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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세력으로부터 협박을 당하고 있음을 공개하고 있는 고유기 제주환경연대 사무처장.
특정세력으로부터 협박을 당하고 있음을 공개하고 있는 고유기 제주환경연대 사무처장. ⓒ 제주의 소리
사업자가 제출한 환경영향평가를 심의하는 제주도 통합영향평가 심의위원회(이하 제주도심의위)의 한 위원이 최근 "가족을 몰살시켜버리겠다"는 협박에 시달린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심의위원을 협박하는 세력이 심의위원이 모르는 정보조차 알고 있어, 제주도 당국과 협박 세력과의 유착의혹마저 제기되는 등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제주도심의위 환경분과 위원인 고유기 제주참여환경연대 사무처장은 2일 오전 제주도청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한라산리조트 개발사업 환경영향평가 심의 전후로 수차례 협박을 받았다"며 '가족을 몰살시켜버리겠다'는 내용이 담긴 협박편지와 전화통화 내역을 공개했다.

고유기 위원은 심의위(36명) 산하 16명으로 구성된 환경분과 위원으로 제주지역 환경단체의 추천을 받아 심의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고 위원은 그동안 각종 개발사업에 따른 영향평가 심의가 열릴 때마다 개발사업자와 이해 당사자로부터 '읍소'와 '협박'이 있어왔으나 이번 협박은 그 정도가 너무 심하다고 공개 배경을 밝혔다. 이어 이에 대해 계속 침묵으로 일관할 경우 가장 객관적이고 공정해야 할 환경영향평가 심의 자체가 특정세력의 협박에 의해 좌지우지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자신이 처한 상황을 설명했다.

희귀동식물과 곶자왈(제주도 방언으로 돌밭위에 형성된 숲이란 뜻) 훼손, 지하수 오염 문제 등을 제기하며 개발 반대운동을 벌여온 고 위원이 최근 특정세력으로부터 집중적인 협박을 받은 것은 '한라산 리조트 개발사업' 환경영향평가 심의(2월 24일)를 전후해 모두 세 차례.

첫번째 협박, 통합환경영향평가 심의 전날 밤 9시경

고 위원은 한라산리조트 통합영향평가 심의를 전후해 수 차례나 협박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사진은 지난 1월 26일 제주도청 회의실에서 열린 제1차 제주도 통합영향평가심의위원회 회의 모습.
고 위원은 한라산리조트 통합영향평가 심의를 전후해 수 차례나 협박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사진은 지난 1월 26일 제주도청 회의실에서 열린 제1차 제주도 통합영향평가심의위원회 회의 모습. ⓒ 제주의 소리
첫번째 협박은 23일 밤 9시~9시30분경 이뤄졌다. 한 여성이 집에 있는 고 위원의 휴대폰에 전화를 건 것.

익명의 여성은 "고유기씨는 나를 모르지만 나는 고유기씨를 잘 알고 있다, TV에서도 잘 보고 있다"면서 "내일 2시 지켜보겠다(심의가 열리는 오후 4시를 2시로 잘못 알고 있었던 듯함), 교도소에 갈 수 있으니 조심하라"며 심의회에 참석하려던 고 위원을 협박했다. 고 위원은 통화가 끝난 후 휴대폰 발신표시 번호로 전화를 걸었으나 '착신이 금지된 전화'라는 메시지만 나왔다고 한다.

다음날인 24일 열린 한라산리조트 개발사업 통합환경영향평가 심의위 현장에서는 개발에 반대하는 환경단체와 개발에 찬성하는 지역주민들 간에 몸싸움이 벌어졌으며 논란 끝에 '조건부 동의'로 결정됐다.

대부분 위원들이 '조건부 동의' 의사를 밝히자 고 위원은 곶자왈 지역을 꾸불꾸불한 형태로 관통하는 골프장 진입로를 변경하고 이를 위해 현장조사 실시를 조건으로 내걸었다. 이는 심의위에서 받아들여졌고, 현장조사 날짜는 추후 결정하기로 했다.

