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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야, 그 마음만으로 이미 선물을 받은 것 같아 행복하구나. 선물은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을 해주는 게 좋지? 선생님은 우리 나라가 겨울방학 동안에 잊었을지도 모를 구구단을 틀리지 않게 외울 수 있으면 최고의 선물이겠다. 선생님은 나라가 주는 100점짜리 구구단 시험지를 선물로 갖고 싶다. 나라는 뭐든지 잘 하는데 구구단 외우는 것은 좀 싫어했잖아? 3학년 때 새로운 선생님과 공부할 때 2학년 공부를 까먹어서 수학을 잘못하면 선생님 마음이 아플 것 같아서 그래."
나라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예쁜 글씨로 구구단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 사이에 1학년 아이들에게 한 사람씩 일어나 읽기책을 소리 내어 읽게 하면서 마지막 수업을 했습니다. 단급학급이 아니라서 소리 내어 책을 읽으면 다른 학년 공부에 지장을 주게 되므로 소리 내어 읽기를 많이 못 시킨 미안함을 달래주고 싶었습니다. 이제는 긴 문장도 또박또박 잘 읽어내는 1학년 꼬마들이 2학년이 될 준비를 합니다.
"1학년 친구들은 봄방학 동안에 2학년 읽기 책을 하루에 한 번씩 소리 내어 읽고 오도록 하세요. 선생님의 부탁이니 꼭 지킬 수 있지요? 이제는 언니들이 되니까 1학년 때보다 공부도 더 많이 해야 된답니다. 선생님이 준 그림일기장에 하루에 한 편씩 글도 꼭 써서 새 선생님께 자랑하세요."
"예. 선생님! "
3년을 보낸 내 고향같은 연곡분교에서 보내는 마지막 수업 날. 나는 아이들의 눈을 피하며 마음을 가라앉히느라 참 힘들었습니다. 교실 밖에서는 3학년 기운이가 붉어진 눈으로 나를 불러내고 고학년 아이들도 하나 둘 씩 내려와 눈물을 글썽거렸습니다.
송별회를 준비하겠다던 아이들을 말린 것은 그냥 조용히 헤어짐을 맞고 싶었던 선생님들의 뜻이었고 가는 선생님들보다 남은 아이들이 더 상처를 받을까 염려되었기 때문입니다. 길지 않은 3년 동안 참 많은 일과 시간들을 함께 나눈 우리들은 이미 눈물이 마음속에 고여서 아무 말도 나눌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오마이뉴스에 들어오면 언제든지 볼 수 있는 우리 분교 아이들의 추억 창고가 있어 참 다행입니다.
말 대신에 편지를 써서 책 선물에 붙여서 집으로 보내며 이 아이들이 건강하게, 아름답게 자라기를 비는 마음만 간절했던 종업식날. 첫해에 졸업을 하고 나간 제자들이 찾아와서 말없는 웃음으로 이별의식을 치르고 사진 한 장을 남겼습니다. 나라가 남기고 간 100점짜리 구구단 시험지를 연곡에서 보낸 마지막 수업의 선물로 챙겼습니다. 내 뒤를 이어 꼭 선생님이 되겠다고 약속한 나라의 꿈은 벌써부터 자라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꼭 가져가라며 종이꽃을 만들어 꽂아준 우리 반 꼬마들의 고운 손길이 담긴 스승의 날 꽃바구니도 잊지 않고 챙겨야겠습니다. 학교를 아껴온 선생님들과 학부모님 덕분에 금년에는 1학년이 다섯 명이 입학하게 되어 전교생이 3명이나 늘어나서 떠나오는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입학생이 한 명도 없는 학교가 160개가 넘는다는데 우리 연곡분교는 그래도 부자이니 말입니다. 부디 이 작은 산골분교가 아이들의 보금자리로 오래도록 아이들과 지역민의 곁에서 사랑받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연곡분교와 함께 했던 3년이 10년만큼 길게 느껴지는 것은, 아니 마음의 고향으로 남은 것은 순전히 아이들 덕분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바이올린을 켜던 순간들, 작은 음악회 풍경, 자매결연 활동으로 보람을 찾던 순간들까지 밀려와 내 발걸음을 붙잡습니다.
'얘들아, 나는 아직도 이별 준비가 안 되었으니 어쩌지?'
덧붙이는 글 | 3년 동안 구례토지연곡분교장의 삶을 마치고 강진마량초등학교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이제부터는 바닷가 아이들 이야기를 독자님께 선물하렵니다.
<한교닷컴> <에세이>에 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