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계에는 두 가지 줄이 있다. 공식적인 줄과 비공식적인 줄, 노무현 대통령 혼자 비공식적인 줄을 깨려고 줄기차게 노력하고 있는 거 잘 안다. 그러나 잘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지난 2일 청와대에서는 대통령 주재로 열린 8·31 후속 대책 정책토론회가 열어 '재건축 제도 전면 재검토'를 선언했다. 그러나 강북에서 만난 한 공인중개사는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 공인중개사는 "비공식적인 줄을 만약 없앤다면 정부를 믿겠다"는 전제를 달았다.
그는 과거 부도로 사라진 건설업체에서 설계 업무를 담당했었고, 이후에는 건설업체에 종사하다가 공인중개업을 시작한지 5년 남짓 됐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비공식적인 줄'에 대한 그의 신념은 경험에서 비롯됐다.
"예전에 신도시 한 지역에서 하수도 공사를 맡았어요. 분명히 공사에 하자가 없는데 준공이 안 떨어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주변에 아는 업자가 담당 공무원에게 '다방에서 차 한잔 하자'고 말하고 봉투 주면 당장에 해결된다고 하더군요. 실제 그렇게 했더니 공사 준공이 났어요."
사실 비공식적인 줄은 과거의 문제로만 치부될 수 없는 현실이다. 비공식적인 줄이 여러 경로로 가동되고 있기 때문이다.
비공식적인 줄의 실체
지난 달 19일 오전 11시쯤. 국무총리실과 감사원 암행 합동 점검반은 부산 중앙동 한국철도시설공단 영남지역 본부 건설담당 손아무개 팀장 사무실에서 손씨가 경부고속철도 언양-경주 S시공업체 간부로부터 200만원을 받은 것을 현장에서 적발해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
이는 설날을 맞아 제공한 '떡값'이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경찰은 떡값 이외에도 손 팀장의 통장에 현금 2억8000여만원이 들어있는 것을 확인하고 돈의 출처를 확인 중이다.
한국철도시설공단 '200만원 떡값' 사건은 개인적인 비리로만 치부할 수 없는 문제다. 고속철도 건설과 철도시설을 관리하는 한국철도시설공단은 지난해 1월 국가청렴위원회가 발표한 '2004년 공공기관 주요 대민업무 청렴도 측정' 결과 조사대상 15개 공기업 가운데 최하위를 기록했다.
금품·향응 제공율이 5.7%로 다른 기관 평균 1.7%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수십 조원이 투입되는 고속철도공사에 따른 필연적인 비리라고 보기에는 그 정도가 심하다.
정치권, 경찰, 검찰을 농락하고 있는 거물 브로커 윤상림씨도 사실 알고 보면 건설 브로커다. 현대건설, 롯데건설, 포스코건설 등이 윤상림씨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있다. 이들은 시공능력 순위 10위 안에 드는 굴지의 건설업체들로 윤상림씨를 로비 창구로 활용했다.
더욱 놀라운 일은 윤상림씨가 경기도 하남시 풍산지구 택지개발 과정에도 깊숙하게 개입돼 있다는 점이다. 하남 풍산 지구는 판교 다음으로 관심을 끄는 지역이다. 토지공사가 택지를 분양한 풍산지구는 30만7000평 규모에 국민임대주택을 포함해 아파트 5700여 가구가 공급될 예정이다.
검찰에 따르면 토지공사가 2003년 말 풍산 지구 택지 공급 당시 우리종합건설(윤상림이 회장 행세를 했던 업체)이 택지 청약자격에 미달됐는데도 자격 조건을 바꿔가면서 택지를 분양 받도록 해 준 혐의가 있다고 밝혔다. 물론 토공은 "적법한 절차를 거쳤다"고 주장하고 있다.
윤상림, 풍산 지구 분양가 끌어올린 장본인?
결국 시행사인 우리종합건설은 하남 풍산 지구의 노른자위 땅으로 평가 받는 4-4블록을 공급 받았다. 그리고 시공사로 삼부토건을 선택했다. 우리종합건설은 삼부토건에 4-4블록을 팔면서 수십-수백억 원 시세차익을 남겼음은 불문가지이며, 그 과정에 윤상림씨가 깊숙하게 개입돼 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검찰은 3일 "삼부토건이 이미 윤상림씨에게 4억 원을 건넸다"고 밝혔다.
윤상림씨는 이와 관련 평소 중소건설업자들에게 "(우리종합건설의 4-4블록을 넘겨주는 대가로) 삼부토건에서 30억원을 받기로 했다"고 말한 바 있다.
토지공사가 서민주거안정을 위해 조성한 공공 택지가 시행사와 시공사를 거쳐면서 가격이 몇 배 부풀려졌고, 그 결과 풍산 지구에서 분양되는 민간아파트 평당 분양가는 1200만원 이상으로 굳어져 버리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하남 아파트 시세가 700~800만원 비교해 볼 때 풍산 지구의 고분양가는 주변 아파트 가격까지 끌어올릴 가능성이 아주 높다.
이런 현상은 99년 이후 계속 벌어진 문제다. 토지공사와 주택공사는 강제 수용권을 이용해 공공택지를 조성하고 시행사에 넘기면, 시행사는 다시 시공사(대형건설업체들)에게 되팔면서 천문학적 액수의 시세 차익을 남겼다.
그 과정에서 윤상림씨 같은 종류의 수많은 건설 브로커들이 생겨났고, 서민들은 고분양가로 인해 점점 더 내 집 마련의 기회에서 멀어져 갔다.
경실련이 밝힌 자료에 따르면 1999년부터 2003년 사이에 택지를 조성해 분양한 ▲용인 죽전 ▲용인 동백 ▲파주 교하 ▲남양주 호평 4개 지역의 경우, 평당 54만원에 수용된 토지가 불과 몇 개월 사이에 702만원(건축비와 기타 비용을 제외한 순수한 땅 값)에 소비자에 판매됐다.
시스템 개혁이 필요한 이유
판교로 인해 주변 부동산 가격이 미친 듯이 올라간 이후 지난해 6월 17일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판교 분양 중단과 함께 부동산 정책 원점 재검토를 지시했다. 그래서 나온 게 8·31 부동산 정책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말하면 별로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서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부동산 거품 제거'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싸늘하게 이야기하면 판교 평당 분양가 1300만원이 1100만원으로 변한 것밖에 없다.
정부는 서울시의 재건축 규제 완화 움직임 때문에 강남 아파트 가격이 상승하자, 재건축 허가권 환수를 검토하고 있다. 정부는 8·31 후속 대책과 관련 ▲청약제도 개선 ▲분양가 인하 ▲건설제도 합리화를 포함해 중장기적 과제까지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참여정부에 주어진 시간은 그렇게 많지 않다.
재건축 제도 전면 재검토에 대해서도 기자가 만난 중개업자는 "아마 지자체가 조례 개정을 통해 이리저리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 수 있다"면서 "정권이 바뀌면 정책이 분명히 바뀔 것이기 때문에 기다리면 된다"고 설명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연두 기자회견에서 부동산과 관련 "정책이라는 것은 어떤 면에서 게임"이라고 말했다. 게임에는 승자와 패자만이 존재한다. 지금까지 부동산 투기꾼들에게 참여정부는 철저하게 패배였다.
적을 확실히 물리치려면 치밀한 전략과 함께 정공법이 필수다. 아파트 가격의 과도한 거품 제거와 서민 주거 안정이라는 목표와 배치되는 과거 관행이나 제도와 과감한 결별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래야 부동산 불패 신화에서 국민들이 자유로워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