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따뜻한 손> 겉그림.
<따뜻한 손> 겉그림. ⓒ 낮은산
김일광의 유년 동화 <따뜻한 손>이 도서출판 낮은산에서 나왔다. 작가 김일광은 경상북도 포항시 섬안에서 태어나 대구교육대학교를 졸업했다. 1984년 창주문학상, 1987년<매일신문>신춘문예에 동화가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동안 그가 펴낸 동화책으로는 동화집<아버지의 바다>(창비 1990), 유년동화 <말더듬이 원식이>(우리교육 1998) <물새처럼>(우리교육 2004), 역사 인물 동화 <윤선도>(파랑새어린이 2002), 장편 동화<외로운 지미>(현암사 2004) 등이 있다.

이번에 새로 나온 김일광의 동화 <따뜻한 손>은 초등학교 저학년용인 유년 동화이다. 김일광은 바닷가 도시인 포항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30년 가까운 세월동안 아이들을 가르쳐온 선생님이다. 그는 주로 바닷가 사람들의 삶의 애환을 리얼리즘적 시각에서 아름답게 써 온 동화작가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눈이 하얗게 내린 산골 마을을 배경으로 하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내 놓았다. 동화 <따뜻한 손>은 김일광 선생님이 포항에서 가장 외진 곳인 산골 마을 죽장(죽장초등학교 죽북분교장)으로 스스로 학교를 옮겨간 3년간의 생활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그곳 아이들과 마을 사람들의 모습을 산골로 버스를 몰고 다니는 운전수 아저씨의 하루에 담아 그려낸 따뜻한 작품이다.

동화의 처음은 2페이지에 걸쳐 펼쳐져 있는 커다란 그림 한 장으로 시작된다. 눈 내리는 어둡고 깊은 산속에서 작은 산골 마을로 시골 버스 한 대가 불빛을 켜고 힘겹게 길을 헤쳐 가는 장면이다. 눈발이 휘몰아치는 어두운 산간 마을로 찾아가는 저 버스는 그곳 사람들의 손과 발이다. 그 버스는 아이들의 등하굣길, 마을 사람들의 바깥 읍내 마을에 나들이를 책임지는 생명의 길을 이어주고 있는 것이다. 어둔 밤길을 헤쳐 앞을 나아가는 버스의 불빛, 위험을 무릅쓰고 외진 산골마을로 들어가는 운전수 아저씨의 저 마음이 바로 ‘따뜻한 손’이 아닌가.

자정이 다가오는 골목길은 몹시 어둡고 조용했다. 골목 어귀에 달려 있던 가로등조차 탈이 난 모양이었다. 아저씨는 가방 끈을 늘여 목으로 돌려 걸고는 두 손을 호주머니에 넣었다. 귀가 얼얼할 만큼 추운 날씨였다.

“오늘은 많이 늦었구려.”
과자를 굽던 구멍가게 할머니가 말을 걸어왔다.
“예. 눈이 많이 와서 애를 먹었어요.”
“이리 와. 손이라도 녹여서 가.” - 7쪽.


자정이 다가오는 골목길, 눈이 많이 와서 애를 많이 먹었다는 버스기사 아저씨에게 손이라도 녹여가라고 자리를 내미는 구멍가게 할머니의 마음자리 또한 ‘따뜻한 손’이다. 이 아저씨의 하루 일과가 곧 동화 <따뜻한 손>의 내용이다.

아저씨는 외진 산간 마을로 버스를 모는 운전기사다. 아저씨는 오늘 새벽에도 늘 그랬던 것처럼 버스를 몰고 시내를 벗어나 산간 마을로 올라간다. 손님은 등산객 3명이 전부다. 그런데 산간 마을로 막 접어드는데 눈발이 거세진다. 멀리 샘재를 건너다보니 온통 눈이다. 저 높은 고개를 넘어가나 마나 망설이고 있는데, 이른 아침부터 학교에 가려고 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을 아이들의 해맑은 얼굴을 떠올리며 고개를 넘어가기로 한다. 등산객 3명은 도중에 포기하고 내려가고, 아저씨는 스노우체인을 힘겹게 채우고 올라간다. 도중에 온통 눈밖에 없는 산비탈에 길을 잃고 헤매다 쓰러진 노루를 버스에 태워다 고랭지채소가 남아있는 산밭에다 놓아둔다. 그리고 위험을 무릅쓰고 힘들게 마을 입구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아이들을 태우고 다시 읍내로 내려온다. 그런데 늘 보이던 어린 순이가 보이지 않았다. 외딴 마을에 감기몸살로 앓아누우신 할머니를 간호하다가 늦게 오는 순이를 아저씨가 눈발 속을 달려가 업고 와서 태웠다. 그리고 저녁에 막차를 몰고 다시 산간 마을로 올라갈 때는 늦어도 기다렸다가 사람들을 태워서 간다. 도중에 딸네집 가는 할머니가 길을 지나쳐 와 버려 다시 돌아가 모셔다 드리고, 끝내 마을에 도착하여 순이네 집에 찾아가 약과 따뜻한 물을 순이 할머니께 갖다드린다.

작가 김일광은 위에서 본 버스기사 아저씨의 하루를 통해서 약하고 보잘 것 없는 모든 생명을 사랑하며 사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또 우리 사회에 얼마나 ‘따뜻한 손’이 되는지를 정겨운 목소리로 조곤조곤 들려주고 있다.

김일광의 동화 <따뜻한 손>을 더욱 감동적으로 이끈 것은 그린이 유동훈의 빼어난 삽화가 한 몫 했다. 1969년 인천에서 태어나 인하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한 유동훈은 한겨레 일러스트레이션 학교를 수료하였으며, 현재 인천 만석동에 있는 '기찻길 옆 작은 학교'에서 일하고 있다. 상황의 단면을 깊고 그윽하게 그린 그의 삽화 때문에 동화 <따뜻한 손>이 더욱 따스하고 아름답게 빛난다.

책 뒷부분에 적혀 있는 “한겨울 눈 속을 헤치고 길을 잃은 노루, 할머니와 사는 순이, 농부 아저씨, 밤늦게 딸네 집에 가는 할머니의 손을 잡아 주는 아저씨를 보고 저는 이천 년 전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과 한 몸이 되었던 한 사람이 생각났습니다. 지금도 아주 추운 곳 어딘가에서 힘없고 약한 사람들과 함께 있을 그 사람의 손도 참 따뜻할 거라 믿습니다”란 유동훈 선생의 말은 감동으로 다가온다.

따뜻한 손

김일광 글, 유동훈 그림, 낮은산(2006)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