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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기억나세요. 직업훈련기관에서 만났던…."
"아, 예. 그렇지 않아도 기다렸습니다."

그는 작년 말에 직업훈련기관에서 취업특강을 들은 구직자다.

취업에 관련된 요즘 세태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말들을 인용하면서 '오죽하면 전쟁터에서나 쓰는 단어를 취업에도 쓰겠느냐. 남자들에게 직장은 전선이다. 돈 못 벌어 온다고 바가지 긁어서도 안 되고, 왜 그 정도밖에 못하느냐고 해도 안 된다. 힘들면 힘든 대로 서로 의지하고 다독여가며 살아야 된다'는 내용의 강의를 한 것이 마음에 와 닿았었나보다.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메모를 하던 4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중년 구직자가 쉬는 시간이 되자, 혹시 상담할 시간이 있는지 물었다. 고용안정센터로 찾아오시면 언제든지 가능하다고 했더니, 해를 넘기고 찾아 온 것이다.

▲ 개인심층상담실
ⓒ 이명숙
녹차 잔을 사이에 두고 자리를 잡는다. 마음 속에 들어 있는 여러 빛깔의 생각들을 정리하고 있는 듯, 복잡한 눈빛이다.

"그때, 선생님 말씀이 정말 와 닿았습니다. 실직을 하고 나서 가장 절실했던 것이 바로 가족의 위로와 지지였거든요. 가장 견딜 수 없는 것이 가족의 비난이더라고요."

40대 후반 남자는, 어렵게 말을 뱉으며 한숨마저 안으로 삼켰다.

"돈 벌어다 줄 때는, 당연한 것처럼 아무 말 없다, 실직을 하고 나니까, 바로 대우가 달라지는 겁니다. 이 나이에 직장을 잃은 내가 더 힘들겠습니까, 마누라가 더 힘들겠습니까?"

중년의 무게를 양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남자의 목소리에는 분노와 체념이 묻어 있다.

20대 중반부터 청춘과 열정을 바친 회사에서 20년을 근무하다 명예퇴직을 당한 지 2년. 일상이 하루아침에 무너져 버리자, 꼭 두 팔과 두 다리를 억지로 절단당해 버린 것만 같았다. 마음 갈피를 잡으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자꾸만 무너져 내리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는데, 이런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내는 재취직을 하지 않는다며 대 놓고 무시했다. 직장을 잃은 고통보다도 아내의 가시 돋친 말 한마디가 더 쓰리고 아팠다. 고통은, 사람을 폐인처럼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 지난 2년간 뼈저리게 느꼈다는 그는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았다.

97년 IMF 때도 살아남았고, 위험한 고비가 있을 때마다, 외줄타기를 하는 심정으로 견뎌냈다. 구조조정으로 회사를 떠나는 동료들을 보면서, 미안함과 안쓰러운 마음 한편에는 이번에도 살아남았구나라는 안도가 숨어 있었다. 97년 이후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견뎌낸 시간들을 꺼내서 본다면 벼린 칼 날 위에 서 있는 듯 아슬아슬하기만 했다. 살아남기 위해서 서너 배는 더 노력해야 했고,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자신을 갈고 닦아야 했다. 전쟁터 중에서도 최전방에 선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임했다.

대기업에 다닌 덕분에 월급이 적은 것도 아니었는데 아내는 늘 돈타령이었다. 그런 아내를 보면서, 야속한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가장의 책임은 자신에게 있는 거라 여겼기에 살림을 하다보면 그럴 수도 있겠지 싶었다. 해를 넘길수록 회사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줄어들었고 그럴 때마다 아이들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만, 아니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만, 버틸 수 있기를 바랐다. 그 바람은 허망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큰아이가 16살, 둘째 아이가 14살이던 2년 전에 결국 구조조정을 당했다. 메일로 통보를 받던 날, 제일 처음 든 감정은 분노였다. 그동안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데, 내 청춘, 내 열정, 가족들과 보낼 시간까지도 헌납한 채 보낸 세월이 어딘데,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분노는 불면을 불렀고, 불면은 부메랑이 되어 자신의 몸과 마음을 갉아먹었다. 20년 동안 시계추처럼 반복되던 생활이 무너져버리자 그 동안 철저하게 길들여진 몸과 마음이 허공을 떠돌았다. 분노 뒤편에는 보라는 듯이 잘 될 거야. '설마 내가 먹고 살 것이 없겠어'라며 스스로 다독이는 마음도 있었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연봉 5천만 원을 넘게 받았던 자신의 눈높이에 맞춰 갈 수 있는 곳은 없었다. 대기업에 근무했다는 경력이 자신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대기업에 다녔다는 과거가 이렇게 나를 붙잡을 줄 몰랐습니다. 하청업체를 가면 결국 내가 다녔던 회사의 동료나 후배들을 만나게 되는데 고개 숙이기도 싫고, 두 번 다시 그 회사와 얼굴 마주 대하고 싶지 않은데, 배운 것이 그것밖에 없으니, 그와 관련된 일밖에 없었습니다. 그 길을 피해가다 결국 여기까지 와 버렸습니다."

