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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리> 겉표지
<캐리> 겉표지 ⓒ 황금가지
스티븐 킹의 호러 소설들은 대부분, 이 세상에 있지 않은 것(또는 "있다고 우리가 흔히 생각하지 않는 것")을 공포의 소재로 다루고 있다. 강력한 초능력이나 염력, 또는 악령 내지 초자연적인 괴물이 등장하며, 그 외 많은 소설에도, 비슷한 종류의 초자연적인 존재나 힘이 등장한다. 그러나 그의 소설에서 정말 공포를 일으키는 것은 그런 존재들이 아니다. 그의 소설에서 정말 무서운 것은 바로 인간이다.

그런 점에서 스티븐 킹의 소설은, 단순히 기괴한 괴물 내지 악랄한 살인자만으로 공포를 자아내려 하는 다른 공포물들과는 차별성을 보여준다. 물론 그의 소설 중에도, 단순히 초자연적 존재의 공포에만 기댄 것도 있다. 그러나 정말 뛰어난 소설들엔 거의 어김없이, 괴물이나 외계인보다 더 무서운, 탐욕스럽고 이기적이며 내면의 병을 광기로 폭발시키는 인간들이 나온다.

<캐리>는 일종의 거대한 '이지메'가 한 소녀를 괴물로 만들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메인 주의 작은 마을 챔벌레인은 결국, 미쳐버린 주인공 캐리의 초능력으로 인해 파멸을 맞는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가장 순진하고 가여운 존재는 바로 캐리다.

오히려 더 무서운 것은, 자기 쾌락을 위해 캐리를 괴롭히는 동급생 크리스와 그녀의 애인, 광신적인 신앙으로 캐리를 학대하는 그녀의 어머니, 그리고 그것을 뻔히 알면서도, 귀찮아서 또는 말려들기 싫어서 방관하는 다른 학생들과 마을 사람들이다. 겉보기엔 평화로운 마을의 모습은 결국, 캐리 같은 약자들의 희생으로 쌓아진 것이고, 마을 사람들은 곧 무서운 대가를 치르게 된다.

여기서 챔벌레인 마을이 맞는 파국은 비극적이지만, 그저 비극이라기보다는, 역설적으로 '정화'의 느낌을 준다. 마을은 캐리라는 한 사람의 정당한 욕구, 인간으로서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짓밟았다. 구약성서에서 이스라엘은 죄를 지을 때마다 불이나 괴물, 외적을 통해 신의 징벌을 받았다. 캐리 역시 챔벌레인 마을에 벌을 내린 것이다.

단 그의 징벌은 어떤 이성 내지 자제력이 전혀 없는 것이었고, 그래서 무고한 사람들까지 참변을 당한다. 그는 신을 대신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신이 되어 힘을 드러냈다. 교회 안에 들어가지만 신은 그녀에게 대답하기를 거부한다. 왜냐하면 그의 어머니와는 다른 방법이었지만, 캐리는 결국 신을 빙자하여 자신의 복수심을 마구 터트렸을 뿐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을 학살하고 마을을 돌아다니며 거의 모든 곳을 불태우면서 그의 힘은 최고조에 달하는데, 이때 마을 사람들은 그를 전혀 보지 않았고 알지도 못한 사람들까지도, 신기하게도 본 순간 그가 캐리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그저 '캐리'라는 한 인간이 있음을 알아달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완벽한 파멸이다.

스티븐 킹을 유명하게 만든 데뷔작인 <캐리>는, 이후 스티븐 킹의 소설에 거듭 나오는 요소들을 많이 담고 있다. 스티븐 킹의 고향인 메인 주는 이후에도 여러 소설에서 무대로 나온다. 그래서 배경으로 나오는 장소들이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보니, 한 소설의 내용이 잠깐 다른 소설에서 지나가는 말 내지 인물 사이의 대화로 등장하기도 한다.

<미저리>에서는 '몇 년 전 관리인이 미쳐서 불을 질러버린, 오래된 호텔'의 이야기가 대화 중에 나오는데, 바로 스티븐 킹의 또다른 소설인 <샤이닝>(잭 니콜슨이 도끼를 들고 날뛰었던 그 영화의 원작)의 무대인 오버룩 호텔을 말하는 것이다. 가끔 한두줄만 나오는 정도지만, 소설 간의 이런 연결고리를 찾아보는 잔재미도 있다.

