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가 무의식 속의 자아를 가리켜 말하던 '이드'(id)는 오늘날 사이버 공간에서 다시 환생한다. 바로 '아이디'(ID)로. 그런데 이 수많은 익명의 유목민들은 시시때때로 고약한 배설물(악플)을 서슴없이 배출하곤 한다.
오늘도 무수한 ID들은 포털뉴스를 핥으며, 연예인 신변잡기나, 군대문제, 남녀논쟁, 개똥녀, 대~한민국 등에 집단광기를 보이다가도, 또 온순해진다. 분명히 우리 주변의 누군가일 테지만, 실체도 증거도 없다. 누군가는 계속 누군가로 남는다. 참 편리하다.
'세상 참 편리해졌다'고들 한다. 전화번호는 휴대폰이, 길은 네비게이션 장치가, 노래 가사는 노래방 기계가, 자료는 컴퓨터가 다 저장해두었다가 필요하면 신속히 꺼내 보여주니 참으로 편리하다. 그만큼 다른 것을 기억하는 데 시간을 할애할 수 있고 더 많은 여유를 가질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여유는 개의 뿔. 피폐한 생활과 조급한 마음 뿐, 자랑스러운 IT강국의 정보폭주는 우리를 무서운 속도와 양으로 압박한다. 일찍이 '네티즌' 대신에 '누리꾼'이라는 대체어를 마련한 바 있는 국립국어연구원은 최근 '디지털치매'(Digital Dementia: 디지털 기기에 너무 의존한 나머지 기억력 감퇴를 느끼는 현상)를 신조어로 선정했다.
이쯤되면 '과잉사회'라 부를 수 있겠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쉬지 않고 걸으면 30일이었던 것을 KTX로 반나절에 왕복한들, 정작 우리가 29일분의 여유를 얻은 것은 아니다. 그냥 속도과잉이다. 그 뿐인가. 정치도 과잉, 학력도 과잉, 폭력도 과잉, 신파도 과잉, 섹시도 과잉, 온통 과잉이다. 자본이 증식을 멈추지 않듯, 과학기술이 진보(?)를 거듭하듯, 사이버세상은 더, 더, 더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려 한다.(누구를 위해서인지 몰라도!) 문명의 이기가 넘쳐흐른들 잠시의 버퍼링을 참지 못하는 누리꾼에게는, 당연히 여유가 없다.
과잉이다. 주목할 점은 이른바 '@mania층'(네티즌을 인터넷 이용행태에 따라 4가지 유형으로 분류하는데, 그 중에서도 인터넷에 익숙하고 인터넷 이용에 크게 집중하는 3단계 집단을 말한다. 마지막 4단계로 진화 후에는 인터넷에 익숙하지만, 크게 집중하지는 않게 된다고 함)의 폭발적인 팽창이다. 이는 우리 사회 인터넷 이용의 주류가 정보 활용보다는 오락 및 엔터테인먼트 측면으로 과잉점철 되었음을 짐작케 한다.
이쯤이면 배설물의 범인은 몰라도, 그가 배설하는 이유는 드러난다. 지금의 사이버공간은 외설로도 부족한 '역치상승'의 공간이다. 인터넷의 대량보급과 급속확산(양과 속도의 과잉)은 '자극의 혁명'을 가져왔다. 사실 컴퓨터 화면은 사적이고 은밀하다. 때문에 강렬하고 말초적인 콘텐츠들이 무서운 속도로 퍼진다. 결국 경험치와 그 강도가 높아지면서 어떤 자극에도 재빨리 무덤덤해지고, 따라서 새로운 자극에 대한 갈증은 더욱 커져간다. 폭력과 범죄는 나날이 흉폭해지고, 처음에는 경악하다가 재빨리 친숙해진다.
그러나 자정의 노력이 없으면 외부의 제재가 있기 마련이다. 타인의 심의가 싫거든 자율 심의가 필요하다. 요즘의 인터넷 악플은 누리꾼들 스스로마저도 '처벌을 찬성'할 만큼 도를 넘어서고 있다. 그렇다면 누리꾼은 이 과잉의 공간, 인터넷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그 답은 누리꾼 스스로가 신중한 사유와 꾸준한 실천으로 하나하나 찾아나가야 한다. 물론 그까이꺼 대충 '빠른 검색' 해본다고 되는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