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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2002), <촘스키, 세상의 권력을 말하다 1ㆍ2>(2004)를 출간한 바 있는 '시대의 창'이 또다시 <촘스키, 세상의 물음에 답하다 1ㆍ2ㆍ3>를 야심 차게 내놓았다. 대담 형식의 전작들과 달리 신간은 10년 동안 촘스키가 정담회, 강연회 등에서 대중과 호흡하며 공동으로 산출해낸 값진 결실을 정교한 편집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매번 촘스키의 글을 읽을 때마다 특유의 도전 의식, 저항 정신이 전이되는 느낌을 갖는데, 그건 아마도 그의 삶이 '진실을 도둑맞고 사는 약자'를 위한 헌신으로 점철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에서도 예외 없이 권력과 언론의 유착관계, 미국의 제국주의적 외교 정책 등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권력은 대중을 두려워한다

촘스키에 의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실질적인 권력은 대기업과 부자들에게 편재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나 대기업과 부자들은 이 사실이 대중에게 알려지는 걸 극도로 꺼린다. 자유와 평등을 기치로 내건 자유 민주주의 사회에서 부와 권력이 일부 계층에 편중되어 있다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유통될 경우 자칫 거대한 후폭풍이 밀려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원래 권력은 대중을 두려워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동서고금의 권력자들은 대중을 견제하는 장치들을 고안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다. 그리하여 가장 원시적인 물리력에서부터 법과 제도에 의한 통제, 전쟁 같은 외부적 도전을 기획하는 편법, 언론과 교육을 통한 세뇌 등으로 그 영역이 점차 확대된다.

부연하자면, 냉전 체제나 공산주의의 위협, 전쟁 같은 외부적 도전은 내부적 결속력을 강화해 대중으로 하여금 통치자에게 절대 권력을 일임하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날 냉전 체제는 기득권 세력이 대중을 통제하기에 더없이 유리한 환경이었던 셈이다. 매카시즘이나 색깔론 같은 극단적 반공 이데올로기로 권력에 대한 일체의 도전을 완벽히 차단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한편 전통적으로 언론과 교육은 이중적 잣대를 적용하기에 용이한 구조로 인해 여론을 조작하는 핵심 도구로 전용되어 왔다. 언론과 교육 둘 다 표면적으로 진실 추구, 자유, 평등, 정의 등을 기본 이념으로 표방하지만 그 이면엔 대중을 기득권 세력에 봉사하도록 세뇌하고 회유하는 역능이 은닉되어 있다. 이를 통해 기득권 세력은 권력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민중의 거센 도전을 뿌리치는 것이다. 이를 일컬어 '프로파간다(propaganda) 모델'이라고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원론적인 프로파간다 모델은 다음과 같다. "기득권 세력의 이익을 침해하거나 기분을 상하게 해선 안 돼. 자본주의적 질서란 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먼저 물통을 가득 채우고 난 후에 물통에서 흘러넘치는 물을 나머지 사람들이 공평하고 질서정연하게 나눠 갖는 것을 말해. 우리의 물통이 가득 채워지기 전엔 결코 물통에서 물이 흘러넘치지 않는다는 걸 명심해." 소위 신자유주의, 성장과 분배 등에 관한 담론은 교묘하게 위장된 프로파간다라 할 수 있다.

만약 일반 대중이 왜곡ㆍ조작된 프로파간다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할 경우, 종국엔 동심원을 그리는 파문처럼 점차 권력의 주변부로 밀려나 소외되고 말 것이다.

한국 언론, 미국의 유산을 상속받다

우리는 흔히 미국의 언론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경향이 있는데, 미국 언론에 대한 촘스키의 평가는 냉담하기 그지없다.

"언론은 두 가지 기본적 기능을 갖고 있다는 걸 기억하십시오. 하나는 엘리트들을 세뇌하여 이른바 '올바른' 생각을 갖도록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권력에 봉사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전형적으로 말해서, 엘리트는 사회의 가장 세뇌된 부분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대부분의 프로파간다에 노출되어 있고 실제로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뉴욕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월 스트리트> 등이 있습니다. 하지만 주된 임무가 대중을 따돌리는 것인 매스미디어도 있습니다. 대중이 의사결정 과정에 참 여하지 못하도록 일부러 이렇게 주변화하는 거지요.