'겉보기에는 평온하나 내부에 폭탄을 안고 있는 마을'이란 소재는, 이후 소설들에서, 마을 사람들의 이기심이나 탐욕 같은 것이 더 강조되면서 재등장하기도 한다. <캐슬록의 비밀>(원제 Needful Things)등이 그렇다. 조용한 소도시 내지 농촌마을은 대도시와는 또 다른 맛의 공포를 조성한다.

이런 곳은 마을 사람들끼리 서로 잘 알고 지내기 마련인데, 그런 '익숙함'속에 숨어 있는 비밀이나 추한 면이 드러날 때 그 끔찍함은 더 커질 수 있다. 스티븐 킹의 소설은 그런 인간 내면에 숨어 있는 악함이 점점 깨어나면서, 그것이 점점 공동체를 파멸시키는 모습을 천천히 그러나 집요하고 섬뜩하게 그린다.

그리고 그의 대부분 소설은 폭발 내지 거대한 화재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샤이닝>에서 오버룩 호텔은 폭발로 산산조각이 나고, <미저리>에서 폴은 미친 여자인 애니를 불로 태워 버린다. <캐리>에서와 마찬가지로, 대부분 소설에서 불이나 폭발은 완전한 파멸을 의미하는 동시에, 인간의 죄나 어리석음의 정화를 나타내기도 한다.

스티븐 킹의 소설에는 또 여성이 겪는 부당한 사회적 폭력에 대한 묘사가 많이 나오며, 그것이 비겁하고 잔인하며, 무엇보다 모두의 파멸을 부른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캐리가 당하는 폭력은 약자가 당하는 폭력인 동시에, 여성이 당하는 폭력이다(사실 이 두 가지는 많이 겹친다). 광신적 신자인 캐리의 어머니는 캐리에게 끊임없이, '(성교나 출산으로 인한) 더러운 피'에 죄책감을 느끼도록 강요한다.

학교의 같은 반 아이들은 그녀에게 생리대를 던져대며, 여성으로서의 기본적인 자존감까지 짓밟는다. 이 생리대 역시 '피'의 이미지를 연상하게 하며(뭔가 부끄러운 피), 다시 그것은 마지막에 캐리의 광기를 폭발시키는 돼지피로 연결된다. 이것 역시 일종의 성적 모욕 내지 자학('나는 더러워')의 일면이 있는 듯이 보인다. 캐리는 다른 여자애들처럼 아름답게 가꾸고 남성과 자연스러운 교제(그리고 부끄럽지 않은 욕망의 표현)를 원하지만, 피는 그 때마다 그녀를 망가트려 버린다.

하지만 스티븐 킹은 이렇게 폭력을 당하는 여성에게 깊은 연민을 보이면서도, 여성이란 존재가 주는 공포를 묘사하는 면 또한 자주 보인다. 이 점은 캐리보다도 그의 어머니에게서 더 분명하게 나오는데, 덩치 크고 억센 힘을 가진, 광기어린 여성에 대한 공포는 그 이후의 스티븐 킹 소설에도 종종 나온다. <미저리>는 그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두려움은, 역시 스티븐 킹이 남성이기 때문에 드러내는 한 특징일 것이다.

<캐리>의 또 다른 특징은, 사건 자체의 묘사뿐 아니라 소설의 중간 중간, 사건 이후에 벌어진 각종 기관의 조사 보고서나, 학자나 생존자들의 주장 내지 증언을 끼워넣은 데 있다. 사람들은 모두 다 캐리 사건(일명 '무도회의 밤')에 대해 저마다 다른 증언을 하거나, 그 원인에 대해 대립하는 의견을 내세운다.

어느 것이 진실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심지어 작가가 서술하는 부분이라고 해도, 그것이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의견보다 꼭 진실을 말한다고 할 수 있을까? 사실의 열거만이 진실은 아니라는 것, 결국 각자가 받아들이고 느낀 것만을 진실이라고 느끼는 게 인간의 한계라는 것을, 작가는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이렇듯 <캐리>는, 스티븐 킹의 최초의 히트작이자, 그의 이후 소설들로 죽 이어지는 작품 세계의 기본적인 특징들을 거의 빠짐없이 보여주는, 그의 다른 소설을 파악하는 데 이정표가 되는 소설이다. 한마디로 메인주에서 벌어지는 가공할 공포, '스티븐 킹 월드'의 '창세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캐리

스티븐 킹 지음, 한기찬 옮김, 황금가지(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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