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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설을 앞두고 택배가 도착했습니다. 가깝게 지내는 분들에게서 온 것도 있었지만, 하얀 색깔의 스티로폼 상자에 유독 눈길이 갔습니다. 강원도 삼척 신병교육대대 아들 이름으로 온, 그러니까 며칠 전 아들의 편지에 적혀 있었던 감자떡이 도착한 것입니다.
'엄마! 월급쟁이가 됐어요. 첫 급여가 이만 팔천 원인가 받았어요. 그 절반으로 부모님 효도선물로 강원도 특산물 감자떡을 보내요~ 맛있게 드세요~급여는 담달부터 오른다고 합니다.
추신: 감자떡은 훈련소에서 기회를 주어서 신청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들이 받은 첫 급여의 절반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르자 코끝이 찡했습니다. 열어보기도 전에 눈물이 났습니다. 한참 동안 상자만 바라보고 있던 저는 남편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명승이(아들)에게서 택배가 왔는데 손이 떨려서 못 열겠어요! 퇴근 후 바로 집으로 오세요?"
남편은 평소보다 일찍 퇴근했습니다. 눈물 자욱이 남아 있는 제 얼굴을 보곤 바로 스티로폼 상자에 붙은 노란 테이프를 조심스럽게 떼기 시작했습니다. 뚜껑을 열자 손으로 빚은 감자떡과 쥐포 열 개가 비닐봉지에 담겨 있었습니다. 순간 아들을 만난 것처럼 반가웠습니다.
먹지 않고 바라만 보아도 배가 부른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빨리 먹고 싶다고 찜통을 찾았습니다. 그리곤 감자떡을 봉지에서 꺼내 가지런히 찜통에 올려놓기 시작했습니다. 15분이 지나 뚜껑을 열어보니 감자떡이 잘 익어 보랏빛을 띠고 있었습니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수증기 사이로 아들의 모습이 스쳤습니다.
지난해 가을 아들과 함께 시내 뷔페식당에 갔었습니다. 많은 음식 중에서 감자떡을 많이 담아온 엄마에게 아들은 핀잔을 주었었습니다.
"엄마! 뷔페에 오셔서 감자떡만 드셔야 해요?"
하여간 못 말리는 엄마라며 투덜거렸던 아들이 감자떡을 좋아하는 엄마의 마음을 잊지 않고 있었던 걸까요? 그 대견스러움에 또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뭐해! 감자떡 다 식겠어?"
남편의 재촉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말랑말랑한 감자떡을 먹으며 남편과 딸아이는 환하게 웃었습니다.
"정말 맛있다!"
금방 한 접시가 없어졌습니다. 다음 날 저는 앞집 목사님 댁과 삼천동 시아주버님께 감자떡을 드리며 아들 소식을 전했습니다. 얼마 되지 않은 양이었지만 장병의 첫 월급 절반을 투자한 거액이라며 웃었습니다.
쫄깃쫄깃하고 담백한 강원도 감자떡 맛은 동네에서 먹어보았던 감자떡과 비교할 수 없는 구수한 맛이었습니다. 값으로는 얼마 되지 않는 액수일지 몰라도 제겐 가장 소중하고 값진 선물로 기쁨을 전해 준 행복한 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