그런데 이런 우민화(愚民化)의 목적으로 디자인된 언론은 <뉴욕 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가 아닙니다. 그것은 텔레비전의 시트콤, <내셔널 인콰이어러>, 섹스와 폭력, 머리 셋 달린 아기들, 미식축구……. 뭐 이런 것들입니다. 하지만 이런 미디어가 주요 대상으로 삼고 있는 인구 가운데 85퍼센트는 이 세상의 일에 흥미를 느끼는 유전자를 나름대로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이런 사람들이 탈(脫) 교육과 세뇌의 시스템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다면, 그리고 이 인구들이 소속된 전체 계급이 그렇게 할 수 있다면 - 사람들이 정치 참여를 꺼리는 것은 세뇌 그거 하나 때문만은 아닙니다 - 대체 문화를 바라는 엄청난 사람들이 있는 거고 그러면 희망이 있습니다."


촘스키는 거대 언론사들의 프로파간다에 의해 철저히 세뇌된 미국인들이 언제든지 전체주의적 성향이 있는 파시스트로 돌변할 잠재적 성향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의 우경화는 그 일례로,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18세기 말 토마스 제퍼슨이 프로파간다의 실마리를 제공한 이래 전통적으로 미국인들은 프로파간다의 손쉬운 먹잇감이었다. 그로 인해 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미국 정부의 제국주의적 만행은 대중의 암묵 속에서 언론에 의해 합리화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가? 불행히도, 해방 이후 줄곧 미국의 우산 아래 보호받으며 사회 조직을 재건해 온 남한 사회는 미국으로부터 자본주의적 유산을 고스란히 상속받았다. 특히 권력이 여론을 조작하는 방식에서 사실상 한국 언론은 미국 언론의 하부구조를 이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미국 언론의 프로파간다가 한국 언론의 프로파간다에 그대로 반영되는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해서, 한국 언론이 미국 언론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권력을 위해 봉사한다는 얘기다.

잘 알다시피 조선·중앙·동아일보 같은 주류 언론사들은 미국으로부터 노하우를 착실히 전수받으며 프로파간다의 지평을 지속적으로 확장해 왔다. 기본적으로 대중을 권력의 주변부로 밀어내고 기득권에 봉사하도록 세뇌하는 것은 물론이요, 권력 유지에 필요한 각종 프로파간다를 양산하는 데 앞장섰다.

지난 10년 동안 조선·중앙·동아일보가 비관적인 경제 전망으로 일관했던 것,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친북 좌파 정권으로 규정해 적대세력화한 것, 근거 없이 반기업정서 운운하는 등의 행위는 결코 일시적 현상이거나 우연이 아니다. 그 이면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여론을 조작하는 자본주의의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애초에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을 동력으로 삼아 출범한 '자본주의 號'는 언제든지 비운의 타이타닉호처럼 난파될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이는 자본주의에 내재한 어두운 그림자, 달리 말하면 지킬 박사에 내재한 하이드적 속성이라 하겠다.

촘스키는 탐욕과 이기심을 신성시하는 자본주의적 가치관을 수정하지 않는 한 언젠가 자본주의도 공산주의처럼 괴멸될 거라고 경고한다. 그리고 파멸을 예방할 유일한 대안은 민주적인 방식의 권력 해체뿐임을 강변한다.

"문제의 핵심을 틀어쥐고 그걸 제대로 해결하려면 권력의 본원(本源)에 접근하여 그것을 해체해야 합니다. 따라서 대안은 정책들에 대한 통제권을 민중의 손에 돌려주는 것입니다. 민주적인 방식으로 권력을 해체하고 확산시키는 것, 이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촘스키가 제시한 방법론에 동의하든 안 하든, 자본주의 사회에 몸담고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그의 말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 촘스키를 읽지 않고 자본주의를 논하는 자여, 변호사의 말만 듣고 판결을 내리는 재판관이여! 촘스키를 모르고 자본주의를 안다 하지 마라!

촘스키, 세상의 물음에 답하다 1 - 권력이 여론을 조작하는 방식에 관하여

노암 촘스키 지음, 피터 R. 미첼.존 쇼펠 엮음, 이종인 옮김, 시대의창(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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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스키, 희망을 이야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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