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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보건복지부장관 내정자가 8일 인사청문회에서 마지막 발언을 통해 도종환 시인의 '가지 않을 수 없었던 길'을 낭송하고 있다.
유시민 보건복지부장관 내정자가 8일 인사청문회에서 마지막 발언을 통해 도종환 시인의 '가지 않을 수 없었던 길'을 낭송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7~8일 이틀 동안 열린 유시민 보건복지부 내정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모두 끝났다. 야당은 도덕성, 가치관, 과거사 등 다양한 각도에서 '융탄 폭격'을 쏟아냈지만 예상했던 것에 비해선 '싱거웠다'는 평가다.

유 내정자가 "과했다" "송구하다"며 낮은 자세로 임한 탓도 있지만, 문병호 열린우리당 의원(보건복지위 소속)은 "한나라당이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한 것 같다"고 야당의 공세가 그닥 파괴력이 없었다고 여유를 보였다. 한 보건복지위 소속 여당 의원은 "사실 한나라당이 노 대통령과의 관계를 따져물을 줄 알았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상임위의 결과보고서 채택과 별도로 유시민 내정자에 대해 '절대 부적격' 판단을 내렸다. 이재오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노 대통령에게 "임명을 취소해달라는 의미"라고 말했다.

반면, '개혁성'과 '친시장적' 관점을 문제삼아 일찌감치 부적격 판정을 내렸던 민주노동당은 '재고'의 여지를 남겼다. 민주노동당은 9일 의원총회를 열어 장관 내정자들에 대한 최종 평가를 내릴 예정이다.

보건복지위 소속인 현애자 의원은 이날 <오마이뉴스>와 만나 "심사숙고하고 있다, 전향적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현 의원은 "(유 내정자가) 참여정부의 기조에서 벗어날 수는 없겠지만 공공 부문에조차 경제적 논리가 개입하면 어떤 현실이 초래되는지 파악하고 있고, 구체적인 해결 과정에서 의지를 보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편, 이날 보건복지위원회는 오후 전체회의를 다시 열었지만 적격·부적격 의견이 반반으로 나뉘는 바람에 각각의 찬반 논거를 담는 것으로 '반쪽짜리' 결과보고서를 채택했다.

한나라당 "절대 부적격"... 민주노동당 "심사숙고중"

이번 청문회에서는 보건복지부 장관 '부적격' 여부와 별도로 유 내정자의 '변신'이 또 화제다. 말투, 표정, 표현 하나 하나에 관심이 쏠렸다. 한 네티즌은 "화장이 떴네여, 메이크업베이스를 2호 바르셔야 했는데, 목과 얼굴색이 안 맞아여"라고 지적했고, 기름을 발라 넘긴 8:2 가르마도 네티즌들 사이에서 화제다.

여당 의원들조차 당혹스럽다는 표정이다. 김선미 의원은 "평상시 저희가 듣던 표현과 많이 바뀐 것 같아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문병호 의원은 "정부수립 이후 가장 논란이 많은 장관 임명이고, 실험적인 인사"라고 평했다. 그러면서 "유 내정자가 잘 해야 앞으로 인사패턴이 달라질 수 있다"고 유 내정자의 책임감을 강조하기도 했다.

현애자 의원 역시 "확실히 변했다"며 "장관되기 전에는 저널리스트 입장에서 비판과 대응을 날카롭게 했다면 지금은 부처의 책임자로서 변화를 위한 고심의 흔적이 보인다"고 평했다.

반면, 장향숙 열린우리당 의원의 의견은 좀 달랐다. 장 의원은 "(유 내정자가 변했다는 것이) 태도를 트집잡았던 사람들의 시각"이라며 "유시민은 본래 정직한 사람이다, 정치인으로서 상대 당인 한나라당에 대해 혹평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어 장 의원은 "유 내정자가 머리가 나쁜 사람이 아니다"라며 유 내정자를 둘러싼 우려를 '기우'라고 일축했다.

유 내정자의 마지막 '작은 도발', 시 낭독

유시민 후보자가 인사청문회를 마친뒤, 한나라당 의원들과 악수를 하며 눈을 맞추려 하고 있다.
유시민 후보자가 인사청문회를 마친뒤, 한나라당 의원들과 악수를 하며 눈을 맞추려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8:2 가르마는 누구 아이디어?

다음은 8일 인사청문회가 끝난 뒤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유시민 내정자와 나눈 짤막한 일문일답 내용이다.

- 한시름 놓으셨죠.
"모르죠. 뭐 또 무슨 일이 있을지."

- '유시민의 변신'에 대해 말들이 많다.
"그냥 있는대로 봐주십시요. 그것에 대해 특별히 말씀드릴 게 없습니다."

- 8:2 가르마는 누구 아이디어인가.
"(고개 숙이며 웃음을 참는 듯)예…. 그냥…."

- 너무 고루하다는 평가도 있다.
"다 말씀드렸습니다."
정치컨설팅그룹 '민'의 박성민 대표는 '유시민의 저자세'에 대해 "대중에게 납작 엎드린 것"이라며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유시민과 노무현의 닮은 점은 대중을 의식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유시민은 분노와 경멸의 단계로 넘어가는 위험 수위에 있었다. 노 대통령도 '경고'한 바 있지 않나. 하지만 유시민은 대중과 소통하는 정치인이다. 필요하다면 자세를 더 낮출 것이다. 국민연금 등 민생 관련 난제를 잘 해결하면 지도자 반열에 오를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한편 유시민 내정자는 이날 청문회에서 자신의 변신과 관련한 질문을 받고 "장관 직무수행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하면 앞으로도 계속 바뀌도록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청문회 기간 내내 튀지 않기 위해 애쓴 유 내정자는 청문회를 마치며 '작은 도발'을 시도했다. 이석현 보건복지위원장의 "마지막으로 할 말 있으면 하라"는 주문에 "청문회를 치르는 과정에서 제 자신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고 더 많은 부족한 점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며 아래와 같은 도종환의 시 '가지 않을 수 없던 길'을 낭독하는 것으로 소회를 대신했다.

"가지 않을 수 있는 고난의 길은 없었다/몇몇 길은 거쳐오지 않았어야 했고/또 어떤 길은 정말 발 디디고 싶지 않았지만/돌이켜보면 그 모든 길을 지나 지금/여기까지 온 것이다/한번쯤은 꼭 다시 걸어보고픈 길도 있고/아직도 해거름마다 따라와/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길도 있다/그 길 때문에 눈시울 젖을 때 많으면서도/내가 걷는 이 길 나서는 새벽이면 남 모르게 외롭고/돌아오는 길마다 말하지 않은 쓸쓸한 그늘 짙게 있지만/내가 가지 않을 수 있는 길은 없었다/그 어떤 쓰라린 길도/내게 물어오지 않고 같이 온 길은 없었다/그 길이 내 앞에 운명처럼 파여 있는 길이라면/더욱 가슴 아리고 그것이 내 발길이 데려온 것이라면/발등을 찍고 싶을 때 있지만/내 앞에 있던 모든 길들이 나를 지나/지금 내 속에서 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오늘 아침엔 안개 무더기로 내려 길을 뭉텅 자르더니/저녁엔 헤쳐온 길 가득 나를 혼자 버려둔다/오늘 또 가지 않을 수 없던 길/오늘 또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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