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국무위원 겸 통일부장관 내정자 이종석 후보의 인사청문회를 마쳤습니다. 한나라당의 장외투쟁으로 2개월 가까이 공전하던 국회가 가까스로 개회되었습니다. 헌정사상 처음 열리는 국무위원 후보자의 청문회가 한나라당의 등원을 통해 정상적으로 열리게 되어 참으로 다행스러웠습니다.

인사청문회는 공직후보에 대한 검증의 시간입니다. 후보자가 공직을 수행하는 데 있어 얼마만큼의 자격과 자질을 갖추고 있는가에 대한 평가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저는 정략정인 정치공세나 인신공격의 장이 아닌 공직후보에 대한 철저한 검증과 판단을 위한 정책청문회가 될 것을 소망하며 인사청문회 첫 질의자로 질의를 시작했습니다.

저의 이종석 후보자에 대한 질의의 초점은 요사이 가장 민감한 핵심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전략적 유연성'에 관한 한미간의 합의사항이었습니다. 아시고 계시겠지만 '전략적 유연성'이란 미국이 9·11테러 이후, 해외주둔 미군을 좀 더 유연하게 운영하겠다는 병력 재배치 전략입니다. 우리의 경우 주한 미군을 한반도 이외의 분쟁지역에 파견할 수 있도록 하는 군사전략을 말합니다.

하지만 이러할 경우 동남아에 분쟁이 발생하거나 중국과 타이완의 양안 분쟁이 본격화될 경우, 주한미군을 신속기동군으로 투입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어 한국이 미군의 발진기지가 될 위험 소지를 안고 있습니다.

저는 '전략적 유연성'의 합의로 인해 한국이 동북아 분쟁에 휘말릴 가능성과 주한미군의 역외 전출 시 동의절차인 한국과의 '사전 협의' 조항이 누락됐음을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용산기지 이전이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 정책과의 연계 가능성은 없는지 우려를 표시했습니다. 또한 요즘 언론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전략적 유연성'의 합의 과정에서 대통령에 대한 정보체계에 결함은 없었는지도 따져 물었습니다.

이에 대해 이종석 내정자는 "전략적 유연성 합의는 주한미군의 동북아 분쟁지역 발진(發進)으로 우리 안보를 위태롭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게 바탕"이라며 "한미상호방위조약에도 상충되지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또한 '전략적 유연성'의 합의 전 과정이 대통령께 보고되었다고 진술했습니다.

제가 '전략적 유연성' 합의에 주목하는 것은 남과 북의 평화체제를 위협하는 냉전세력의 발호를 우려하기 때문입니다. 한반도의 평화는 우리의 생존권인 동시에 대한민국의 발전을 담보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항구적인 경제발전은 남북의 평화 없이는 상상할 수조차 없습니다.

IMF라는 국가 부도 상태에서 정권을 물려받은 '국민의 정부'가 '6·15 남북정상회담'을 통한 화해·협력시대를 연 이후 한반도의 냉전기류가 평화의 분위기로 전환되면서 우리나라의 무역수지는 949억 달러의 흑자를 기록했습니다. 이는 정부수립 이후 지속적으로 누적되어 한국경제를 괴롭혀 온 무역적자 898억 달러를 상쇄하고도 남는 액수입니다.

외환보유고는 '문민정부' 말기인 1997년 39억 달러이던 것이 '국민의 정부' 말기에는 30배 이상 불어 난 1218억 달러를 기록하여 외환보유고 세계 4위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국민의 정부' 5년 동안 외국인투자 유치액이 900억 달러에 달했습니다. 이는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국민의 정부' 출범 이전까지 36년이라는 세월 동안 우리나라가 유치한 외국인 직접 투자액 총 합계의 2.4배나 되는 엄청난 규모에 해당하는 수치입니다.

이와 같은 실증적 지표는 한반도의 '평화 상태'가 '긴장 상태'보다 경제적 측면에서 그 효과가 훨씬 크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좋은 준거입니다. 저는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은 남북한이 함께 상생할 수 있는 '하나의 민족공동체'를 일궈내는 일임을 확신합니다.

하지만 미국은 6자 회담의 성사 이후, 모처럼 마련된 평화 정착의 기운에 찬물을 끼얹고 있습니다. 근래에 미국이 새롭게 북한을 압박하고 있는 '북한 위폐 문제'에 미국은 이에 대한 명확한 실증을 제시하지 않고 있습니다. 미국의 이라크 전쟁의 이유였던 '대량살상 무기'의 직접적인 증거를 종전이후까지 밝혀내지 못하는 상황과 흡사합니다.

