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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체 : 28일 오후 1시 40분]

▲ 진수희 한나라당 의원은 지난해 4월 26일 국회에서 "매년 증가하는 성폭력 범죄를 근절하기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로 '전자위치확인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은 전자팔찌를 설명하고 있는 진수희 한나라당 의원.
ⓒ 오마이뉴스 이종호
마루타를 자원하다

대한민국에는 도대체 바람 잘 날이 없다. 한나라당 최연희 사무총장이 술자리에서 <동아일보> 여기자를 성추행했다고 한다. 그는 그 여기자가 술집 여주인인 줄 알았다고 했다. 고매하신 의원나리, 그것도 사무총장까지 하시는 분이 거짓말 했을 것 같지는 않고, 누군가 최연희 의원을 해치려는 음모로 보이는데, 검찰에서는 누가 술집 여주인을 <동아일보> 여기자로 '바꿔치기' 했는지 당장 수사에 들어가야 한다.

어쨌든 최연희 의원의 변명에서 우리는 두 가지 것을 유추할 수 있다. 하나는 최연희 의원이 평소에 식당 여주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성추행해도 된다고 생각해왔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최 의원 주변 사람들 역시 그 분과 크게 다르지 않은 그런 부류라는 점이다. 생각해 보라. 그렇게 말하면 남들이 "아, 그랬구나" 하고 이해하고 납득을 해줄 것이라 생각했으니까 그걸 변명이라고 하지 않았겠는가.

한나라당으로서는 참 난처하게 됐다. 박근혜 대표는 얼마 전 성 추행범에게 전자 팔찌를 채우자고 주장한 바 있기 때문이다. 영광의 팔찌의 첫 번째 주인이 나타났다. 듣자 하니 피해자가 원치 않아 사건이 되지 않았지만, 같은 당의 정 모 의원도 비슷한 성추행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두번 째 주인 되겠다. 의원님들이니 특별히 예우하여, 그 팔찌에 14K 금으로 나라 '국'자를 박아 드리자.

왜 성추행들을 하는 걸까? 한나라당의 분석에 따르면 대부분의 성 범죄자들은 성욕이 너무 왕성해서 그런다고 한다. 만취한 상태에서도 그렇게 왕성하다니, 하여튼 그 연세에 정력도 참 좋으시다.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해 한나라당에서 주장해 온 것처럼 이 분부터 '화학적 거세'를 해야 할 것 같다. 한참 효과에 관한 논란이 일고 있던 참에 마침 자원자가 나타났으니, 일단 이 분을 대상으로 실험해 본 후, 효과가 확인되면 확대 시행하는 게 좋겠다.

여기자만인가?

▲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일보사.
ⓒ 오마이뉴스 권우성
이 사건이 내 관심을 끄는 또 하나의 요소는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동아일보>의 독특한 방식이다. 그 자리에는 박근혜 대표를 비롯한 한나라당 의원들과 편집국장을 비롯한 <동아일보>의 기자들이 참석해 있었다. 듣자 하니 술판이 질펀하게 벌어지고 노래자랑까지 했던 모양이다. 술 마시며 감시하고, 노래하며 견제하고, 언론의 사명을 이렇게 황홀하게 수행하는 디오니소스적 언론이 세계에 또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있을 필요가 없는 자리였다. 야당에서 언론에 할 말이 있으면 브리핑이나 기자회견을 통해 하면 그만이다. 야당 대표가 자당 의원들을 거느리고 마찬가지로 자사 기자들을 대동한 언론사 편집국장과 만나 도대체 뭘 논의했을까? 아마 그 얘기는 브리핑이나 기자회견으로는 할 수 없는 각별한 얘기들이었을 게다. 마침 선거를 앞둔 시점이라 그런지 도대체 그 자리에서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도 대단히 궁금해진다.

대통령 씹는 게 국민스포츠가 되고 외려 대통령 변명하는 데에 용기가 필요하게 된 이 시점에, 그저 대통령 씹는 것 하나로 "비판언론"을 자처해 온 <동아일보>. 명색이 언론인데, 지지율이 여당의 두 배에 이르고 지방권력의 85%를 점한 무소불위의 거대정당으로부터 술 접대를 받으며, 무슨 기사를 쓰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 술자리에서 우리는 왜 신문이 한나라당 기관지 내지 선거전단이 되어버리는지, 그 이유를 적나라하게 보게 된다.

물론 동아일보에서 이 사건을 묻어버리지 않고 기사화한 것이나, 여기자가 자리를 박차고 나와 이 문제를 공론화한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동아일보가 깨달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사실 그 자리에서 추행 당한 것은 여기자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거대정당으로부터 술 얻어먹어가며 스스로 관리당하기를 자초한 기자들 전체가 어떤 의미에서는 정치적으로 성 폭행을 당한 것이다.

내놔야 할 것은

▲ 최연희 의원.(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권우성
최연희 의원이 사무총장에서 사퇴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낼 일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역시 의원직이다. 만약에 이 분이 끝까지 의원직 사퇴를 거부한다면, 국회 본회의장에 있는 이분의 좌석에 '성추행범'이라는 팻말을 붙여놔야 한다. 17대 국회에는 그 어느 국회보다 여성 의원들이 많지 않은가. 게다가 성범죄는 재범률도 높다고 한다. 팻말은 국회 내 여성의원들을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다.

이게 이 분만의 문제가 아니다. 생각해 보면 그 동안에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많았던가. 술 먹다 맥주병 던지는 의원, 남의 얼굴에 맥주 끼얹은 의원, 술집 여주인을 모욕하는 의원, 국회의장 비서실 여직원들에게 폭언을 퍼붓는 의원, 거기에 여기자 상대로 성추행을 한 의원과 사무총장. 대한민국 마초문화의 엑기스가 한나라당에 모여 있다는 사실을, 그저 우연의 일치라고 봐 넘겨야 할까?

최연희 의원이 탈당계를 제출했다고 한다. 굳이 그럴 필요 없다. 폭행을 하고 폭언을 하고 추행을 한 한나라당 의원들, 버젓이 당적 유지한다. 이것으로 보아 최연희 의원 정도면 '한나라당' 당원의 자격을 유지하는 데에는 충분해 보인다. 그 정도 도덕성이면 '한나라당' 사무총장을 맡는 데에도 족함이 없다. 그에게 결여된 것은 의원자격. 내놔야할 것은 당직이 아니라 의원직이다. 최연희 의원이 지금 할 일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 '당적 유지, 의원직 사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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