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연대'는 지난해부터 정부 지원을 받아 '활동보조인 파견사업(중증장애인의 일상생활을 보조할 수 있도록 일정요건을 갖춘 활동보조인을 모집, 지원하는 제도)'을 실시하고 있는데 이 제도가 이씨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게 됐다.
"우리 사회는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단순히 '도와줘야 한다'에 머물러 있어요. 그래서인지 물품지원 혹은 이벤트성 지원에 그치고 있잖아요. 프랭크는 다른 나라 사람이지만 열린 마음으로 대해 주면서 제 불편한 부분들을 척척 해결해주니 고마움이 한결 더하지요. 사실 장애인들도 일상생활의 불편한 부분만 해결된다면 사회구성원으로서 당당하게 활동할 수 있거든요."
이씨의 말이다.
국적도, 살아온 환경도 다른 두 사람이 생활한 지 어느덧 한 달이 지났다. 낮에는 각자 직장생활을 하고 아침 저녁으로 얼굴을 보는 평범한 동거(?)생활. 하지만 몸이 불편한 이씨를 위해 모든 허드렛일은 프랭크가 도맡아 한다.
그렇다고 프랭크가 도움만 주는 것은 아니다. 그는 시민단체에서 일하고 있는 이씨를 통해 한국사회의 실상을 이해하고 본인의 전공인 경제학과 사회학을 공부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는다고 말했다.
다만 '밥'과 '빵'으로 대별되는 식습관만큼은 두 사람 사이에 차이가 있다는 이씨의 설명. 실제로 프랭크는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김치는 물론 회도 먹을 수 있게 됐지만 허기를 채우는 데는 여전히 빵만한 게 없다고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가끔씩 야심한 밤에 둘이 끓여 먹는 라면 맛은 일품이라고 귀띔한다.
프랭크가 한국과 인연을 맺은 것은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캐나다와 영국 등지에서 유학생활을 하다 서울대학교에 교환학생으로 오면서부터다. 작년에 졸업하면서 아직 구체적으로 진로를 결정하지 않았지만 한국에서의 좋은 기억때문에 쉽게 다른 나라로 가기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 하는 일들이 훗날 자신의 진로에 크게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만큼은 확고했다.
늘 친절한 미소로 스스럼없이 한국 사람들과 어울리는 프랭크. 이제 왠만한 일상어는 알아들을 수 있다는 그는 한국어를 더 열심히 배워 '쓰기'도 잘 하고 싶다는 소박한 소망을 내비쳤다.
인간이 동물과 구별되는 것은 '지능'이 아니라 '나눌 줄 아는 데 있다'는 말이 있다. 프랭크는 인터뷰 내내 '돕는다(help)'는 표현 대신 '나눈다(share)'고 말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깨달음마저 나눠주고 있었던 것이다.
나이와 국경을 넘은 '아름다운 동거'를 하고 있는 은우씨와 프랭크. 그들에게서 연대를 통한 세계화의 가능성을 조심스레 낙관해본다면 너무 앞서나간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