북한이 핵무기 프로그램을 포기하고 핵사찰을 수용하면서까지 6자 회담에 참석한 이유는 경제 원조를 얻고 그동안 악화되었던 국제사회와 관계를 개선하기 위함입니다. 그만큼 북한의 경제사정은 참담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를 타개하고자 북한은 이미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모든 외교적 카드를 내보였지만 미국은 오히려 북한을 압박하는 강경한 자세를 취함으로써 북미관계를 경색국면으로 몰아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한국은 미국과의 관계에서 대미 굴종외교라는 비난까지 감수하면서도 미국과 보조를 맞추어 많은 부분에서 합의를 도출해 냈습니다. 이라크에 미국과 영국을 제외한 제일 많은 군대를 파견했고, 용산 미군기지 이전에는 한국정부가 이전비용 전부를 떠안았으며 더 나아가 자칫 동북아 질서를 위태롭게 할 수 있는 '전략적 유연성'에까지 합의했습니다. 한국의 이러한 합의는 6자 회담의 성공과 나아가 한반도의 평화정착을 위한 노력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보여주고 있는 북한에 대한 냉대와 명확하지 않는 근거에 의한 끊임없는 의혹의 제기는 지금까지 정부의 노력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미국의 강경기류에 편승한 수구 냉전세력의 대북정책 흔들기에 있습니다.

말로만 북한의 인권을 외치면서 정작 북한에 대한 지원을 '퍼주기'라고 반대합니다. 또한 북한의 인권을 말하지만 실상 한국 정부를 제외하고는 탈북자를 받아주는 나라는 세계 단 하나의 나라도 없습니다.

이번 청문회 과정에서도 어김없이 사상 논쟁이 제기되었습니다. 한나라당은 이종석 내정자를 친북, 반미, 좌파로 낙인찍었습니다. 그동안 신물 나게 써 먹어 이제는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는 색깔 입히기를 시도한 것입니다. 국가라는 이름으로 하나의 사상을 강제하고 압제할 때 우리는 그러한 나라를 전체주의 국가라고 합니다. 한나라당이 말하는 '선진한국'이 지난 시대의 독재적 전체주의 국가를 말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나와 다른 생각을 좌파, 친북, 반미로 낙인찍어 배타하고 매도하는 일은 이 땅에서 사라져야 마땅할 것입니다.

이에 한 술 더 떠 과거 운동권이라는 이유로 통일부장관이 되어서 안 된다는 논리에서는 그저 어안이 벙벙할 따름입니다. 이러한 한나라당의 주장은 한 때 운동권의 핵심인물을 원내대표로 모시고 있는 한나라당의 현실에 견주어 보건데 스스로에 대한 자기부정이라고 밖에 해석할 길이 없습니다.

저는 이러한 논란을 지켜보면서 단절된 벽과 부딪치는 듯한 괴리감을 느낍니다. 급속도로 변화하는 현대 사회 속에서 냉전시대의 케케묵은 이념적 사고의 틀을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 벌어지고 있는 남남갈등의 골을 어떻게 메우고 치유해야할지 매우 걱정스러웠습니다.

이번 청문회를 마치면서 '국익'이라는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봅니다. 저는 올바른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는 여와 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국회는 올바른 국익을 옹호하고 지켜야할 의무가 있습니다. 또한 이를 위해서 국민의 목소리를 한 데 모으고 전파하는데 앞장서야 합니다. 뭉쳐진 국민의 의견이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대회 협상의 지렛대가 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어야할 책무가 국회에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분단 조국의 현실은 우리가 안고 있는 가장 큰 핵심적 문제입니다. 한반도의 평화 정착이 남과 북은 물론이며 더 나아가 동북아 질서를 번영으로 이끄는 중심축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념과 정략을 떠나서 진정한 국익을 위해서라도 통일문제에 편향적이지 않은 시각으로 고민해야할 때입니다. 그리고 그 길은 여야가 아닌, 보수와 진보가 아닌 한국인이라는 단 하나의 이름으로 만들어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국무위원 첫 인사청문회를 마치면서 뿌듯함보다는 사실 아쉬움이 더 많이 남습니다. 인사청문회가 후보자의 자격과 자질을 검증하기 보다는 정략적인 정치공세의 장으로 변질되어 버린 것만 같기 때문입니다. 이번의 미숙했던 인사청문회를 거울삼아 다음에는 심도 있는 질의와 검증을 통해 임명권자인 대통령에게 객관적인 판단을 제시할 수 있는 정책적인 청문회가 되길 빌어봅니다.

덧붙이는 글 | 한명숙 기자는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입니다. 타 웹진에도 등록할 예정입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