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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3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서예교육 정상화를 위한 공청회’는 ‘교과목’에 대해 생각을 해보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는데, 마침 2월 22일부터 28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갤러리 라메르에서 금정 박종숙, 목연 최경애 두 현직 초등학교 교사가 ‘교과서’ 내용을 중심으로 한 2인전을 개최한다는 소식을 접하였다.

초등학교 교과서 전 과목에서 선문(選文), 작품화하여 전시회를 연다고 한다. 금정 박종숙씨의 '時空(시공)'과 목연 최경애씨의 '또 다른 내가 되어'가 그것. 각각 30여 점씩 선보일 이번 전시회는, 교과서에서 골라낸 서정성 짙은 문구에서부터 깊은 철학과 윤리성을 지닌 내용이 먹빛과 어우러지는 것을 미리 볼 수 있었다.

▲ 박종숙 作, 어깨동무(1학년 2학기 말하기 듣기 88쪽), 58×22
ⓒ 박종숙
이참에 ‘교과서’가 지닌 의미를 한 번 더듬어 보자. 두 작가를 지도한 서예가 손인식씨는 해설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교과서는 교육의 역사와 그 궤를 함께 하고 국민정신의 형성사와 맥을 같이 한다. 갑오경장 이전의 교과서에는 전통교육 사조가 올곧게 드러나 있고, 개화기로부터 시작된 근대교육, 광복 이후의 교과서는 그 시대에 걸맞는 최선의 내용으로 꾸며졌었다. 일본의 제국주의 정책이 노골화 기미를 보이던 시기에는 무려 57개에 달하는 뜻있는 민간단체들이 나서서 자주독립과 항일의식을 고취시키는 교과서 편찬에 진력을 다한 것이나, 이를 막기 위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일제의 만행, 국권을 찬탈한 일제가 발 빠르게 민족교과서의 명맥을 끊어버리고 식민지 교육정책에 따른 교과서로 대체했던 것은 과연 교과서가 무엇인가를 여실히 증명해주고 있다고 하겠다.”

그래서 이번 전시를 대하는 마음은 그만큼 ‘감동적이고 시사하는 바가 큰’ 것이라고 하겠다.

▲ 최경애 作, 同行(동행, 5학년 1학기 읽기 103쪽), 92×35
ⓒ 최경애
목연 최경애의 '또 다른 내가 되어'

▲ 최경애 作, 高飛大觀(고비대관, 3학년 2학기 말하기 듣기 30쪽), 51×70
ⓒ 최경애
최경애씨의 작품들에 대해 스승 손인식씨의 말을 계속해서 들어보기로 하자.

“목연의 이번 작품들을 일별해보면 우선 그 폭이 매우 넓다는 것을 쉽게 느낄 수 있다. 한글은 물론 한문의 각 서체가 두루 구사되어 있음이 눈길을 끈다. 중요한 것은 그 다양함 가운데에서도 초지일관 그다운 선과 구성의 묘를 잘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타고난 기질과 창의력을 만끽하기에는 아무런 아쉬움이 없다.”

그리하여 최경애씨의 작품에는 '또 다른 내가 되는' 교육과 서예의 구현이 담겨 있음을 쉽게 간파할 수 있지 않겠는가.

“목연의 작품들을 살핌에 있어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작품의 내용이다. 주제인 교과서를 대변이라도 하듯 서정성 짙은 제재에서부터 격언과 도덕, 윤리성을 함뿍 지닌 내용들이 고르게 선문되어 빛을 발하고 있다. 이들 내용은 매우 다양한 서체에 의해 내용이 지닌 정서와 맛깔을 유감없이 잘 드러내고 있어서 더욱 새롭다. 이는 목연의 폭 넓은 수학의 정도와 서사 능력을 한껏 발산하는 빌미가 되기도 했는데, 하지만 예의 그 내용의 친근함으로 감상자를 망설임 없이 작품 안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 최경애 作, 또 다른 내가 되어(3학년 1학기 말하기 듣기 68쪽), 45×27
ⓒ 최경애
금정 박종숙의 '時空'

그러면 박종숙씨의 작품 세계는 어떠한가. 계속해서 스승의 말을 들어보자.

“한글 궁체로 첫 발을 내딛기 시작한 금정은 연찬을 거듭하면서 한글 서체와 한문 서체를 두루 섭렵했다. 아주 은근하게 그러나 그침이 없이 학습을 했다. 그 결과 금정은 대한민국서예대전에서 입상한 것을 비롯하여, 여러 공모전에서 수상하는 등 실로 화려한 성과를 쌓아 올렸다. 이제 개인전을 가짐으로써 새로움을 향한 한 걸음 나아감이었음을 묵직하게 증명한 것이다.”


그리하여 박종숙씨는 '시공(時空)'에 서예와 교육을 빚고 또 빚어 놓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 박종숙 作, 廣世多話(광세다화 : 넓은세상 많은 이야기, 4학년 2학기 읽기 92쪽), 135×35
ⓒ 박종숙
“금정의 작품에는 일관되게 흐르는 정이 있다. 조용한 성품과 긍정으로 일관된 무욕의 실천력이 따스한 정으로 담겨 있다. 글자를 구성한 선 전체에 흐르는 강한 필력으로 인해 더러 딱딱하고 건조하며 조급함이 드러날 것도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다. 그 오묘하고 탄력 있는 붓 움직임에 나타나기 쉬운 가장된 화려함마저 걸러지고 없다. 어느 작품을 들여다보아도 큰 무리가 없다. 어느 부분 미완인 곳에도 오히려 그다운 따뜻한 정과 미래를 기대하는 희망이 가득히 흐르고 있다.”

▲ 박종숙 作, 時空(시간과 공간, 6학년 1학기 읽기 6쪽), 67×34
ⓒ 박종숙
봄기운과도 같은 단어와 문장들

흘러간 시절의, ‘지극히 당연’하면서도 또한 ‘지극히 높은’ 문구가 교과서 속의 문장이 아니겠는가라고 흔히 생각하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오늘, 어른이 된 가슴에 그 내용이 울림으로 작용하는 것은 그 단어와 문장이 세대를 건너 가슴 속에 싹을 틔우는 봄기운과도 같기 때문이리라.

현직교사이자 서예가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두 작가의 이번 작품전은 ‘교과서를 주제로 한’ 국내 최초의 전시로서 서예가 지닌 정신과 격조를 통하여 교과서의 고귀함과 충실한 내용을 가슴 뭉클한 예술적 감동으로 전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물질이 지배하는 시대, 현대 사회가 지닌 문제를 풀어나갈 본질적 방법은 교육에 있다. 이번 전시회가 갖는 의미는 바로 서예를 통하여 교육의 숭고함과 교과서가 지니는 가치성을 새롭게 일깨워 준다는 것, 나아가 교육의 발전과 희망 등에 이바지하고자 하는 데 있다는 것이라 하겠다.

그것이 바로 “다시 태어나도 선생의 역할을 다 할 것”이라는 두 중견 작가의 꿈과 사랑, 그리고 희망을 담아낸 이번 전시회가 기다려지는 이유이다.

덧붙이는 글 | 박종숙 씨는 현재 경기도 구리시 구지초등학교 교사이며, 정읍사서예대전 우수상, 신사임당서예대전 우수상, 대한민국서예대전 등에서 다수 수상하였습니다. 
최경애 씨는 경기 성남 신기초등학교 교사이며, 대한민국현대서예대전·경기도서예대전·중부서예대전·화성서예대전 등의 초대작가입니다. 
* 이 글은 <월간 서예문인화>에도 송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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