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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겨울에도 푸른색의 미나리는 젊음과 생명의 대명사라 할 만하다.
한 겨울에도 푸른색의 미나리는 젊음과 생명의 대명사라 할 만하다. ⓒ 조태용
한겨울에도 푸른색 미나리는 젊음과 생명의 대명사라 할 만하다. 더구나 겨울 햇살에 투명하게 빛나는 미나리의 연둣빛은 사파이어의 푸른빛을 닮았다. 전라북도 순창의 미나리 재배 농가를 찾은 것은 겨울 햇살이 봄처럼 찬란하던 오후였다.

두 분을 만나자마자 가벼운 인사를 하고 미나리 농사가 어떠냐고 물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의 대답은 처음부터 의외였다. 미나리 농사가 아주 재미있다는 것이다. 미나리의 푸른 모습만 보고 있어도 기분이 좋아진다고 하니 그들이 무슨 생각을 가지고 농사를 짓는지 궁금해진다.

추위와 물에 끄덕 없는 미나리의 생명력

사실 요즘은 미나리가 팔리는 시기가 아니라서 판매는 부진하다고 한다. 그러니 돈벌이로 보면 즐거운 때는 아니다. 미나리는 김장때와 설날 그리고 대보름날 많이 팔리고 요즘에는 순창 오일장에 가서 소량을 직접 팔고 있다고 한다.

미나리는 농사라고 하지 않고 '미나리 장사'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 이유는 미나리가 판매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특별하게 수매를 하는 것도 아니라서 개인농가가 어떻게든 판매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골 사니까 오히려 편하고 좋다는 전명란씨
시골 사니까 오히려 편하고 좋다는 전명란씨 ⓒ 조태용
겨울 미나리 농사는 하우스에서 한다. 이들의 미나리 하우스는 섬진강 변에 있었다. 미나리 하우스에 가보니 푸른 미나리들이 하우스에서 녹색을 품어내고 있었다. 깨끗한 지하수 물이 연결된 파이프를 통해 흘러나온다.

이 물은 항상 영상 16도를 유지한다고 한다. 미나리의 재배 조건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물이라고 한다. 즉 깨끗한 물은 좋은 미나리의 필수 조건인 셈이다. 미나리는 하우스 안에서 재배하지만 특별히 난방을 하지는 않는다. 추위에도 잘 견디기 때문이다. 그만큼 생명력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이 미나리 농사를 짓게 된 것은 홍수 때문이라고 한다. 섬진강이 가까이에 있어 풍경은 좋지만 여름 장마철이면 강물이 불어나 역류되어 번번이 농사를 망쳤다고 한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미나리였다. 미나리는 물에서 키우는 것이니 역류해도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그 생각이 적중해 미나리 농사도 잘되고 역류에 의한 피해도 없다고 한다. 더구나 무농약 인증을 받아 판매하는 미나리는 꽤 인기가 있다고 한다.

김기열씨와 딸아이
김기열씨와 딸아이 ⓒ 조태용
해지는 미나리 밭에 서서 그들과 잠시 농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대화 내용을 간추려서 실어본다.

- 요즘 농사짓는 것은 어때요. 힘들죠?
김기열(남편 농부): "아니에요. 예전에는 힘들기만 했는데 요즘은 농사가 정말 재미있어요."

- 그래요. 왜죠. 보통은 힘들다고 하잖아요?
김기열: "농사는 관점이 중요한 것 같아요. 농사는 생명을 키우는 거잖아요. 내가 생명을 키워서 열매를 얻고 그것을 통해 다른 생명을 키운다는 생각이 중요해요. 그럼 꽤 농사가 의미 있는 일이 되잖아요? 그런 의미 있는 일을 내가 한다고 생각하면 기분 좋은 일이죠."

"비가 오지 않으면 직접 우물을 파야죠"

- 그래도 판로가 안 좋고 가격이 하락하면 힘들잖아요?
김기열: "농사꾼은 농사만 짓고 판매는 다른 곳에서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죠. 아무리 생산을 잘해도 판매해주는 사람에게만 기대면 결국 가뭄에 하늘만 바라보고 사는 것이랑 같죠. 비가 오지 않으면 우물을 파야 하는데요. 그래서 우리는 직접 우물을 파기로 했습니다.

홈페이지도 만들고 장에도 직접 가서 팔기도 하구요. 그런데 의외로 직거래하는 것이 재미있어요. 내가 생산한 농산물을 누가 먹는지 알게 되니까 아무래도 농산물에 애정도 많이 가구요. 농사 잘 지어 줘서 고맙다는 소비자들의 인사를 받으면 기분도 좋아지죠."

