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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가에서 발견한 수 백 마리의 다양한 새들
강가에서 발견한 수 백 마리의 다양한 새들 ⓒ 하호
만물을 소생시키는 봄비가 내린다는 우수(2.19)를 하루 앞둔 주말. 강서습지 생태공원을 찾았다. 한강 가장 서쪽에 위치하며 콘크리트가 아닌 둔치를 만날 수 있는 몇 개 안 되는 생태공원 중 하나. 지하철역(방화역)에서 내린 뒤 보게 된 길 주변 풍경은 지난 세월의 변화를 말해주고 있었다. 불과 십여 년 전에는 논과 밭이 전부였던 곳을 이제는 아파트 건물들이 가득 채웠다. 인간들이 삶의 뿌리를 깊게 내린 그곳을 벗어나며 우리들은 한강 하구에서만 다수 볼 수 있는 새들을 향해 나아갔다.

한강 하구에서 주로 발견되는 큰기러기
한강 하구에서 주로 발견되는 큰기러기 ⓒ 하호
공원입구 풀숲에서 붉은머리오목눈이의 둥지를 발견했다. 주먹만한 크기의 둥지 안쪽은 바깥쪽의 성긴 풀과 달리 새끼가 편안히 쉴 수 있도록 부드러운 풀로 만들어져 있었다. 새끼를 보호하기 위한 새의 모성과 용도에 맞게 자연을 이용할 줄 아는 지혜는 작은 둥지 안에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었다.

갈대와 물억새밭 사이 작은 습지를 지나 저 너머로 한강이 보였다. 강을 앞에 두고 새를 관찰할 수 있도록 조망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우리가 다가가는 작은 소리를 느꼈는지 물가에 가까이 있던 새들이 강 쪽으로 몸을 돌렸다. 새들과 거리를 유지하라는 경고인 듯 서 있는 조망대를 사이에 두고 우리는 저마다 다른 색깔로 빛나는 새들을 쌍안경 안으로 조심스럽게 맞이했다.

가까운 거리에서 촬영한 큰기러기
가까운 거리에서 촬영한 큰기러기 ⓒ 하호
댕기흰죽지의 특색 있는 댕기와 흰죽지의 붉은 머리를 강서습지공원에서 다시 만나는 기쁨. 옛 친구를 다시 만나는 반가움을 느끼는 사이 멀리 덕양산 아래 강가에 앉아 있는 황오리를 발견했다. 황오리의 화려한 오렌지 빛은 먼 거리에서도 쉽게 눈에 띄었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강가에는 수많은 새들이 앉아 있었다. 그 때 다양한 새들 사이에서 큰기러기들이 놀라운 숫자로 우리를 압도했다. 큰기러기는 일반 기러기보다 짙은 갈색의 깃털과 큰 몸집을 가지고 있으며 부리 끝에는 주황색 띠가 있다. 그들은 강 하구나 하류 부근의 습지에서 주변 농경지의 벼 낟알이나 풀을 먹으며 생활한다. 서울에서 유일하게 큰기러기들을 다수 만날 수 있는 곳이라니. 습지공원은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느끼게 해 주었다.

하늘을 날고 있는 큰말똥가리
하늘을 날고 있는 큰말똥가리 ⓒ 하호
강의 한 가운데서 민물가마우지가 힘차게 물을 차며 날아올랐다. 다른 오리와는 달리 깃털이 젖지 않게 방수제 역할을 하는 기름이 몸에서 분비되지 않는 민물가마우지. 그들은 햇빛을 흡수하기 위해 검은 몸을 가졌다고 한다. 생존을 위해 진화된 자연의 법칙을 새삼 실감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멀리서 생태교실을 찾은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그 위로 큰말똥가리가 날아갔다. 잠시 후 강둑 옆 덤불에 앉아 있는 큰말똥가리 한 마리가 다시 눈에 띄었다. 한반도에서 점점 희귀해져 가는 큰말똥가리. 우리 쪽을 향해 한참을 앉아 있던 큰말똥가리의 눈빛은 무엇을 말해주고 있을까.

급격히 수가 줄고 있는 큰말똥가리
급격히 수가 줄고 있는 큰말똥가리 ⓒ 하호
습지는 물이 흐르고 고이는 과정을 통해 다양한 생물들이 살 수 있는 서식처를 제공해 왔다. 지구 표면의 6%에 불과하지만 지구 생물종의 20%가 살고 있는 습지. 생물다양성의 보고라고 불리는 습지는 산업의 발전과 인구의 급증으로 점차 사라지고 있다. 어느 날 사람들이 욕심을 내어 더 많은 집을 짓고 한강 주변에 콘크리트 둑방을 만든다면 큰기러기는 살 수 없을 것이다. 풀숲 어딘가 풀빵구리에서 새끼들을 키우고 있는 멧밭쥐가 사라지면 큰말똥가리와 황조롱이는 이곳을 찾지 않을 것이다.

오직 한 가지 나무만 남은 개화산과 한 종류의 물고기만 사는 한강을 상상할 수 있을까? 큰기러기를 볼 수 없는 서울이 미래에 다가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우리들은 발길을 돌렸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소생시키는 봄비를 기다리며.

덧붙이는 글 | 환경운동연합 소모임 '하호'는 2000년 5월 야생동물 보호와 동물복지 증진을 위해 만들어졌다. 세대도 성별도 국적도 다르지만 환경을 보호하고 동물에 대한 왜곡된 의식이 바뀌기를 바라는 작은 소망을 담은 사람들. '하호'의 회원들은 그들의 이름대로 '하늘다람쥐에서 호랑이까지' '하하 호호' 웃으며 공생하는 그날을 희망하고 있다.

동물원의 열악한 환경에 대한 탐사를 진행해온 하호 회원은 2004년부터 서울시 조류 탐사 활동을 시작했다.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가 생태 도시로 거듭나기를 간절하게 바라는 마음으로.

'하호'는 야생동물 보호와 동물복지를 꿈꾸는 모든 분들에게 열려 있습니다. haho.kfem.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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