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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은실
작년 가을에 상하이 여행을 다녀왔다. 별들이 반짝이는 밤, 상하이의 중심지라는 외탄 풍경은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황포강을 중심으로 동쪽으로는 화려한 최신식 건물들이 즐비했다. 높이 468m를 자랑하는 동방 명주 탑을 비롯해 쭉쭉 뻗은 빌딩 숲 사이로 화려한 조명들이 상하이의 경제발전을 암시하는 듯했다.

반면 서쪽으로는 영국의 식민지일 때 지었다던 고딕양식의 은행과 상점 건물들이 28채가 늘어서있었다. 유럽에서나 볼 수 있는 석조 건물들은 높이가 낮으면서도 웅장한 고풍스러움이 묻어났다. 오래될수록 낡은 대로의 멋이 있는 유럽식 스타일. 최신식 건물과 아픔의 역사를 간직한 건물들, 상하이의 외탄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곳이었다.

흔히들 한 시대와 한 나라의 문화 수준을 평가하는 척도로 건축물을 예로 들곤 한다. 많은 도시들에는 자신의 이미지를 대변해주는 대표적인 건물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도도한 문화 권력이 느껴지는 국립극장과 예술의 전당과 같은 예술품이 있는가 하면 사랑을 선포하고 인정받는 공간인 예식장의 똑같은 모습들도 존재한다. 도시를 천천히 걸으며 사색에 잠기거나 편히 앉아 다리 쉴 곳이 없는 우리 도시, 그곳에서 일어나는 행위와는 무관하게 일괄 디자인되어 도시의 무미건조함을 더해주는 지하철역사와 버스정류장, 멋없이 쭉쭉 뻗기만 한 한강의 다리들까지 사실, 문화를 대표하는 특징적인 건축물이 부족하다는 것이 우리네 실정이다.

필자는 그것을 꼬집는다. 건축학에서 다루어지지 않는 건축의 뒤 편, 혹은 그를 둘러싼 이야기가 주목의 대상이며 무거운 거대 담론이 아니라 일상의 다양한 모습들 속에서 시대와 문화를 이해하고자 한다. 무미건조한 제3자의 입장에서 서술하기보다는 때로는 따뜻한 시선으로 때로는 우려의 목소리로, 때로는 흥분된 어조로 건축을 통해 바라 본 우리 사회와 문화의 현주소를 짚어가는 것.

<거꾸로 읽는 도시, 뒤집어 보는 건축>은 ‘길에서 광장까지 도시를 걷다’, ‘장소에 깃든 역사와 기억’, ‘건축에서 문화 읽기’, ‘건축 위의 권력’, ‘더불어 사는 도시, 함께 하는 건축’이라는 다섯 가지 테마로 구성하여 속이 쓰릴 정도로 우리나라 건축의 이면의 아쉬움을 꼬집는다.

누군가 나에게 ‘독서의 에피쿠로시안(쾌락주의자)’이라고 한 적이 있는데, 책은 재미있어야 한다. 그것은 문체나 내용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만의 입장이 분명한 것을 의미한다. 대중의 허를 찌르는 글, 주류의 상식을 전복시킬 수 있는 사상이 담긴 글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강력 추천한다.

거꾸로 읽는 도시, 뒤집어 보는 건축

양상현 외 지음, 동녘(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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