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독일 '최대'의 일간지로 넘어가면 대답은 아주 간단해진다. 매일 약 4백만부를 찍어내는 <빌트>가 있기 때문이다. 독일을 넘어 유럽 최대인 이 '황색지'는 우리말로 '그림'이라는 뜻이다.
<빌트>는 이름에 걸맞게 기사마다 큼지막한 사진을 곁들이고, 신문 일면에 버젓이 반라 여성의 사진을 싣는 방식을 의연히 고수하고 있다. 다루는 기사도 자극적이거나 선정적인, 이른바 쇼킹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독일인의 국민 스포츠인 축구를 앞세운 '너무' 풍성한 스포츠 면은 말할 것도 없다. 우리의 스포츠 신문과 닮기도 했지만 쟁점이 되는 정치 이야기도 빠지지 않아 대중적인 영향력도 상당하다. 논조는 물론 노골적으로 보수적이다.
그러면 독일 최대의 신문·출판 그룹은 무엇일까? 다름 아닌 <빌트>를 간판으로 보유한 '악셀 슈프링어' 그룹이다. 베를린에 본사를 둔 슈프링어 그룹은 세계적으로 20여 개국에 1만명이 넘는 직원을 거느린 명실공히 국제적인 미디어 기업이다. <빌트> 말고도 <벨트>와 <베를리너 모르겐포스트> 같은 독일의 여러 일간지와 다양한 잡지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많은 신문과 잡지가 이 출판 콘체른의 품안에 들어있다.
'악셀 체자르 슈프링어'라는 창업주의 이름을 딴 슈프링어 그룹은 2차대전 직후인 1946년에 악셀 슈프링어 출판사로 출발했다. 이후 보수적인 정치권 인사들과 두터운 친분을 쌓으며 가파른 성장을 거듭했고, 90년대부터는 유럽권 사업 확장을 발 빠르게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슈프링어 그룹의 오랜 꿈은 사실 TV 방송계 진출이었다. 그사이 라디오 방송까지 보유하게 되었지만 명실상부한 '미디어 제국'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TV 방송이 반드시 필요했다.
드디어 작년 8월 슈프링어 그룹은 독일 최대의 민영 TV 방송 그룹인 '프로지벤·자트아인스'의 인수 합병 계획을 발표한다. 뒤이어 슈프링어의 언론독점에 대한 논란이 뜨거운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뉴스 채널이 포함된 5개 TV 방송이 더해질 경우 슈프링어 그룹의 언론계에서의 독점적인 위치가 '언론의 자유'를 크게 위협할 것이라는 우려와 더불어 비판적인 여론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언론독점·여론조작, 68운동 쟁점화
사실, 슈프링어의 언론독점을 둘러싼 논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1960년대 말 독일의 정치 지형을 흔들어 놓은 68운동의 주요한 쟁점 가운데 하나가 슈프링어의 언론독점과 여론조작 문제였다.
슈프링어 그룹은 이미 당시에 독일 신문시장의 약 1/3을 장악해 '슈프링어 제국'이라 불렸고, 68운동의 주체들은 막강한 대중적 영향력을 보유한 그 신문들의 편파적이고 조작적인 보도가 위험 수위를 넘었다고 판단했다. '제국'의 신문들은 사회의 권위주의와 모순 및 베트남전에 반기를 든 청년 학생들에 대한 공격의 선봉에서 단연 독보적인 활약을 펼쳤다.
'슈프링어 제국'은 반공주의를 '전가의 보도'로 휘둘렀고, 의회외부 반대파(APO)를 중심으로 결집한 운동 세력을 겨냥한 날선 공격은 나날이 선동적이고 원색적으로 변해갔다.
슈프링어 신문들은 68운동 활동가들을 폭도나 미치광이, 심지어는 '나치 돌격대'와 비견하기도 서슴지 않으며 사회질서를 허무는 암적 존재로 몰아갔다. 운동의 활동가들은 여론을 선동하는 슈프링어의 무차별적인 공격과 편파 보도에 맞서 '슈프링어 몰수'라는 슬로건을 앞세운 '슈프링어 반대 캠페인'을 전개한다.
68운동과 슈프링어의 대결은 1968년 4월의 부활절 기간 동안 정점에 달한다. 슈프링어 신문 <빌트>의 애독자인 한 청년이 68운동의 걸출한 지도자 루디 두취케를 베를린 백주대로에서 저격한 사건이 도화선으로 작용했다. 그 청년은 <빌트>가 히틀러 같은 정신병적인 선동가로 묘사한 두취케를 암살해 '국민의지의 집행자'가 되려했다고 밝혔다.
서독 전역에서 분노한 수만 명의 청년 학생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슈프링어 암살자'라는 구호를 외치며 슈프링어 신문들의 배포를 막기 위한 '슈프링어 봉쇄'에 나섰다. 결국 사태는 이른바 '부활절 소요'로 불리는 최악의 시가전으로 치달으며 2명의 사망자를 낳았다.