늦은 저녁 무렵 섬진강
늦은 저녁 무렵 섬진강 ⓒ 조태용
- 시골 사는 일은 재미있어요? 요즘엔 시골에 젊은 사람도 없고 해서 심심할 것 같은데요?
전명란(부인 농부): "저는 시골 어른들이랑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거든요. 그 분들이랑 함께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맘이 편안해지고 좋아요. 그 분들도 젊은 사람이랑 이야기하면 좋아하고요. 하지만 이 분들이 연세가 많다는 것이 문제죠. 저희 마을에 젊은 분들이 몇 분 있지만 농사짓는 분은 거의 없어요. 다시 읍내나 인근 도시에서 일을 하는 분들이죠. 하지만 사실 농사짓다 보면 심심한 겨를도 없어요. 아침에 들에 나갔다가 저녁이 되어야 들어오는데요."

- 농촌사회의 특징이 집단화되어 있다는 것인데요. 그리고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도 있고요. 도시 사람들은 그런 것들을 싫어하잖아요. 모든 사람이 나를 알고 있다고 하면 행동할 때 신경이 많이 쓰이니까요. 시골 살면서 그런 것은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전명란: "저는 그런 것을 잘 모르겠어요. 뭐 시골 사니까 오히려 편하고 좋아요. 비교 대상이 없다고나 할까요?"

- 비교 대상이라니 어떤 말씀이시죠?
김기열 : "그러니까 옷 같은 거죠. 저는 오늘 하루 종일 모자 하나 눌러 쓰고 있었는데요. 사실은 세수도 안 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렇게 하고 다녀도 전혀 이상하지 않죠. 그리고 신발에 흙이 묻어 있어도 털지 않아도 되고요."
전명란: "맞아요. 저도 오늘 체육복 차림으로 이렇게 보내는 걸요? 화장도 안 해도 되구요. 얼마나 편한데요. 도시에 가면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옷도 입어야 하고 화장도 하고 해야 할 일이 많잖아요. 시골에 가면 그런 것으로부터 해방된다고나 할까요."

"농기계가 사람을 자꾸 멀어지게 해요"

- 요즘 시골 모습은 어떤가요?
전명란: "농기계 있죠? 저는 농기계가 사람을 자꾸 멀게 하는 것 같아요?"

- 농기계가 사람을 멀게 한다고요. 농기계가 사람 일은 대신해주면 시간이 남아서 사람들과 더욱 친밀해 져야 하는데 그것이 아닌 모양이네요.
김기열: "농민들이 농기계를 많이 사는데요. 농기계가 늘어나면서부터 협동의 범위가 점점 줄고 있어요. 예전에 모을 심으면 한 마을 전체가 함께 했잖아요. 그때는 마을 전체가 하나의 협동의 범위였거든요. 그러던 것이 기계가 들어오니까 이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할 필요가 없어진 거죠. 겨우 이웃 몇 명만 친하게 지내면 내 농사일을 할 수 있게 되니까 시골 사람들도 그렇게 변하더군요. 결국 기계가 사람들을 멀리하게 만든 거죠."

흙에서 뛰어노는 아이들
흙에서 뛰어노는 아이들 ⓒ 조태용
- 듣고 보니 그러네요. 기계화라는 것이 집약식 농업의 수단이 아니라 대규모 경작에 맞는 수단이니까요? 아무래도 그런 도구는 사람을 가깝게 하기 보다는 멀어지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시골에 살고 있는 두 분은 행복해요.
김기열 : "저는 만족하고 삽니다. 농사는 지으면 지을수록 매력이 있어요. 아침에 미니리 밭에 가서 푸른 미나리를 보고 있으면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몰라요. 미나리들이 마구 인사를 하는 것 같아요."
전명란 : "맞아요. 저 사람은 미나리 밭을 무척 좋아해요. 아마 미나리랑 함께 있으면 자신도 싱싱하게 젊어진다고 생각하나 봐요."(웃음)

두 젊은 농부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 동안 어느새 태양은 점점 야위어 가고 있었다. 어둠이 밀려오는 논길 한 가운데서 진행된 우리의 이야기는 여기서 멈추었다.

현대인들은 끊임없는 소비로 행복을 얻는다고 한다. 일상에서의 행복은 줄어드는 반면 소비를 통한 행복은 늘어난다고 한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행복하지 못하다고 한다. 소비를 하는 순간보다는 일상이 더욱 길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하루 종일 생명의 기운을 가득 안고 사는 두 분은 행복해 보였다. 그들은 미나리 밭에서 하루 종일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도시인들은 빌딩숲과 사무실 안에서 행복할까? 하는 생각이 그들을 떠나오면서 머릿속에 맴돌았다.

덧붙이는 글 | 김기열·전명란 부부는 자라뫼농장이라는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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