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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표지
책의 표지 ⓒ 전희식
나를 힘들게 하는 과거의 뿌리를 발견했을 때 먼저 드는 마음은 그것에 대한 연민과 안타까움이다. 100년의 세월 저 너머에서 이 땅에 살았던 농민들이 겪었던 아픔과 바람을 이 책에서 보게 되는데 역시 그렇다.

울분보다는 가엾음과 미안한 마음이 앞서고 따뜻한 말 한마디지만 그 괴로움을 덜어주고 슬픔을 달래주고 싶어진다. 누구나 일상에서 겪는 보통의 아픔과 힘듦이라면 그렇지 않겠지만 위기에 놓인 나라의 운명을 고스란히 짊어지고 당했던 고통이다 보니 그 후예로서 감상에 젖지 않을 수 없다.

<농민이 난을 생각하다> 166쪽에 보면 1890년 당시 함창지역 농민항쟁의 최고 지도자인 남노선의 무덤이 비석 하나 없이 봉분은 상한 채 쓸쓸하게 방치되어 있다. 반면에 같은 책 78쪽에는 당시 포악하고 가혹했던 현감 신태선의 선정비가 우뚝 서 있다.

진주에 있는 경상우병영까지 끌려가 잘린 목은 성문 밖에 걸리고 몸뚱어리는 남강변 모래사장에 버려졌던 남노선은 무덤마저 버려졌다. 무덤 언저리와 주변에는 녹다 남은 눈이 마른버짐처럼 널려 있고 신태선의 선정비에는 '애민청덕비(愛民淸德碑)'란 글자가 뚜렷하다.

덕이 있는 군주만이 덕이 큰 현감을 알아보는 것일까? 용케도 신군부가 집권한 1980년 9월에 90년 만에 땅속에서 찾아내 다시 세웠다고 한다. '백성을 사랑하는 맑은 덕'을 가진 현감인데 정작 그 고을 백성은 이 비각을 부수고 그를 내쫓았으니 고을 사람들이 배은망덕 하지 않았다면 현감의 백성에 대한 사랑법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고 저자 송찬섭은 말한다.

그는 역사학자답게 항상 차분하게 사실과 추정을 구별하여 말한다. 그러나 책 전체로는 아주 큰 목소리를 낸다. 역사가 단순히 과거의 한 사건일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해 책은 독자들을 계속 들쑤신다.

비록 항쟁은 나흘뿐이었고 근 100일에 걸쳐 싹쓸이되고 만 함창농민항쟁이었지만 이 속에는 여러 종류의 군상이 등장한다. 당시 농민봉기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으며 항쟁의 초기지도부가 폭발하는 농민대중의 분노와 열기를 어떻게 조직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했는지 실패 사레를 통해 소상하게 보여준다.

처음 이틀 동안은 요구와 공격목표가 뚜렷하여 지역민들이 다 참여하지만 교활하고 기만적인 관의 대응에 저항농민들은 갑자기 투쟁방향을 잃고 뿔뿔이 흩어진다. 이웃 문경현에서 겸관(현감이 유고중이거나 비게 되었을 때 이웃 고을 수령이 그 직을 겸한다)이 부임해 오자 고을 백성 수천 명이 마중을 나가 머리를 조아렸다고 기록되어 있다. 사회체제를 바꾸는 혁명으로 가기에는 미성숙한 민란의 수준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 겸관은 우리 귀에도 익숙한 말솜씨를 발휘한다. 그는 제일 먼저 "모든 얘기를 다 들어 줄 테다. 내막을 잘 아는 사람 몇몇이 들어와서 차근차근 말하라"라고 한다. "나머지는 집으로 돌아가 믿고 기다리라"는 말도 귀에 참 익숙하다. 농민들은 해산하고 겸관의 선처를 기다린다.

그 사이 겸관은 옥에 갇힌 항쟁주모자들에 대한 격렬한 모함과 도덕적 공격을 자행했다. 이것 역시 낯익은 모습이다. 기록에 보면 남노선에 대해서는 '귀신과 여우와 같이 음흉한 사람'이라고 했고 같은 항쟁 지도자였던 이장화에 대해서는 '태어나면서부터 교활한 사람'이라고 비난했다. 지도자 남일원 역시 '부랑하고 잡기에 빠진 자'라고 헐뜯었다.

당시 농민들의 고통에는 함창고을의 현감 신태선 개인의 악정과 비리도 한몫 했다. 그러나 근본원인은 조선왕조의 만연된 조세착취와 농산물 수탈 그리고 신분차별제도였다. 안타깝게도 거기까지 농민들은 나아가지 못한다. 새로 온 겸관에게 모든 걸 맡기고 마는데 자기들의 항쟁 지도부마저 맡긴다. 이 과정이 직접 본 듯이 세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농민이 난을 생각하다>의 송찬섭이 보여주는 역사학도로서의 성실성은 읽는 이로 하여금 100년 전의 항쟁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매력을 발휘한다. 서울대 규장각에 있는 '경상감영계록'과 '경상우병영관첩'을 뒤지고 현지답사와 후손 인터뷰를 통해 집필하였다고 한다.

당시 농업이 사회적 재부의 토대였다면 지금의 농업은 식량생산도 중요하지만 전통과 환경과 문화의 보존기능에도 무게중심이 가 있다. 농업을 포기하고 다른 나라에서 중화학과 정보기술 제품의 시장을 얻고자 하는 정부정책은 농촌을 투기장으로 전락시키고 말 것이라는 걱정들이 많다. 탈농재촌(脫農在村)이라 불리는 정부의 '전통농업이 없는 농촌정책'은 자연스럽게 농촌 본래의 가치와 기능을 상실해 갈 것이다.

농촌과 농업을 살리자는 외침 속에는 외침을 막아내자는 말이 들어있다. 농촌과 농업을 살리자는 외침은 민족의 토양과 민족의 정신을 지키자는 말과 같다. 또 물질의 노예에서 벗어나 생태의 근원자리로 돌아가자는 절박한 호소이기도 하다.

100년 전 농민들의 외침을 과거의 사건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00년 전에 해결하지 못한 역사 과제들은 여전히 오늘의 우리를 조이고 있다.

덧붙이는 글 | 다음 달 <녹색평론>에 40매 분량으로 실리는 책 두권에 대한 공동서평에서 일부인 10매 가량만 발췌하여 싣는다.


농민이 난亂을 생각하다 - 서해역사문고 2

송찬섭 지음, 서해문집(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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