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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으로 케이크를 만들고는 생일 축하 놀이를 하는 세린이와 태민이. 주말 동안 아이들하고 노는 것이 힘들 때도 있지만 그래도 이 아이들 웃음이 있어 행복합니다.
블록으로 케이크를 만들고는 생일 축하 놀이를 하는 세린이와 태민이. 주말 동안 아이들하고 노는 것이 힘들 때도 있지만 그래도 이 아이들 웃음이 있어 행복합니다. ⓒ 장희용
으이그, 저 심보! 결국 세린이에게 다시 잡히고 말았습니다. 사실 여기까지는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한 20분 정도 더 놀았나, 졸려서인지 놀기에 지쳐서인지 더 이상 놀기가 싫어집니다. 몸은 계속해서 세린이와 놀고 있었지만 마음은 점점 싫증의 강도가 세지면서 짜증의 경계선으로 넘어가려고 합니다.

만약 그 순간 세린이가 떼를 쓰거나 했으면 화를 냈을지도 모릅니다. 잠깐이라도 자리를 피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순간의 제 감정으로 인해 즐거워야 할 주말이 망쳐질까 해서입니다. 일어서 나가려는데 아내가 또 그러더군요.

"오늘 아침은 뭐야? 난 김치찜 먹고 싶은데?"

순간, 확 짜증이 밀려옵니다. 가뜩이나 짜증이 나려고 하는 데 아침밥까지 해 달라고 하는 아내 말에 순간적으로 감정이 '욱' 했던 것이지요. 만감이 교차한다고 하더니, 아주 짧은 순간 머릿속이 뒤죽박죽입니다.

'어휴 진짜, 나도 좀 쉬자!'

이게 제일 먼저 드는 마음이었습니다. 어쩌면 제 솔직한 마음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또 다른 한쪽에서는 '그래, 1주일에 한 번인데 해 줘야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무리 퇴근하고 나서 아이들과 놀아주고 아내를 도와준다고 해도 청소나 집안의 이런저런 살림살이를 모두 맡아서 하는 아내에겐 미안한 마음이 컸습니다. 그래서 주말이라도, 그것도 상차림 정도는 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아내가 해 달라는 김치찜과 서비스로 돼지고기 된장찌개를 준비했습니다.
아내가 해 달라는 김치찜과 서비스로 돼지고기 된장찌개를 준비했습니다. ⓒ 장희용
하지만 당장 침대로 가서 눕고 싶은 욕심이 컸던지라, 일찍 일어나 아이들을 돌봐 준 것에 자꾸만 정당성과 합리성을 부여하려 했습니다. 그래선지 김치찜이 먹고 싶다는 아내의 말에 '그래 알았어!'라는 말이 선뜻 나오질 않습니다. 그야말로 순간의 선택 앞에 놓여진 셈이었지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방문 앞에 서 있는 저를 이상하게 생각했던지 아내가 저를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귀찮으면 김치찜 내가 할까?"라고 하더군요. 아내의 말은 빈 말이 아니었습니다. 눈빛에서 알 수 있었죠. 평소 주말에는 제가 밥이나 반찬 등을 잘 하는 편인데, 그 날만은 유독 제가 주저하고 있으니 아내는 아마 제가 피곤하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저녁에는 아이들을 위해 특별식으로  집에서 콩나물 짜파게티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저녁에는 아이들을 위해 특별식으로 집에서 콩나물 짜파게티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 장희용
순간 제 입에서는 "아냐. 김치찜? 알았어 내가 해 줄게. 자기는 그냥 애들하고 놀고 있어!"라는 말이 아무 거리낌 없이 나왔습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내가 해 달라고 조르는 것도 아닌데, 그래서 아내의 말에 피곤한 표정을 지으며 "응!"이라는 한 마디만 했어도 제 소원대로 잘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덜컥 "해 줄게"라는 말을 하고 만 것입니다.

아직 말을 잘 못하는 둘째 녀석이 '김, 김'하면서 제 바지를 잡더군요. 녀석도 김치찜을 해 달라는 소리인가 봅니다. 둘째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주방으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하지요?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하기 싫던 마음이었는데, 그냥 침대에 가서 자고 싶은 마음뿐이었는데 금세 제 손길은 냉장고와 식탁을 오가며 분주해집니다.

내친 김에 된장찌개도 준비합니다. 돼지고기를 된장에 조물조물 버무린 다음에 먼저 '자글자글' 끓입니다. 다시 두부와 콩나물을 넣고 끓이면 돼지고기에 구수한 된장 맛이 진하게 배고, 콩나물의 시원한 맛과 어우러져 깔끔하면서도 구수한 된장찌개가 된답니다. 처음에 제가 이 된장찌개를 해 줬을 때 된장찌개에 무슨 돼지고기를 넣느냐면서 이상하게 생각하던 아내도 그 맛을 즐기고 있습니다.

행복이라는 것, 거창한 것이 아니라 남편과 아내가 서로 조금씩 이해하고 양보한다면 그 속에서 진짜 행복이 피어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행복이라는 것, 거창한 것이 아니라 남편과 아내가 서로 조금씩 이해하고 양보한다면 그 속에서 진짜 행복이 피어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 장희용
주말을 보낸 지금, 내 기억 한 페이지에 행복이라는 그림을 또 하나 그렸다는 나만의 행복일기를 써 봅니다. 그리고는 문득 행복과 불행은 순간의 선택이 아닌가 하는 부족한 생각도 해 봅니다. 만약 그 날 제가 짜증을 냈거나 아내의 애교 섞인 청을 거절했다면 어땠을까요? 행복했을까요? 아마 하루 중 어느 순간에는 '이제 자기가 좀 해!'라는 말이 나왔을 것이고, 그로 인해 짜증과 다툼이 있는 불행한 주말을 보냈을 겁니다.

순간이 모인 것들이 세월이고 인생이라 했습니다. 결국 인생이라는 것이 행복해지기 위한 여정이라면, 그 끝에 있는 행복만을 위해 순간을 살지 말고 순간의 행복을 위해 오늘을 산다면, 그 행복의 순간들이 모여 한 폭의 아름다운 행복의 수채화로 완성되지 않을까요?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가족을 위해 직장생활을 하는 남편과 가족을 위해 집안일을 하는 아내. 주말만 되면 자신이 더 힘들다면서, 그러니 내가 좀 더 쉬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하지만 어느 누가 더 많이 힘들고 더 많이 애쓰는지를 비교하는 것 그 자체가 불행을 잉태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먼저 아내를 위하고, 먼저 남편을 위한다면 봄기운에 눈 녹듯이 불행이라는 놈은 사라져 버리고, 대신 행복의 꽃망울이 피어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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