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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집의 기초공사에 쓰인 쓰레기 조각들
새 집의 기초공사에 쓰인 쓰레기 조각들 ⓒ 신아연
가까이 보니 크기가 한아름은 됨직하고 딴에는 제법 튼실하게 지어진 데다 둥지도 한 칸이 아니라 두 칸을 연속으로 붙여 지은 '다세대 주택'임에도 계속되는 비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그만 붕괴해 버린 듯했다.

조심스레 둥지 안을 들여다보니 다행히 새끼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다 싶었는데, 새 집이 떨어진 자리에서 한 뼘도 안 되는 곳에 새알 하나가 잔디풀 사이에 숨어 있을 줄이야. 꼭 메추리알만한 크기에 희디 흰 것이 상한 곳 하나 없이 바닥에 떨어진 걸 보면 마지막까지 둥지 안에 남아 있다가 변을 당한 것 같았다.

새알을 어찌 수습도 못한 채 다시 새둥지의 잔해를 살피자니 하찮은 짚더미에 불과하건만 이리저리 뒤적일수록 마음이 안타까웠다. 이 보금자리를 마련하려고 수십, 수백 차례 집 재료가 될 만한 것들 되작거리고 물어나르느라 부리인들 성했을까. 또 자재를 옮겨나르는 손이자 발에 물집인들 맺히지 않았으랴.

둥지 밑둥이 나뭇가지에 단단히 고정되도록 기초공사를 튼튼히 하기 위해 진흙을 짓이겨 바른 부분을 자세히 보니 껌종이부터, 비닐봉지, 아이스크림 포장지, 과일의 씨앗, 이쑤시개까지 쓰레기를 닥치는 대로 모아 바닥재로 사용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제 몸 길이보다 결코 짧지는 않았을 아이스 바의 스틱까지 몇 개 박아 대들보를 튼튼히 하고, 비닐랩으로 방수공사까지 거뜬히 해 놓은 집이 이렇게 허망하게 무너져 내렸으니 모르긴 해도 주인 새들의 허탈함이야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으리라.

얼마 전 운전을 하다 신호대기 중에 도로 중앙분리대에서 부리를 조아리고 있는 새 한 마리에게 무심코 눈길이 갔다. 땅 속에서 벌레라도 잡아먹는 줄 알았는데 실은 바람에 쓸려온 과자 봉지 조각을 입에 물었다 내려놓았다 하는 중이었다. 고개를 빼서 둘레둘레 주위를 살피기도 했다가 여러 조각을 한꺼번에 물어올려보기도 했다가 다시 내려놓고는 보다 쓸 만한 것을 가늠하려는지 째작째작 두어 걸음 옮겨가기도 했다.

순전히 내 감정으로 그랬겠지만, 순간 고독한 새의 검은 두 눈에는 혼자서는 뭘 물고갈지를 놓고 갈등하는 초조함마저 스치듯 보였다. 이내 신호가 바뀌어 새가 결국 뭘 물고 갔는지 끝까지 지켜보진 못했지만 그때도 '아하, 저 녀석이 지금 집을 짓는 모양이구나" 하고 짐작은 했었다.

그렇게 온 종일 길에 구르는 쓰레기를 주워 모아 얼마만에 집을 완성했는지는 예상조차 할 수 없지만, 숱한 공을 들여 지어놓은 집이 하루아침에 이렇게 처참하게 무너져내렸으니 그날 운전하면서 본 그 새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지상의 방 한 칸 없이 아무 나뭇가지에나 깃들여 비를 피하고 하룻밤 잠자리를 얻으면 그만이지 않았을까 하고 집주인 새를 대신하여 원통함도 느껴본다.

저녁 무렵 산책을 할 때면 바로 옆 사람의 말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황혼녘에 보금자리를 찾는 새들의 지저귐이 요란하다. 입에 풀칠을 하자고 하루 종일 노동에 지친 새들이 고단한 몸을 쉴 만한 나무를 '찜' 하느라 떼를 지어 이리 날아오르고 저리 몰려다니는 모습이 노을과 어우러져 장관을 연출하는 것이다.

새들도 우두머리가 있을 테니 '얘들아 이 나무는 쪼까 거시기하니 다른 데를 찾아보자' 하고 외치는지 족히 백마리 이상이 나무가 휘어질 듯 자리를 잡았다가도 어느 순간 일시에 와르르 하늘로 솟구치며 불만의 함성인지 모를 소란을 내지르며 다른 나무로 옮겨가기 위해 이동을 한다.

그럴 때마다 참으로 신기한 것은 새들마다 반드시 같은 종끼리 한 나무 전체를 차지한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새들의 '양극화 현상'도 사람세계 만만치 않은 듯 자기들끼리 아파트 평수에 제한이라도 둬서 끼리끼리 주거환경을 만들어 사는 것일까.

우리 집 나무에 집을 지은 새들도 속편하게 남들처럼 그렇게 전세를 살면 될 것을 어찌하여 내 집을 장만하느라 그 고생을 하고는 일가를 이뤄 다복하게 살아보지도 못하고 허무하게 비 피해를 당하고 말았을꼬.

새들마다 독특한 생활방식이 있고 고유한 습성이 있다는 것 쯤이야 왜 모를까마는 장대처럼 까마득히 높은 곳에서 바닥으로 주저앉은 새집의 잔해가 보면 볼수록 안쓰럽게 비치는 것을 어쩌랴.

떨어진 둥지를 치우는 내게는 널브러진 쓰레기에 불과하지만 이 쓰레기를 쉴 새 없이 주워 날랐을 새들에게는 모처럼의 단비가 졸지에 가족들의 보금자리를 앗아가버린 '웬수'이니, 그 절통함이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까봐 걱정이다.

덧붙이는 글 | 호주 온라인 뉴스 http://www.hojuonline.net 에도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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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철학과를 졸업한 후 1992년 호주 이민, 호주동아일보기자, 호주한국일보 편집국 부국장을 지냈다. 시드니에서 프랑스 레스토랑 비스트로 메메를 꾸리며 자유칼럼그룹 www.freecolumn.co.kr, 부산일보 등에 글을 쓰고 있다. 이민 칼럼집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과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공저 <자식으로 산다는 것>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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