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오마이뉴스 고정미
아파트를 지을 수 있는 공공 택지는 '로또 택지'로 불린다. 그 땅만 차지하면 200~300억원을 앉아서 벌 수 있기 때문이다.

"토지 매매 계약 날짜를 위조해 파주 운정 택지개발지구의 토지를 먼저 분양 받으려던 건설업체들이 검찰에 무더기로 적발됐습니다." 'YTN 2006년 1월 5일'

경기도 의정부지검 고양지청 형사2부(부장검사 방철수)가 발표한 이 사건으로 철퇴를 맞은 건설업체는 모두 8곳. 지난 2001년 택지개발촉진법(택촉법)이 개정된 이후 토지매매 날짜를 조작한 건설업체가 검찰에 적발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이들 건설업체 8곳은 토지를 다른 건설업체에 전매하거나, 주공으로부터 높은 수용 보상가를 받아 200~300억원의 차익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사실 이 내용은 한 시민이 주택공사로 보낸 투서가 단초가 됐다.

주택공사로 간 투서

"교하읍 동패리 산○○에 주식회사 마하텔리콤(이후 신성플래닝에 합병)이 실제 보상가보다 월등하게 돈을 많이 준다는 말만 믿고 6억원을 받고 2003년 4월 10일께 소유권을 이전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확인해 보니 등기상에는 소유권 이전이 2000년 11월 1일에 이뤄진 것으로 나와 있었습니다 …(중략)… 이런 사기 행각으로 천문학적인 시세(보상금) 차액을 챙기는 악덕 업자들이 발붙이지 못하게(예상컨데 300~400억 차익 예상됨)해야 합니다."

2004년 10월 27일 대한주택공사 감사실에 황아무개(60)씨가 접수시킨 투서 내용이다.

대한주택공사는 파주 교하읍 동패, 목동, 야동, 와동리 일대 285만평의 땅을 파주 운정 신도시로 개발해 4만6256세대를 공급할 예정이다.

정부는 서민주거복지 안정을 위해 택촉법에 따라 민간의 소유 토지를 수용할 수 있는 권한을 한국토지공사, 대한주택공사, 지방자치단체에 부여했다. 이렇게 수용된 땅이 바로 서민주거안정을 위해 아파트가 지어지는 공공택지다.

그런데 공익 목적을 위해 수용까지 한 공공택지가 1998년 아파트 분양가가 전면 자율화 되면서 건설업체에 보통 시세의 30~40% 수준으로 공급됐다.

공급되는 방법은 2가지. 추첨 방식을 통해 싼 가격에 주거나 수의계약을 통해 특정 업체에 주는 방법이 있다.

투서가 접수된 경기도 파주 교합읍 동패리 땅은 바로 수의계약을 통해 특정업체에게 공공택지를 주려고 했다가 문제가 된 경우다.

택촉법에 따르면 아파트 사업자가 토지를 소유했다면, 토지를 수용한 후 수의계약을 통해 공공택지를 보상받을 수 있도록 돼 있다.

그러나 2001년 7월 건교부(당시 오장섭 장관 재임)가 주도해 만든 택촉법 시행령 개정안에 따르면 공공택지 수의계약 허용요건이 '공람 공고 1년 전 소유'에서 '공람 공고일 현재 계약을 하고, 개발계획 승인 전 소유'로 조건이 완화됐다. 게다가 파주와 동탄 신도시 등에 적용되도록 소급적용 규정까지 명시해 건설업체에 엄청난 특혜를 제공했다.

이 때문에 파주 운정 지구는 개발예정지구(공람 공고에 준하는 기준)로 지정된 2000년 12월 29일 이전에 계약을 맺고, 개발계획 승인 전인 2003년 5월 16일 전까지만 땅을 가지고 있으면 수의계약으로 택지를 공급 받을 수 있었다.

황씨가 고발한 업체 신성플래닝은 수의계약으로 택지를 공급 받기 위해서 2003년 4월에 소유권 이전을 했으면서도, 2000년 11월 1일 소유권 이전이 이루어졌다고 등기를 속여 거짓말을 한 셈이다.

