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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장례에 관한 국민의 관심사는 단연 수목장( 사람이죽으면 그 시신을 화장을 한 다음 유골을 나무 밑에 묻는 것)이다. 일본과 스위스, 독일에 이어 영국, 스웨덴, 뉴질랜드 등을 거쳐 한국에서도 수목장이 확대되고 있다. 이런 수목장의 확대는 친환경주의와 웰빙(웰-다잉)의 추세에 맞춰 매우 바람직스러운 현상으로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수목장의 확대를 계기로 기존의 장묘관련 종사자 및 관계자 등 기존의 전문가라 칭하는 집단에서는 상호간에 ‘자리다툼’식 입장표명으로 상당히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묘석과 납골석 등 석물에 관련된 장묘업자들은 자신들의 이익에 반하는 형태에 대해 맹목적인 반대 의사를 토해내고 있으며, 여기에 이들과 이권이 있는 일부 장례업 종사자들마저 그들의 주장에 부화뇌동(附和雷同)하고 있다. 이 같은 반발로 인해 우리의 수목장에 차질이 생기지 않을까 우려스럽기만 하다.

장묘형태는 법으로 확정짓는 것이 아닌 개인의 선택

수목장을 꺼려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전통적인 가족문화가 붕괴된다는 것이다. 그들은 수목장으로 인해 묘나 납골묘 등에 안치할 유해가 없어 가족들이 찾아갈 곳이 없는데다 후손들의 가족에 대한 관심이 점차 사라져 전통적인 가족문화가 빠르게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들의 주장이 타당하려면 우리는 새로운 장묘문화로 인해 한국의 전통적인 장묘문화가 사라져야 한다.

영국의 인류학자 E.B.타일러는 <원시문화 Primitive Culture>(1871)에서 문화란 “지식·신앙·예술·도덕·법률·관습 등 인간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획득한 능력 또는 습관의 총체”라고 정의를 내렸다. 그의 정의처럼, 문화란 쉽게 만들어지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진화해온 습관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우리는 매장 문화, 화장 문화, 산골 문화 등 수많은 장묘문화를 받아들였다. 그때 마다 우리는 문화적 충격으로 인한 진통을 겪었지만, 우리의 전통적인 가족문화는 말살되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문화의 장점은 받아들이고 약점은 버리면서 우리 장묘문화에 접목해 진화 발전되어 왔다. 즉, 장묘문화는 우리 국민 개개인의 선택에 의해 진화 발전된 것이다.

또 장례문화에 ‘붕괴(崩壞)’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국어사전은 ‘붕괴’의 의미를 ‘허물어져 무너짐’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즉 하드웨어적인 형태의 것이 무너지는 것을 의미한다. 수목장을 반대하는 자들의 말이 타당하다면 한국인들은 장묘시설을 선택하지 못하고 법이나 제도가 제시하는 시설만을 강제적으로 이용해야만 한다. 하지만 수목장이 활성화 된다고 해서 소비자들이 기존의 장묘시설을 선택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좋은 시설과 안정적인 운영이 보장된다면 개인의 취향에 따라 소비자들이 자유롭게 선택할 것이다. 따라서 반대자들이 주장하는 가족문화의 붕괴라는 말은 타당하지 않다.

장묘형태의 다양성은 퇴보 아닌 발전
둘째, 법과 제도적으로 인정받는 형태가 아니라면 우리 장묘문화가 올바로 정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 장묘문화는 타국에 비해 낙후되어 있어 법적인 제도나 절차가 없으면 비합리적이고 체계적이지 못한 형태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법과 제도는 또 다른 필요성에 의해 새로운 법과 제도를 다시 낳을 뿐 우리 장묘문화를 향상시키는데 약간의 도움은 줄 수 있지만,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역설적이게도 법을 초월한 다양성만이 장묘문화의 발전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장묘형태는 법과 제도의 잣대로 바라볼 사항이 아니라, 개인의 기본권적인 선택권에 따라야 한다.

이권다툼의 진정한 피해자는 고인과 유가족

이러한 사실들을 고려할 때 반대자들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그들이 수목장을 반대하는 진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수목장이 활성화되느냐 축소되느냐에 따라 자신들의 이해관계가 크게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새로운 형태의 시설이 주목받게 되면 기존 장묘시설은 새로운 형태와 치열하게 경쟁한다. 그러므로 경쟁력이 없는 시설을 운영하고 있는 사업자들은 시장에서 도태되고, 장례업 종사자들 또한 수입이 줄어들 것이다.

사실 이러한 상황에서 가장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시설을 이용하는 고인과 유족들이다. 고인과 유족들은 법과 제도로 인해 시설 선택에 제한을 받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고인과 유족들을 위한다면 법과 제도의 잣대로 방관하고 있을게 아니라 수목장 활성화에 동참해 우리 국민들이 다양한 장묘형태를 접하고 선택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안정성 있고, 영속성 있고, 경쟁력 있는 형태의 장묘시설이라면 소비자가 외면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제 우리 장묘형태도 소비자들의 자유로운 선택에 맡겨야 할 때다.

덧붙이는 글 | 이형웅 기자는 '수목장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모임' 기획실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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