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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봄나물-냉이무침
봄나물-냉이무침 ⓒ 한성수
바쁘다는 핑계로 미뤄 둔 고향 길, 오늘(20일) 3주만에 엄니를 뵈었다.

"할머니, 그 동안 안녕하셨어요?"
"아이고, 내 강생이(강아지)들, 왔나!"

엄니는 버선발로 축담에 내려서는데, 아, 무심하게 끌리는 엄니의 다리. 와락 안겨든 아이들을 부둥켜안고, 엄니는 연신 볼을 비빈다.

돈나물
돈나물 ⓒ 한성수
엄니는 도시락에 담아온 밀치(참숭어)회를 입 짧은 손자에게 싸 주시며 "한 입 가득 넣고 훌툴 훌툴, 덤썩 덤썩 맛있게 먹어야지! 복은 음식 끝에 나는 법이다. 아나, 민지야. 너도 먹어봐라. 할미가 싸주니, 더 맛있지?"라고 하신다.

아이들도 상추와 들깻잎에 회를 가득 싸서 어머니께 내민다.
"할머니도 어서 드세요!"
"오냐, 너거(너희)가 싸주니 회가 더 꼬시구나(고소하구나)! 며눌아야, 너도 퍼뜩 묵거라!"

우리집 텃밭의 봄동
우리집 텃밭의 봄동 ⓒ 한성수
아들과 집을 한 바퀴 휘 둘러보는데, 남새밭에서 파릇파릇한 봄동을 보았다.
"그놈, 겉절이를 해 먹으면 참 만나겠다. 아들아, 봄나물이 났는지 뒷들에 나가보자!"
아들은 소쿠리 들고, 나는 호미 들고, 우리는 손잡고 집을 나선다. 마을을 막 돌아나가는데, 구포아지매 텃밭 돌무더기에 돈나물이 보인다.

"먹는 나물이에요?"
"그럼! 돈나물은 볶은 된장을 뜨거운 상태로 부어서 무치거나 국물김치로 담가 먹으면 아삭 아삭 씹히면서 향긋한 맛이 난단다."

언땅을 뚫고 올라온 쑥
언땅을 뚫고 올라온 쑥 ⓒ 한성수
야산 언덕배기, 고추 심은 밭을 조심조심 훑으며 지나가는데 아들이 외친다.
"아버지, 여기 푸릇푸릇한 싹이 있는데요!"
햇볕이 빼곡히 고개를 들이민 밭 언덕 사이에서 나는 마침내 봄을 만났다.

"아들아! 그건 쑥이란다. 이 땅의 가난한 백성들의 생명을 이어주는 '생명의 풀'이었단다."

하얀 꽃을 피운 냉이
하얀 꽃을 피운 냉이 ⓒ 한성수
아들과 나는 재미가 나서 재게 손을 놀리며 쑥을 뜯는다. 그런데 밭고랑 사이에 냉이가 많다. 아들과 내가 뿌리 채 캐낸 냉이의 머리에는 하얀 냉이 꽃이 앙증맞게 봄을 피웠다.

"꽃이 피었어요. 겨울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꽃이 핀 것이 너무 신기해요!"
"그래, 어쩌면 그것은 찬 겨울 동안 따스한 햇볕을 조금씩 갈무리해 두었다가 마침내 봄이 되자 그 생명을 겨워낸 것이겠지!"

깨끗하게 손질한 냉이
깨끗하게 손질한 냉이 ⓒ 한성수
먼저 나서 겨울의 찬 기운에 색이 바랜 냉이의 이파리는 뜯어내고 뿌리에 있는 흙은 털어내어 손질하고 나서, 아직은 가녀린 쑥을 다듬다가 나는 아들에게 불쑥 묻는다.

"아들아. 이 세상에서 제일 험한 고개가 무엇이냐?"
"보릿고개를 말씀하시는 거죠!"
"그래, 사람들이 양식이 없어 힘들어할 때 언 땅을 뚫고 '쑥'이 쑥 고개를 내밀면 사람들은 생명을 이어갈 희망이 생겼단다."

환상적인 맛-쑥국
환상적인 맛-쑥국 ⓒ 한성수
내 대답에 엄니는 웃으며 고개를 젓는다.

"쑥이 나오는 지금 시절은 '사람들의 보릿고개'는 아니란다. 풀이 나지 않고 여물도 떨어진 '소의 보릿고개'라고는 할 수 있단다. 조금 더 있으면 찔레꽃이 피는데, 그때는 보리가 필락 말락 한단다. 정월대보름까지는 그나마 갈무리한 양식이 남아 있는데, 보리가 필 때쯤에는 양식도 다 떨어져서 타작하면 배로 갚기로 하고 '장기 쌀'을 내어먹었단다. 그때가 바로 '사람들의 보릿고개'인데, 그것을 넘기기 위해 겨울 동안 남자들은 칡을 캐고, 쑥이 나면 여자들은 쑥을 캐어서 부지런히 말렸단다."

엄니의 긴 설명에도 아들은 귀를 쫑그리고 듣는다.

"소화가 안 될 때는 쑥물을 마시고, 다친 곳에는 쑥을 찧어서 바르기도 했단다. 단군신화에 보면 쑥은 곰을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게 만들지 않느냐? 그래서 아버지는 쑥을 '생명의 풀'로 부르고 싶구나!"

아직은 여린 쑥
아직은 여린 쑥 ⓒ 한성수
아내는 손질한 쑥과 된장을 조금 넣고 들깨가루를 더하여 조물조물 무쳐서는 멸치를 우려낸 국물에 조갯살을 넣어 쑥국을 끓여내고, 살짝 데친 파릇파릇한 냉이무침을 상위에 올렸다. 우리 집 상위에는 금세 오늘 캐낸 봄나물 향으로 그득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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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에 있는 소시민의 세상사는 기쁨과 슬픔을 나누고 싶어서 가입을 원합니다. 또 가족간의 아프고 시리고 따뜻한 글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글공부를 정식으로 하지 않아 가능할 지 모르겠으나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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