마음을 추스르며 살기도 하루가 벅찬데, 가장 위로 받고 싶고, 힘과 용기를 얻고 싶은 아내가 제일 먼저 자신에게 비난의 화살을 퍼부어대기 시작했다.

"마누라가 무시를 하니까 자식들까지 무시를 하는데 그동안 인생 헛살았다 싶으니 살기가 싫은 겁니다. 힘들 때마다 어떤 마음을 가지고 참고 살아왔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섭섭하기도 하고, 성질이 나기도 하고, 그것이 반복이 되니까, 부부싸움이 되고, 돌이킬 수 없는 지경까지 와 버렸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패배자라는 자괴감 때문에 하루하루 견뎌내기가 힘든 판국에 아내까지 그러니 하늘이 무너져 내리고, 땅 속으로 꺼져 들어가는 느낌 때문에 단 한 순간도 살기 싫었다. 집에 있는 것도 지옥이고, 밖에 나가는 것도, 마땅히 갈 만한 곳이 없었다. '눈높이를 조금만 낮추면 되는데'라고 아무리 생각을 다 잡아도, 과거의 끈을 쉽게 끊을 수 없었다.

눈과 마음을 딱 감고 자신이 다니던 회사의 하청업체에 들어가기도 했다. 하지만 근무할 때 부하 직원이었던 사람이 승진을 해서 매번 마주쳐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사소한 것까지 예민해져 있는 자신을 참을 수 없었다. 결국 6개월을 버티지 못하고, 다시 실직, 그것이 두 차례 정도 반복이 되자, 아내는 자신을 벌레 보듯 했다. 허구 헌 날, 싸움이었다.

▲ 상담중인 구직자
ⓒ 이명숙
위로와 안식처가 되어야 할 가정이, 아비규환과 같은 지옥이 되어 버렸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겉돌고, 아내는 아내대로 나라도 벌어야겠다며 밖으로 나돌기 시작하더니, 한 밤중이 되어서야 집에 들어오기 일쑤였다. 단 한번이라도 아내가 '살다보면 맑은 날도 있고 궂은 날도 있으니 힘들어도 이겨내면 좋은 날이 있을 거라'는 위로의 말 한 마디라도 해주면 어떻게든 견뎌내겠는데, 비난의 화살을 한 개도 아니고 대야 가득 쏟아 부으니 견뎌낼 재간이 없었다.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막바지라고 생각한 순간, 마지막으로 여기라도 한 번 가보자라는 심정으로 왔다며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여자들이 오면요. 제발 남자들이 실직했다고 바가지만 긁지 말고 위로도 해 주고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용기를 불어 넣어 달라는 말을 꼭 해주세요. 그게 가장 큰 힘이거든요. 우리 집 사람이 와서 선생님 강의를 좀 들었으면 좋겠어요. 어떻게든 가정은 지키고 싶은데…. 다시 시작하려는 제 의지를 꺾지 말았으면 좋겠는데…. 잘 해봐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집사람이 막무가내로 나오면 나도 모르게 막 나가게 되거든요."

직장도 아내와의 관계도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는 중년남자의 절박한 심정이 그대로 전해진다.

뒤로 물러서기도, 그렇다고 무작정 앞으로 나가기도 가장 애매한 나이가 40대 후반이다. 취업을 하는 데 있어 50대가 되면 차라리 일정 부분 포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창 일할 나이에 다니던 직장에서 하루아침에 구조조정을 당해 버린 40대의 상실감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만큼 크다. 포기하기에는 너무 이르고 무엇인가를 통크게 하기에는 위축감이 느껴지는 나이.

구직상담을 하면서 접한 중년남자들의 공통적인 하소연은, 가족간의 이해였다. 그 중에서 특히 배우자의 지지와 이해에 따라, 실직 이후 한 가정의 이정표가 확실하게 드러나는 경우를 흔하게 접한다. 실직을 기회로 삼고, 새 출발을 하게 된 배후에는 항상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준 가족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아내의 지지는 실직 이후 남편의 재기에 가장 큰 역할을 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직의 고통에다 아내의 비난까지 감내해야 할 중년의 가장. 여력이 된다면 실직자가족을 위한 든든한 버팀목이 될 프로그램을 운영해 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해 본다.

'아내 나쁜 것은 백년 원수, 된장 신 것은 일년 원수'라는 말이 떠오른 시간. 아내들이여! 남편이 힘들어 할 때, 조금만 참고, 그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면 안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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