68운동의 열기가 가라앉고 나서도 슈프링어 그룹과 그 신문들에 대한 분노는 계속되었다. 1972년에는 적군파가 함부르크의 슈프링어 건물에 폭탄을 던졌는가 하면, 독일의 유명한 소설가인 하인리히 뵐은 1974년에 슈프링어 신문들을 신랄히 비판하는 소설을 내놓았다.
1980년대 들어서는 하버마스와 귄터 그라스 등이 포함된 독일의 진보적 지식인들이 슈프링어 신문들을 반대하는 캠페인을 조직했고, 비교적 최근인 2004년에는 사민당 정부를 온통 부정적으로 그린다는 이유로 슈뢰더 총리가 <빌트>와의 인터뷰 거부를 선언하기도 했다.
이렇게 슈프링어 그룹은 언론독점과 여론조작 문제를 둘러싼 분쟁의 주역을 도맡아 왔고, 68운동 당시에는 운동의 주요 목표로 설정되어 청년 학생들과 공권력의 극심한 물리적인 충돌을 불러일으킨 역사를 안고 있다.
연방기관, 방송사 '통째 인수' 불허
물론 현재의 분위기는 사회 모순에 대한 총체적인 진단과 저항의 불길이 치솟던 당시와는 사뭇 다르다. 하지만 독일은 법적으로 언론 권력의 과도한 집중을 감시·규제하는 제도를 두고 있고, 슈프링어 그룹이 최대의 민영 TV 방송 그룹을 인수 합병할 경우 40%가 넘는 언론 영향력을 손아귀에 넣을 수 있다는 우려는 극히 현실적인 것이었다.
미디어 집중과 독점을 감시하는 연방기관은 이런 사정에 따른 비판적인 여론을 무시할 수 없었고, 지난달 언론독점의 가능성을 들어 슈프링어 그룹이 '프로지벤·자트아인스' 방송을 통째로 인수하는 것을 불허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난항에 부딪친 슈프링어 그룹은 연방기관의 제안대로 알짜배기 방송인 '프로지벤'을 빼는 인수 방안을 꺼냈다가 다시 철회하는 등 갈팡질팡하다가 이 달 초 결국 인수 포기를 선언하고야 말았다.
방송사 인수로 감수해야할 경제적·법적 위험부담과 정부기관의 최종 승인을 얻기 어렵다는 판단이 슈프링어 그룹의 공식 명분이었지만, '제국'이 백기를 든 데는 언론독점에 반기를 든 '비판적 여론'이 한 몫 했음에 틀림없다. 언제나 그렇듯 비판적 여론의 존재는 언론 자유의 부재를 막아내는 일차적인 안전판인 것이다.
그런데 슈프링어의 이러한 포기 선언을 놓고 정치권에서는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사민당과 녹색당 정치인들이 대체로 합당한 일이라고 평가한 반면, 보수적인 기민당이나 기사당 일각에서는 슈프링어의 방송사 인수 합병 실패에 진한 아쉬움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지난주 기사당 당수인 슈토이버는 해당 방송사가 외국인의 손에 넘어갈 것을 우려하며 이번 기회에 독일의 언론집중 규제법안을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하지만 보수 정치인들의 이런 주장은 별 설득력이 없다. 슈프링어의 인수 대상이던 '프로지벤·자트아인스' 방송 그룹은 이미 미국인 사업가의 소유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런 주장은 슈프링어의 방송사 합병이 어떤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에 대해 철저히 눈을 감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런 점에서 지난 2일자 <프랑크푸르트 룬터샤우>가 사설에서 지적한 다음 대목은 곰곰이 되새겨볼 만하다.
"슈프링어가 프로지벤·자트아인스 방송 그룹의 합병에 성공했다면, 전 독일 인구의 절반이 이 거대 기업의 영향력 아래 들어갔을 것이다. … 이런 미디어 권력이 오용될 수 있음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물론 그 오용은 가능성으로 존재하지만, 이 가능성만으로도 충분히 위험한 것이다. … 미디어의 힘은 직접 사람들의 머리 속으로 향한다. 사람들의 두려움과 소망, 삶에 대한 가치관, 그리하여 무엇이 옳고 그런지에 대해서도 영향을 미친다. 바로 이 때문에 미디어 권력은 가능한 한 다양하게 분산되어야 하는 것이다."
언론권력이건 정치권력이건 권력 자체의 속성은 사실 위험한 것이다. 형식만 다를 뿐 모든 권력은 '억압'의 본질을 담고 있고, 모든 억압은 '저항'을 불러일으킨다고 역사는 가르쳐왔다.
"거대한 언론권력에 대한 저항이 성공을 거두었다"며 2일자 <타게스차이퉁>은 슈프링어의 TV 방송 인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음을 자축했다. 결국 슈프링어의 꿈은 이렇게 날개를 접었고, 독일은 신문과 방송을 한 손에 움켜쥔 가공할 '미디어 제국'의 등장을 피해가게 되었다.
하지만 슈프링어가 연방기관의 제안대로 중요한 방송 채널 하나를 빼고 TV 방송 그룹을 인수했다면 어땠을까? 그럴 경우에도 과연 언론독점의 가능성은 저지되고 언론자유의 보루인 다양성은 지켜졌을까? 소위 언론 집중과 독점을 '감시·규제'하는 연방기관 스스로 자문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