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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잡아 수조에 풀어놓은 빙어들. 등 부분은 회갈색, 배 쪽은 은백색을 띄고 있다.
갓 잡아 수조에 풀어놓은 빙어들. 등 부분은 회갈색, 배 쪽은 은백색을 띄고 있다. ⓒ 이덕림
"울타리너머 호수가 소가 지나가도 끄떡없을 만큼 꽁꽁 얼었다. 얼음장 밑에서 건져 올린 빙어에서 오이 맛이 나는 구나."

춘천호의 끝자락이 깊숙이 파고든 화악산 줄기 아래, 평소 꿈꾸던 대로 하얀 집을 짓고 그림을 그리고 사는 친구가 보낸 한통의 이메일에 끌려 군데군데 얼음이 깔린 골짜기 길을 조심조심 더듬어 찾아갔다.

이름 그대로 섭씨 10도 이하의 찬물에서 사는 빙어(氷魚). 그랬다. 갓 잡아 올린 빙어 살에선 풋풋한 오이 냄새가 감돌았다. 옛 어른들이 빙어를 일러 '과어(瓜魚)'라고 부른 연유를 알만하다.

두터운 고체로 변한 드넓은 호수는 그대로 운동장이었다. 지름이 한 뼘씩 되는 구멍을 뚫어 놓고 낚시 줄을 드리운 사람들로 얼음판은 장터처럼 북적였다. 저마다 얼음구멍 옆에 사발만 하게 파놓은 얼음웅덩이 속에는 잡아 올린 빙어들이 꼬물거리고 있었다. 빙어는 어른 검지에서 중지 크기의 고만고만한 은백색 물고기들이다.

빙어는 본래 호수에만 머물러 사는 물고기가 아니었다. 강과 바다 사이를 오가며 생활하던 활기찬 회유성(回游性) 어류였다. 주로 기수역(汽水域)과 연근해에서 지내다 봄이면 산란을 위해 강물을 거슬러 올라왔다. 지금의 작고 가녀린 모습만 보고서는 빙어가 그처럼 이동성이 큰 고기였음을 알아차리기는 쉽지 않다. 빙어는 날렵할 뿐 아니라 강인했다. 몸집도 물론 컸다. 백과사전에도 빙어의 몸길이가 15cm정도라고 설명되어 있는 것을 보면 적어도 지금의 두 배는 됐음을 알 수 있다.

호수 끝자락이 밀고 올라온 춘천호 상류의 한 골짜기 어귀. 30~40cm두께로 언 얼음판 위에 파시(波市)가 서듯 빙어낚시꾼들이 몰려있다.
호수 끝자락이 밀고 올라온 춘천호 상류의 한 골짜기 어귀. 30~40cm두께로 언 얼음판 위에 파시(波市)가 서듯 빙어낚시꾼들이 몰려있다. ⓒ 이덕림
빙어가 분류상 '바다빙어목 바다빙어과'라는 것과 분포지역이 알류산 열도, 쿠릴 열도, 사할린, 일본의 북해도 등 북쪽 바다임을 보더라도 빙어의 DNA속에 들어 있을 바다에 대한 향수(鄕愁)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민물고기와 달리 소금물 속에서도 잘 견디는 것을 보아도 빙어와 바다의 인연을 알 수 있다. 또 보름달이 뜨면 수많은 빙어들이 일시에 몰려 나와 마치 축제를 벌이듯 떼 지어 움직이는 현상은 망월(望月) 아래 함께 어울려 강물을 역류해 오르던 때의 기억 때문일 것이다.

빙어가 여리고 왜소해진 것은 댐에 갇혀 살면서부터이다. 댐이 들어서면서 바다로 돌아갈 수 없게 된 빙어들은 어쩔 수 없이 호수에 머무를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바다를 잃고 호수에 정착하면서 행동반경이 좁아지고 그런 만큼 몸집도, 힘도 줄어들고 만 것이다. 더욱이 인공수정을 통해 대량 양식이 이루어지면서부터는 종자의 다양성마저 잃어버려 갈수록 왜소화와 함께 획일화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바다의 꿈을 잃고 호수에 갇혀 사는 '호수표(標)' 빙어들. 인간이 만든 구조물은 빙어의 호연지기를 빼앗고, 빙어를 불행에 빠뜨린 게 아닐까. '호수의 요정(妖精)'이라는 환상적인 별명을 붙여 주었지만 빙어에게는 오히려 모욕이 될지 모르겠다. 빙어는 하루빨리 호수를 벗어나 바다를 보고 싶고, 강과 바다를 오가며 자유로운 삶을 누리고 싶을 테니까.

동지 무렵에 나타났다가 입춘 즈음에 홀연히 사라져 버리는 호수의 빙어. '바다 꿈'을 꾸기 위해 호수 밑바닥으로 내려가 잠드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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