등기부 등본에 따르면 신성 플래닝이 수의계약을 통해 공급 받을 땅은 종합건설업체인 GS건설이 권리 확보를 했으며, GS건설은 부동산 정보업체에 분양 광고 까지 내보낸 바 있다. 이에 대해 GS건설측은 "신성플래닝을 시행사로 하고 땅의 권리를 확보했을 뿐"이라면서 "불법 전매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투서가 접수됐을 때 주택공사는 "우리에게 심사할 권한이 없다"고 발뺌했다. 문제가 커지자 주공은 파주 운정 1지구 공공택지 40만평의 절반 이상인 23만평에 수의 계약하려고 했던 계획을 보류한 상태다.

주공 신도시개발처 관계자는 "수의계약 업체를 선정하기 위해 검토과정에 있다"면서 "검찰 발표가 있었던 만큼 문제가 있는 업체들을 걸러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도 넘어선 토공의 수의 계약

불법 전매로 논란이 됐던 동탄 신도시 시범단지 3-5블럭. 결국 명신의 토지는 서해종합건설로 넘어갔다.
불법 전매로 논란이 됐던 동탄 신도시 시범단지 3-5블럭. 결국 명신의 토지는 서해종합건설로 넘어갔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수의계약을 통해 '로또 택지'인 공공택지를 얻어 전매할 경우 수백억의 차익을 얻을 수 있다는 건 건설업계에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특히나 시행사와 시공사로 나누어진 구조를 이용해 불법 전매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토공과 주공, 그리고 지자체는 이를 제대로 관리 감독하지 않고 있다.

토지공사가 개발한 경기도 화성 동탄 신도시 시범단지 수의계약은 공공 택지를 둘러싼 복마전의 실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동탄 신도시 시범단지 3-5블럭(39-62평 727세대)을 수의계약으로 공급받은 건설사 명신은 대우건설과 서해종합건설에 이중으로 공공택지를 전매했다가 소송에 휘말렸다.

당시 명신은 대우건설에 420억원 확정이익을 계약 조건으로 내세웠다. 운 좋게 공공 택지를 넘겨 받아 되팔면 400억원 이상을 손쉽게 벌 수 있는 셈이다.

명신의 경우 수의계약 과정도 석연치 않다. 토지공사의 자료에 따르면 명신은 동탄면 석우리 산○ (임야) 등 4필지를 소유했다는 이유로 수의계약 대상자가 됐다. 하지만 임야는 건설업체가 소유할 수 있는 허가대상이 아니다. 수의 계약을 받기 위해 특혜를 받아 임야를 마구잡이로 사들였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부분이다.

경실련이 지난해 10월 12일 토지공사와 주택공사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00년 이후 수도권에 공급된 공공주택지 총 174만평 가운데 61%가 수의계약으로 공급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민간건설업체에 공급된 용지 가운데 57%인 89만평, 2조 6000억 원 정도의 택지가 수의계약으로 공급된 것으로 드러났다.

경실련은 2000년 이후 조성된 수도권 공공택지의 분양 수익이 총 7조원이며, 이는 택지 한 평당 409만원에 이르는 금액이다. 이를 수의계약 택지에 적용할 경우 민간 건설업자가 취한 개발 이익은 3조 6519만원으로 추정된다.

이 이익은 고스란히 소비자들 부담 부분으로 남았다. 결과적으로 소비자들은 원가에 비해 아파트 평당 205만원, 33평 기준으로 할 경우 6700만원의 추가 비용을 떠 안은 셈이 된다. (박스 기사 참조)

건설교통부의 너무 늦은 조치

토지공사와 주택공사가 공공택지를 수의계약 하면서 건설업체의 배만 불려줬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은 한국토지공사 전경.
토지공사와 주택공사가 공공택지를 수의계약 하면서 건설업체의 배만 불려줬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은 한국토지공사 전경. ⓒ 오마이뉴스 이성규
이런 문제점 때문에 감사원은 2002년 말 건교부에 공공택지 공급방식을 최고가 경쟁입찰 등의 방법으로 바꿀 것을 요구했지만, 최재덕 건설교통부 차관 등(현재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원장) 관계부처 차관들이 대책회의에서 '특별한 이유 없이' 이를 유보시켰다.

