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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 시인일 수 밖에 없는 시인 문인수.  불혹에 등단했음에도 갈수록 그의 시심은 더 뜨거워짐을 느낀다. 그의 가슴에 마르지 않는 시우물 하나 두고 있는건 아닌지...,
천상 시인일 수 밖에 없는 시인 문인수. 불혹에 등단했음에도 갈수록 그의 시심은 더 뜨거워짐을 느낀다. 그의 가슴에 마르지 않는 시우물 하나 두고 있는건 아닌지..., ⓒ 권미강
어떤 단어를 떠올릴 때 ‘아! 그거’ 하고 금방 연상되는 단어가 있다. 그건 두 단어가 가지는 교감이 사람들에게 낯익어서 그럴 거다.

‘시인’하면 떠오르는 이름이 있다. ‘문인수’라는 고유명사 그리고 해맑은 미소. 이제 환갑을 넘긴 어르신께 ‘해맑다’라는 표현이 건방지겠지만 ‘천진난만’이나 ‘순진무구’라는 단어보다는 그래도 훨씬 세월을 덧씌울 수 있으니 할 수 없다.

필자가 늘 존경의 마음을 담아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붙이는 문인수 시인은 오규원 시인의 시를 패러디해 표현하자면 ‘시인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시인’이다. 시인이 아니면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문인수 시인이 여섯 번째 시집을 냈다.

시집이 나오자마자 요즘 세대들에겐 주목받지 못하는 문학인, 그것도 지방의 시인이 ‘내로라’하는 중앙지에서 거의 기사로 다룬 것만 봐도 이것이 결코 나만의 생각은 아닌 듯하다.

지난 2월 23일 오후 5시 대구 중심가에 있는 교보문고 5층에서는 지역의 작가들이 주축이 된 ‘문인수시인 여섯 번째 시집 <쉬!> 출간기념 독자와의 만남’ 행사가 조촐하게 열렸다.

그의 시는 하도 편해서 그냥 일상을 기록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그 편안함을 위해 시인은 얼마나 많은 시간들을 고뇌했을까 짐작이 간다.  지난 2월 23일 대구 교보문고에서 가졌던 독자와의 만남에서
그의 시는 하도 편해서 그냥 일상을 기록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그 편안함을 위해 시인은 얼마나 많은 시간들을 고뇌했을까 짐작이 간다. 지난 2월 23일 대구 교보문고에서 가졌던 독자와의 만남에서 ⓒ 권미강
‘홀로 가는 외뿔의 시심’이라는 타이틀이 붙고 환하게 웃는 시인의 얼굴이 크게 인쇄된 현수막 책상 앞에서 시인은 찾아온 독자들에게 일일이 ‘사인’을 해주었다.

환갑을 넘은 나이 탓보다는 여기저기 마음 닿는 곳이면 즉시 떠나야하는 ‘여행중독증’으로 인한 여독이 몸에 박힌 것일 수도 있는 일시 ‘수전증’을 탓하면서도 시인은 이름을 묻고 정성스레 작가의 흔적을 남겼다.

'아! 너라는 책, 깜깜한 갈기의 이 무장한 그리움! ' 한  열혈팬이 간곡히 부탁하자 즉석에서 써준 글이다.
'아! 너라는 책, 깜깜한 갈기의 이 무장한 그리움! ' 한 열혈팬이 간곡히 부탁하자 즉석에서 써준 글이다. ⓒ 권미강
그 모습이 마치 여동생과 문간에 앉아 장사 나간 엄마를 기다리며 동요 ‘뜸북새’를 불러주는 오빠의 모습 같다는 것을 나만 느꼈을까? 그만큼 문인수 시인은 서정적이며 그의 시에도 인간미가 담긴 짙은 서정성이 담겨있다. 감정으로 꾸미고 번잡한 수사가 아닌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데도 그 안에는 사람이 담겨있고 감동이 느껴진다.

인도여행을 담은 인도소풍 연작시에서도 시인은 이방인의 호기심이 아니라 같은 사람으로서 아이들, 여인, 노인 등 인도의 사람들과 그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그려냈는데 그것은 마치 한 동네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을 더듬은 것 같다.

이번 시집은 ‘동강의 높은 새’ 이후 여러 문예잡지 등에 발표한 시를 모아 낸 것이라고 한다. 원래는 3권 정도의 분량이었지만 시인의 말을 빌면 ‘서정성의 극단까지 몰고 갔다고 자부할 만한 시’를 뽑아서 한 권의 시집으로 묶은 것이다.

이번 시집이 기존에 써왔던 서정시의 연장선이라면, 내년에 준비하는 시집은 보다 현실적인 관심을 드러낸 인물스케치 등이 소재가 될 것이라는 시인을 보며 정말 어디서 흘러나오는지 쉼 없이 흐르고 마르지 않는 ‘시우물’ 하나 가슴에 숨겨둔 분이구나 싶었다. 문단의 후배들이 붙였다는 ‘폐경기를 모르는 시인’이라는 말이 결코 그냥 나온 표현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어쩌다 전화라도 하면 동생의 안부를 궁금해 하던 오빠의 반가움을 시인의 목소리에서 느낄 수 있는데 그것은 나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닌 태생적으로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지니고 있는 ‘인간에 대한 진한 애정’ 때문이리라.

우리나라 문학의 본거지라고 할 수 있는 대구에서 문인수 시인의 존재는 그 의미가 깊다. 마르지 않는 시심과 사람에 대한 애정을 담뿍 안고 있으니 말이다.

일시 ‘수전증’을 탓하면서도 시인은 독자들의 이름을 묻고 정성스레 사인을 해주었다.
일시 ‘수전증’을 탓하면서도 시인은 독자들의 이름을 묻고 정성스레 사인을 해주었다. ⓒ 권미강
‘지금 저, 환장할 저녁노을 좀 보라고’라는 문자메시지를 받고 회색의 아파트 단지에서 보이지 않는 저녁노을을 찾다가 문득 ‘인생은 자꾸, 한 전망 묻혀버린 줄 모른다. 몰랐다. 다만 금세 어두워져, 저문 뒤엔 저물지도 않는다’고(-서쪽이 없다 중에서) 노래하는 시인.

문인수 시인은 이미 그 자신이 아름다운 노을이 되어 우리가 바라보는 서쪽하늘에서 삼색조같은 화려하고 아름다운 기품들을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 * 문인수 시인의 약력
1945 경북 성주에서 태어났다. 
1985년 『심상』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1996년 제 14회 대구문학상
2000년 제 11회 김달진문학상
2003년 제3회 노작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뿔’, ‘홰치는 산’, ‘동강의 높은 새’ 등이 있으며
지난 1월 27일 여섯 번째 시집 ‘쉿!’(문학동네)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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