이 싸움을 오래 끌어 좋을 것은 없었다. 그의 둔중하게 보이는 신형이 성큼 발걸음을 내딛자 어느새 회마의 앞으로 다가들었고, 그의 오른손이 반원을 그리며 회마의 머리를 짓눌러갔다.

장철궁의 의도는 명백했다. 대군보다는 회마가 좀 더 쉬운 상대였다. 우선 회마부터 처리하고 대군과 상대하겠다는 생각임을 대군이나 회마가 모를 리 없었다. 회마는 정면으로 맞닥뜨리지 않고 빠르게 보법을 전개하여 뒤로 물러났다가 몸을 옆으로 틀었다.

"헛…!"

하지만 보통 사람의 두 배보다 크게 보이는 장철궁의 손은 마치 자석에 이끌리는 쇠처럼 기세를 늦추지 않고 회마의 머리를 쪼개놓으려는 듯 바싹 따라 붙었다. 회마의 입에서 헛바람이 빠지는 신음성이 흐르며 낭패한 얼굴에 낭패한 기색이 떠올랐지만 그는 더 이상 물러서지 않았다.

그의 몸이 회전하더니 오히려 장철궁 쪽으로 몸을 거꾸로 눕히며 양 손의 손톱을 세워 장철궁의 가슴을 노리며 파고들었다. 수비를 완벽히 갖추지 못하고 한 위험한 공격이었지만 그것은 수세를 취하는 것만으로는 장철궁의 공격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란 판단 때문이었다.

최선의 수비가 공격이라는 말을 실천한 셈이었다. 더구나 그에게는 다른 의도도 있었다. 어차피 합공을 하는 마당에 자신이 택할 선택이 무엇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합공의 기본은 자신이 상대를 격살하려는 것보다 자신과 함께 합공하는 동료에게 결정적인 기회를 주는 것이다.

상대의 치명적인 공격만 피할 수 있다면 어느 정도의 손해는 감수할 수 있었다. 대군이 상대에게 치명적인 살수를 전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면 자신의 팔다리 하나쯤은 부러져도 손해가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대군이 무섭게 주먹을 휘둘러오며 장철궁의 좌측으로 다가 들었다. 장철궁은 왼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노리고 파고드는 회마의 공격을 해소시키며 오른손으로 여전히 회마의 얼굴을 노리며 내리누르다가 몸을 빙글 돌리며 좌측 발을 뻗었다. 회마의 얼굴을 짓뭉갤 수는 있겠지만 그러다가는 대군의 주먹이 자신의 좌측허리를 강타할 것이다.

타타---탁---!

허나 장철궁은 전혀 당황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는 발로 대군의 주먹을 막아내며 왼손으로 가슴을 파고드는 회마의 공격을 해소시켰다. 동시에 우측으로 몸을 돌리며 물러나는 가운데에서도 그의 우장(右掌)은 회마의 머리를 노리는 듯하다가 몸을 비트는 회마의 가슴을 격타했다.

퍽---!

격타음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회마는 몸을 비틀며 몸을 일으키다가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그의 입에서 피가 터져 나오며 빠르게 우측으로 몇 바퀴를 구르고 있었다.

"억---!"

정통으로 맞은 것은 아니었다. 장철궁 역시 우측으로 밀려나면서 격타한 것이기 때문에 그리 큰 위력이 있다고 할 수는 없었다. 더구나 회마가 몸을 비트는 바람에 장철궁이 노리던 심장부위가 아니었지만 내부를 진탕하는 충격은 회마의 정신을 아찔하게 만들었다. 더구나 장을 맞은 회마의 가슴은 마치 칼로 빽빽하게 난도질을 한 듯한 상처가 선명하게 나면서 옷뿐 아니라 살갗마저도 다져놓은 고기처럼 보였다.