공공택지 공급의 문제점에 대해 경실련 아파트 거품빼기 운동본부 김헌동 본부장은 "높은 분양가로 인한 폭리와 택지의 전매, 수의계약 확대로 인해서 공공택지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전락한 반면, 서민주거안정에 전혀 기여하지 못하고 집값을 올리는 원인이 됐다"면서 "공공택지를 공영개발할 경우 아파트 가격 50% 인하할 수 있는데도 정부는 이를 시행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8·31 후속 대책으로 공공택지 원가 공개를 비롯해 분양가를 낮출 수 있는 방법을 발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공공택지 공급에 대한 개선책은 뚜렷하게 내놓고 있지 못한 상태다. 건설교통부 주거복지본부는 지난해 12월 29일 공공택지의 수의계약관련 문제점을 보완하는 내용의 '택촉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개정안'을 입법예고했지만 아파트 가격 안정에 얼마만큼 기여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수의계약 조건만 강화했을 뿐이지, 기존에 공공택지를 분양받은 건설업체가 수백억원을 챙기는 시스템은 개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8·31대책에서 정부는 향후 수도권 택지 1000만평 공급을 약속했다. 그러나 공공택지 공급시스템의 개선 없는 택지 공급은 건설업체들의 배만 불릴 공산이 크다.

이와 관련 건교부 주거복지본부 관계자는 "25.7평 이상 주택을 지을 수 있는 공공택지의 경우 채권입찰제를 통해 개발이익을 환수하고 있기 때문에 공공택지에 최고가를 도입할 필요가 없다"면서 "불법 전매의 경우 토지공사나 주택공사 등 개발시행자의 엄격한 심사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서울시립대 서순탁(도시행정) 교수는 "왜곡된 공급방식으로 인해 공공택지에서 건설되는 아파트가 서민주거안정과는 거리가 먼 재택수단으로 변질됐다"면서 "공공택지의 경우 전면적 공공개발 방식을 도입해 분양가를 낮추고, 임대주택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방안을 제시했다.

평당 54만원 토지, 702만원으로 '변신'

경실련은 한국토지공사가 1999년부터 2003년 사이에 택지를 조성해 분양한 ▲용인 죽전 ▲용인 동백 ▲파주 교하 ▲남양주 호평 4개 지역에서 토지공사가 5217억원, 주공 및 민간건설업체가 토지공사로부터 택지를 구입하여 아파트를 분양하는 과정에서 2조8497억원의 개발이익을 챙긴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애초 논과 밭 혹은 임야를 토지공사가 수용할 당시 평당 토지 가격은 54만원이었다. 이후 토지공사는 평당 244만원에 택지를 조성한 후 건설업체에 평당314만원에 공급해, 70만원의 땅 값 차익을 보게 된다.

추첨방식을 통해 토지공사로부터 평당 314만원에 토지를 사들인 주택건설업체는 택지 한 평을 702만 원선에 소비자에게 공급해 388만원의 폭리를 취했다.

평당 54만원에 사들인 토지는 불과 몇 개월 사이에 702만원에 소비자에 판매되고, 평당 원가가 244만원인 땅 값 차익 458만원(702만원-244만원)은 토지공사와 건설업체들에게 돌아갔다.

이런 지적에 대해 토지공사는 “택지지구 토지 가운데 도로, 공원 같은 무상 제공분이 45%에 달하고, 임대아파트 부지와 공공시설용 토지는 조성원가 내지는 조성원가의 60%수준으로 저렴하게 공급하고 있다”면서 “단순하게 아파트 용지의 이득만을 계산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반박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오마이뉴스 정신을 신뢰합니다. 2000년 3월, 오마이뉴스에 입사해 취재부와 편집부에서 일했습니다. 2022년 4월부터 뉴스본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