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인간은 "꿈을 꾸며 살아간다"고 말한다. 소박하게 말하자면 한 인간의 삶은 자신의 꿈을 성취해 나가는 일련의 과정이라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일상적 삶에서 잠시 시선을 돌려보면 문학을 비롯한 예술을 업으로 삼는 예술가 집단이 있으며 우리는 그들의 창작물을 즐긴다.
한 명의 소설가가 소설을 창작해 나가는 과정 그것도 어찌 보면 한 개인이 꿈을 꾸며 그 꿈을 실현해 나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 소설가 박성원이라는 한 작가가 있다. 그는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그의 세 번째 소설집 <우리는 달려간다>를 잠시 들여다보자.
소설집 <우리는 달려간다>에 실려 있는 이야기들의 소재는 너무나 낯익다. 그러나 이 소재들로 구성된 이야기들은 이 책에 실린 단편의 제목 '긴급피난'의 부제 '우리는 달려간다 이상한 나라로'처럼 독자를 '이상한 나라'로 이끌어간다. 독자를 그 이상한 나라로 빠뜨리는 것은 다름 아닌 소설가 박성원만의 대단한 흡입력과 매력일 것이다.
이 소설집에 실려 있는 단편 '긴급피난'을 잠시 살펴보자면 '나'는 폭설 속에 외진 도로를 달리다 교통사고를 내고 의식을 잃는다. 의식이 돌아왔을 때 '나'의 시선에 잡히는 것은 별장쯤으로 보이는 낯선 집 거실 천정이다.
누구나 이쯤에서 '구조를 당한 것이겠지'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소설은 우리의 추측을 완전히 빗겨간다. 나를 구조한 누군가는 복면강도라는 자신의 혐의를 '나'에게 뒤집어씌우기 위해서 구조 아닌 구조를 행한 것이다. '나'는 피해자들로부터 범인으로 지목당하고, '나'는 그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집에 불을 지른 뒤 도주하기로 한다.
이처럼 소설가 박성원의 작품 속 주인공들은 사소한 '실수'나 '선택'으로 인하여 엄청난 비극과 맞닥뜨리게 된다. 주인공들을 둘러싼 모든 비극들은 더 이상 '사건'이 아닌 그들의 자의와는 무관한 '사태'인 것이다. '사건'이 아니라 '사태'이기 때문에 소설의 스토리는 더욱 절망적이고 비극적이다.
혹시라도 이쯤에서 박성원이라는 소설가의 매력을 만끽했다고 생각하는 독자가 있다면 그것은 다시 한 번 판단 착오가 될 것이다. <우리는 달려간다>는 분명 단편으로 이루어진 '소설집'이면서 그 작품들은 서로 얽혀있다.
특히 '긴급피난'과 '인타라망'이라는 두 단편이 얽혀있는 것을 발견해 낼 때 독자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감탄뿐일 것이다. 이 두 단편들은 각기 독립된 스토리와 주제를 가지고 있는 듯하면서도 치밀한 구성으로 연결되고 있다.
'인타라망'에서 '나'는 69일 만에 의식불명 상태에서 깨어난다. '나'는 마침내 정신을 차렸고 내 시선에는 또 다른 사내가 잡힌다. 그는 누구일까. <인타라망>의 전작이라 할 수 있는 '긴급피난'에서 작가의 상상력에 패한 독자라면 꼭 권하고 싶은 말이 있다. 이쯤에서 '그'를 "나를 구해준 사람"이라는 판단만은 하지 말라는 것이다. 소설은 우리의 추측을 또 빗겨나가고 말테니까.
박성원의 소설집 <우리는 달려간다>는 형식과 기교가 매우 신선하며 실험적인 작품들이다. 이미 그의 소설집 <이상, 이상, 이상>(1996)과 <나를 훔쳐라>(2000)를 통해 독자에게 그만의 개성을 보여준 바 있으므로 박성원이라는 소설가는 낯선 이름만은 아닐 것이다. 이미 등단 십년을 넘은 중견작가이다.
그의 작품들은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중간에 위치한다. 이러한 소설의 위치는 '몽롱함'이라 할 수 있으며, '모호성'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가 소설 작품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은 '규정될 수 없는 어떤 세계', 다시 말해 '확신이 부재하는 세계'는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이를테면 꿈마저도 조정할 수 있는 세계 말이다.
"(중략) 자신이 원하는 대로 꿈의 내용을 조정하는 단계에 이르는 것인데, 그러니까 소설을 쓰는 것 같은? 아니, 아니. 마치 신이 되어 자신이 마음먹은 대로 꿈을 조정하는 거야." (p.98에서 인용)
현실에서 환상으로 어느 순간 넘어가버리는 소설가 박민규 식의 소설에 흥미를 느껴본 독자에게는 또 다른 재미의 독서체험이 되리라 생각된다. 현실은 어느새 환상이 되고, 환상은 어느새 현실이 되는, 결국 아무 것도 분간할 수 없는 카오스 속에 위치해 있는 박성원의 소설은 매우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