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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오늘 새벽, 남편은 다른 때보다 2시간 정도 일찍 가게 문을 닫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이유는 오전 10시쯤, 우리 집에서 자동차로 1시간여 조금 넘게 떨어진 시댁으로 아버님께 차를 가져다 드리기 위해서였습니다.

아침 7시가 조금 넘었을까? 유난히 요란스럽게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마음 놓고 깊은 잠에 빠졌던 남편이 비틀거리면서 전화를 받았습니다. 옆에서 가만히 들어보니 아버님이셨습니다. 아버님께서는 나름대로 느지막이 전화를 거신다고 배려를 하셨겠지만, 저희 부부에게는 조금 이른 시간이었습니다.

언제쯤 시골에 도착하느냐고 묻는 아버님 말씀에 남편은 오전 11시쯤에 도착할 거라고 대답을 합니다. 하지만 남편은 아버님과의 전화를 끊고서 이내 화장실로 들어가서 씻기 시작했습니다. 저 또한 부지런히 동태국을 끓이고, 식탁에 아침을 차린 후 안방문을 열어보니, 남편은 벌써 옷을 다 갈아입고 지금이라도 현관문을 나설 채비를 끝내고 있었습니다.

"아침 먹고 가야지? 그동안 나는 씻을게요."
"아니, 내가 먼저 아침을 먹고 시골에 갈게. 아버지하고 차분하게 할 이야기도 있고…. 1시간쯤 후에 은빈이랑 오면서 문구점에 들러서 '초보운전' 표시하고, 아버지 휴대폰 번호를 적어 놓을 수 있는 '잠시 주차중' 표시를 사 가지고 와."

아침 8시가 조금 넘어서 남편과 아들아이가 먼저 시댁으로 떠난 후, 저는 남편의 부탁대로 문구점에 들러서 아버님 차에 부착해 드릴 '초보운전'과 '잠시 주차중' 표지를 샀습니다.

잠시 후 제가 시댁의 외양간 앞마당에 도착했을 때, 이제 아버님의 든든한 친구가 되어 줄 과거의 제 차가 깨끗하게 새 단장을 하고 다소곳이 주차되어 있습니다.

▲ 이제는 아버님의 길동무가 될 자동차입니다.
ⓒ 한명라
딸아이와 함께 시댁 안방문을 열고 들어서니 남편과 아버님께서는 빈 찻잔을 앞에 두고 마주앉아 있었습니다. 이미 자동차 열쇠도 아버님 손에 건네져 있었고, 저의 얼굴을 본 남편이 웃으면서 먼저 말을 꺼냈습니다.

"아버지께서 우리 원망 안 듣게 조심해서 운전하신대."
"그래요? 아버님, 정말 우리 형님들께 미움받지 않도록 항상 조심하셔야 해요."

아버님께서는 껄껄 웃으시면서, "오냐~ 내 너희들 원망 안 듣게 항상 조심하마" 하십니다.

제가 사 가지고 간 '잠시 주차중' 표지에 아버님의 휴대전화번호를 적어 넣고, 아버님과 함께 차가 주차되어 있는 외양간 앞마당으로 나왔습니다.

▲ "초보운전" 표시가 한눈에 쏙 들어옵니다.
ⓒ 한명라
▲ 아들, 며느리 입장을 생각해서 조심해서 운전하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 한명라
뒷유리창에는 '초보운전'이라는 표지가 밝게 웃음을 짓는 듯하고, 앞유리창에는 아버님의 전화번호가 적힌 '잠시 주차중' 표지가 수줍어하는 듯합니다. 아버님께서는 자동차 문을 열고 운전석 주변 이곳저곳을 살펴보기도 하고, 연료를 넣는 급유구 뚜껑을 직접 열어 보기도 합니다.

▲ 차 안 이곳 저곳을 살펴 보시는 아버님
ⓒ 한명라
▲ 급유구 뚜껑도 직접 열어 봅니다.
ⓒ 한명라
자동차를 구석구석을 한참 동안 꼼꼼하게 살펴보시던 아버님께서는 결코 싫지 않은 표정으로 "차가 나한테는 조금 과하다" 하십니다. 그래도 아버님의 안전을 위해서는 저 정도는 되어야 저희도 마음이 놓인다고 말씀드렸더니, 아버님께서는 고개를 끄덕이십니다.

밖에 볼 일이 있다는 아버님께 인사를 드리고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남편이 호주머니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 줍니다. 봉투 속에는 아버님께서 자동차 값으로 주신 100만원짜리 수표 3장이 가지런히 들어 있었습니다.

▲ 저희 부부에게 자동차 대금으로 주신 300만원입니다.
ⓒ 한명라
"우리가 이 돈을 받아도 괜찮은 거야?" 하고 묻는 저의 말에 남편은,

"그 돈을 받아야 아버지께서 덜 미안하시지. 혹시 아버지께서 저 차를 운전하시다가 도저히 못하겠다고 다시 가져가라고 하면 그때 300만원은 돌려 드려야지. 사람 일이라는 것은 항상 생각한 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으니까. 어제 저녁에 누나들이랑 매형 그리고 형님한테 전화를 했더니, 누나들은 여전히 아버지한테 자동차 사 드리는 것을 반대한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내가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했어. 그리고 아버지께서 운전하고 다니시는 모습이 영 불안하면 다시 차를 가져오겠다는 약속도 했고…."

아마 오늘부터 아버님께서는 외양간 앞마당에 주차되어 있는 차를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가 차문을 열고 운전석에 앉아 보기도 하고, 여기저기 스위치를 확인하는 작업을 하실 것입니다.

그동안 운전면허 취득이라는 목표를 위해서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달려오신 아버님께서는 이제부터 베스트 드라이버를 꿈꾸시면서, 오래지 않아 창원의 큰아들, 작은딸, 작은아들 집에 손수 운전하여 찾아가시겠다는 생각을 하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남해고속도로를 달려서 창원의 우리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은 불안한 마음을 애써 털어버리기라도 하려는 듯, 남편은 아버님께서 도로연수를 받으실 수 있도록 알아봐야겠다고 합니다.

덧붙이는 글 | 많은 분들께서 저희 아버님을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부부 또한 아버님의 안전한 운전을 위해서 항상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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