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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예술가들의 삶을 가까이서 볼 기회가 없었는데, 지난해 이권우의 <책과 더불어 배우며 살아가다>에서 처음 이 책을 만났다.

미술관에서 큐레이터로 근무하며 수많은 예술가들의 작업실을 탐방했던 저자는 그런 일들을 여행에 비유했다. 지방 곳곳에서 화단의 무관심과 냉대 속에서도 끊임없이 예술혼을 불태우고 있는 그들 삶의 현장을 다시 방문해 이 책을 완성했다 한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나는 저자의 문체가 참 좋았다. 마음에 와 닿는 미술 관련 서적을 쉽게 만날 수 없었던 개인적인 경험에 따르면 이 책은 섬광과도 같았다. 간간이 실려있는 예술가들의 작업실 흑백 사진은 그들의 고독하고 힘든 삶을 여지없이 드러내 주었다.

예술가의 길을 걷는 것, 그 빛과 그림자

나는 예술가라 하면 으레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이들이 택할 수 있는 직업 가운데 하나일 것이라 믿어왔다. 말하자면, 음대나 미대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학비는 물론이고 실력있는 선생님에게 배울 레슨비가 있어야 하고, 좋은 악기와 끊임없이 새로운 작품을 만들기 위한 재료비까지 충분한 돈이 아니면 예술을 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게다가 외국에 나가 공부하고 돌아와야만 성공의 수순을 밟을 수 있는 것이 예술가의 삶이라 막연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나의 생각을 보기 좋게 뒤집어 놓은 책이 있었으니, 바로 박영택의 <예술가로 산다는 것>이었다. 이 책은 성공해서 부와 명예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예술가들의 삶을 조명한 책이 아니다. 오히려 그와는 반대로 제도 교육을 받지 않은 예술가나 세상에 자신의 작품을 알릴 유일한 기회인 전시회를 열기 위해 바닷가로 나가 고기를 잡고, 그림을 그리기 위해 목수일을 할 수밖에 없는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자연으로부터 뜨인 눈과 마음을 일러 받으면서 그림을 그리는 행복감과 곧이어 파고드는 막막함 같은 것을 그 작가와 함께 나누고 있노라면, 한 인간으로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운명적으로 그림을 택하고 그림 그리기에 자신의 전부를 걸고 살아온 한 인간의 생애, 그 고달프고 끝이 보이지 않는 욕망과 맞닥뜨린다. - 본문 중에서

이 책에 등장하는 예술가들은 도심에서 벗어나 자연과 가까이 벗하면서 가난하고 고독하게 그림을 그린다. 그렇지만 그들이 가족과 헤어져 외로이 살면서도 작업을 하며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오직 그들에게 충만한 기쁨을 가져다주는 그림 때문이다.

학연과 인맥, 경제력 없어도 배제되지 않아야

미술관 큐레이터로 근무하면서 내가 작가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이렇게 전시회를 여는 것뿐이다. 그러나 작품은 여전히 팔리지 않고 화단은 무관심하다. 그림을 본 화랑주들은 '아! 좋네'라는 말 끝에 '팔리기에는 좀 어둡지 않나' '형상이 너무 강한데' '아직 수상 경력이 없군' '대학에 있나' '어렵게 살겠구만' 등등의 말만을 늘어놓고는 가버린다. 그들은 오직 작가의 화려한 배경과 경력, 팔릴 만한 대중성에만 관심이 있다.

… 이런 이유로 인맥과 경제력, 학연이 없는 작가, 미술계 제도권의 권력과 먼 작가들은 제아무리 프로페셔널한 작가의식과 근성을 지니고 있다 할지라도 배제될 수밖에 없다. 작품의 질이란 원래 학력, 경력, 재력이 결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일의 과정, 결과, 관점과 자세에서 드러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미술계에선 작품의 질에 관한 논의나 불합리한 구조에 관해서는 누구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 본문 중에서


저자는 당장 작품 한 점이라도 더 팔아서 재료비와 전시 비용을 마련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시급한 문제라 전한다. 화단 측에서 전시회를 마련해준다 하더라도 도록을 만들고 액자를 구입하는 비용은 고스란히 작가의 몫이다 보니, 저자는 그런 현실에 회의적인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고 했다.

작가에게는 기쁨을, 그들을 선보인다는 점에서 큐레이터인 저자에게는 성취감을 가져다 주는 전시회도 열릴 때 그때 뿐, 전시회가 끝나면 다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본래의 자리로 되돌아가 예술가는 또다시 가난과 냉대, 무관심 속을 홀로 걸어가야 하는 이 혹독한 현실에 대해 저자는 두려움과 슬픔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꿋꿋이 작품 활동을 하는 예술가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저자는 그들이 지금까지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그 사실만으로도 참 놀라운 일이라 이야기하는데, 그 어려움을 어찌 다 설명할 수 있겠는가. 예술가들이 학연과 인맥, 경제력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배제되지 않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나는 믿는다. 예술가들의 치열한 삶은 분명 그들이 일구어낸 작품으로 빛날 것이라는 것을.

예술가로 산다는 것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이규원 옮김, 북스피어(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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