바로 백련교의 독문장법인 백인장(白刃掌)이었다. 하지만 그것의 위력은 과거 손가장에서 윤소소가 보였던 그런 것이 아니었다. 스치기만 해도 살이 난도질 쳐지는 경천동지할 위력이 있었다. 더구나 정작 스쳐 맞은 회마는 살갗이 다져지는 고통보다 마치 쇠몽둥이로 맞은 것과 같은 큰 충격에 내부가 진탕해 심한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대군이 더욱 맹렬하게 공격해 들어갔다. 무리를 해서 회마를 공격했던 장철궁은 대군의 맹렬한 공격에 일순간 선기를 빼앗겼다. 대군은 한 순간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치명적인 공격을 가했다. 어지럽게 대군의 손과 발이 장철궁의 대혈을 노리며 파고들었다.

일순간 대군의 주먹이 장철궁의 옆구리를 스치자 장철궁의 장포가 칼로 베인 듯 베어져 나가며 나풀거렸다. 직각으로 꺾이는 대군의 발 공격도 무시하기 힘들었다. 장철궁의 발목과 무릎, 그리고 낭심을 걷어차 올리는 대군의 공격은 한 동작이라고 할 만큼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좋아…!"

무엇이 좋다는 말인가? 장철궁의 입에서 탄성인지 비웃음인지 모를 소리가 터져 나오며 쌍수를 빠르게 내뻗었다. 동시에 그의 쌍수가 호선을 그으며 허공을 휘저었다. 그의 신형은 오히려 공격에 오는 대군을 향해 마주쳐갔다.

불리한 상황이었지만 계속 수세에 몰릴 수는 없었다. 그의 쌍수에서 장영(掌影)이 피워 올랐다. 그러자 허공에 기이한 광경이 펼쳐졌다. 피가 탈색된 듯 하얗게 변한 커다란 손바닥이 허공에 떠올라 손그림자의 막(幕)을 형성하더니 일순간에 우박이 내리듯 대군의 전신을 덮고 있었다.

수세에 몰렸던 장철궁이 느닷없이 발악을 하듯 공격해 오자 대군은 일순 당황했으나 오히려 승부를 보려는 듯 더욱 맹렬하게 공격해갔다. 허공에서 손과 발이 뒤엉키며 무수한 격타음을 질러대고 있었다.

퍼퍼퍽---!

큰 충격에 바닥을 굴렀던 회마 역시 고통을 참으며 장철궁의 하체를 노리고 바닥을 기는 것과 같은 형상으로 쏘아왔다. 일순 어지럽게 뒤엉킨 세 사람 중에 대군의 신형이 휘청거리는 듯 했다. 장철궁의 하체에 이어 옆구리를 공격하던 회마의 얼굴에도 절망감이 떠올랐다. 장철궁의 가공할 무위에 대군의 공격이 철저하게 봉쇄되고, 회마마저 장철궁의 발에 짓이겨질 형국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뜻밖이었다.

퍼퍽--- 찌이익-----!

"흡…!"

묵직한 신음소리는 장철궁의 입에서 터져 나오고 그의 신형은 뒤로 네 걸음이나 위태롭게 흔들리며 물러서고 있었다. 분명 두 사람의 합공에도 전혀 밀림이 없이 공격했던 장철궁이 왜 갑자기 멈칫하며 대군의 권에 가슴을 맞고 회마에 의해 옆구리의 살점이 뭉턱 뜯겨져 나간 것일까?

장철궁의 옆구리에서 선혈이 터져 나오고 입에서 흘러나온 핏물이 그의 턱을 타고 가느다란 혈선을 그리고 있었다. 대군의 가슴을 강타하고 동시에 회마의 얼굴을 짓이기려는 순간 왜 진기가 마디마디 끊어지며 잠시 멈칫했던 것일까? 갑자기 왜 머리가 빠개지듯 아파왔던 것일까? 그것으로 인해 눈 깜짝할 시간을 주게 되었고, 그 짧은 순간에 오히려 장철궁 자신이 당한 것이다.

장철궁은 대군과 회마의 공격에 당한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망연자실한 표정을 띠었다. 그리고 그는 주위를 둘러보며 회의에 찬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셋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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