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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에 몸을 의탁한 지 18년째. 하지만 그녀는 이를 악물고 사고 이전 대학을 준비하던 수험생으로 시계를 돌려놓았고 마침내 올해 06학번 신입생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중증장애인독립생활연대'에서 일하고 있는 하옥순(37, 지체장애1급)씨 얘기다. 그녀는 올해 한세대 사회복지학과에 합격해 여느 새내기들처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입학식을 기다리고 있다.
"처음엔 이런 도전 자체가 사치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장애인 관련단체에서 일하면서 정책적으로 장애인들의 요구를 반영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공부를 더 해야지'하고 마음먹었지요."
사실 그녀는 사고 이후 8년간은 바깥출입도 못할 만큼 소극적이었다. 자신에게만 이런 불행이 닥쳐왔다는 생각에 하루하루가 지옥이었다. 어린 나이에 '못 걷는다'란 현실을 받아안기에는 삶의 무게가 너무 무거웠다는 하씨. 더 무서웠던 건 걷지 못하는 것보다 '할 수 있는 게 없다'란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랜 칩거 끝에 바깥 세상에 나선 해는 98년. 한참 IT붐이 일면서 더 이상 뒤처지면 어렵다는 생각에 컴퓨터를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하씨는 배우는 과정에서 자신처럼 몸이 불편한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란 생각을 한 것은 물론 세상과의 교류가 가능한 인터넷으로 소통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그 즈음 장애인들이 다른 장애인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함께 해결책을 모색해보는 모 장애인단체의 '동료상담'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됐다. 장애인이 같은 처지인 장애인을 상담하는 것이 비장애인들이 하는 것보다 훨씬 울림이 크다는 것도 거기서 알았다고. 수료 후 그녀는 그동안 자신의 머리를 짓누르던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란 생각에서 '있다'란 생각으로 바뀌었다고 전한다.
지난 날 자신처럼 집안에만 있는 장애인들을 밖으로 불러내서 사회구성원으로 활동하게 하자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지금 하씨가 몸담고 있는 '독립연대'는 생각을 현실로 만들어나가고 있는 그녀의 '현재진행형' 활동 중 하나다.
그리고 이번 대학입학으로 두 번째 '현재진행형' 활동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장애인 특수전형이 아니라 일반전형으로 시험준비를 했던 하씨. 직장생활과 공부를 병행하면서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하지만 장애인에 대한 세상의 인식을 바꿔야겠다는 목표가 있었기에 쉬 포기할 수 없었다고 한다.
최근 젊은층을 중심으로 장애인에 대한 편견은 많이 누그러들었지만 실질적으로 장애인들이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고용'으로 이어지는 정부정책이 아쉽다고 하씨는 말한다. 자연스레 그녀가 앞으로 집중적으로 공부할 분야가 그려지는 대목이다.
얼마 전 대학캠퍼스를 다녀왔다는 그녀는 제일 먼저 눈여겨본 것이 장애인 편의시설이었다고 했다. '다행스럽게도' 편의시설이 양호하고 이동하기에도 용이했다는 평가였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란 수식어는 왠지 걸린다. 아직도 다행스럽지 않은 곳이 더 많음을 방증하는 말이 아닐까 싶어서다.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사람의 눈빛은 늘 빛난다. 하옥순씨를 보면서 드는 느낌은 더더욱 그랬다. 아무쪼록 '다행스럽게'가 아니라 '당연하게' 장애인들이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 수 있도록 그의 '열공(?)'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