정체불명의 협박자, 심의위원도 모르는 정보까지 알고 있어

고유기 위원에게 배달된 협박 편지. 필체를 숨기기 위해 컴퓨터로 프린터했다.
고유기 위원에게 배달된 협박 편지. 필체를 숨기기 위해 컴퓨터로 프린터했다. ⓒ 제주의 소리
그날(24일) 저녁 10시7분경 고 위원에게 두번째 협박전화가 걸려왔다. "당신이 곶자왈 전문가야? 28일 나타나기만 해 봐, 가만히 안두겠어"라며 상기된 목소리로 욕설이 이어졌다.

고 위원은 당시 '28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으나 나중에 제주도 관계자로부터 한라산리조트 영향평가 조건부 통과와 관련된 '현장조사'를 실시하려던 날임을 뒤늦게 알았다. 심사위원도 모르는 내용이 벌써 특정인에게 새어나간 것이다.

이어 28일에는 제주시 연동우체국 소인(2월 27일)이 찍힌 협박 편지가 고 위원이 근무하는 제주참여환경연대 사무실로 배달됐다.

보내는 이가 '제주시 삼도리 444 정의파'로 돼있는 편지엔 가족들까지 몰살시킬 것이라는 섬뜩한 내용이 담겨져 있었다.

"까불지 마라. 네놈도 활성탄 못 팔아서 약 오르나? 24일! 너와 네 졸개들은 우쭐거리며 웃어댔지. 28일! 남의 지역에 와서, 겉으론 환경 보전합네, 지역주민 위합네 하며, 속으론 돈 뜯을 생각으로 엉뚱한 소리 지껄이면 우리는 너 놈은 물론 너 가족까지 반드시 몰살시킬 것이다. 이게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 곧 알게 되리라."

고 위원은 "이번 협박을 공개적으로 제기하기로 결정한 배경에는 이번 협박이 사업 이해관계자에 의해 의도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라고 운을 뗀 뒤, "그 저변에는 도 당국의 개발위주 행정이 작용함은 물론 이로 인해 앞으로도 충분히 재연될 수 있는 영향평가 위원의 신분보장 문제 등이 걸려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고 위원은 이어 제주도 당국과 개발사업자의 유착의혹도 제기했다. "영향평가위원인 나조차 알지 못하는 정황이나 사실 등에 대해 심의회가 끝난 당일 협박이 이뤄지고, 협박자가 현장조사 일자를 어떻게 언급할 수 있는지 여전히 의문"이라며 "영향평가심의회 발언을 모두 경청이라도 한 듯한 내용의 협박에는 섬뜩함마저 지울 수 없었다"고 당시 느낌을 전했다.

고 위원은 "이번 일에 대해 사법당국에 수사를 의뢰하는 등 법적 대응을 해나가겠다"고 밝힌 후 "제주도 당국도 이번 일에 대해 구체적인 해명을 해야 할 것"이라고 요구했다.

한라산 리조트 개발사업사 "하루빨리 명명백백 밝혀져야"

한편 이와 관련 제주도청의 한 관계자는 "고유기 위원의 기자회견 내용이 사실이라면 이는 매우 중대한 문제이나 아직 진위가 파악 안돼 뭐라고 말하기는 힘들다"면서 "만약 경찰 수사 등을 통해 사실이 밝혀지면 제주도 차원에서도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또 한라산 리조트 개발사업자인 (주)D사 측은 "마치 우리가 협박과 관련이 있는 것처럼 비쳐 곤혹스럽다"면서 "만일 우리가 관여돼 있다면 기업의 신뢰가 땅에 떨어지게 되는데 그렇게 할 리가 있겠느냐"며 자신들은 협박 사건과 무관함을 강조했다.

또한 D사 관계자는 "어떤 문제가 있더라도 통합환경영향평가 심의위원을 협박하는 일이 생겨서는 안되며 제주도 당국도 평가위원들의 신분을 보장해야 한다"며 "고 위원이 수사를 의뢰하겠다고 한 만큼 누구에 의해 저질러진 소행인지 하루빨리 명명백백 밝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교래 곶자왈은 어떤 곳?
희귀동식물 보고이자 지하수 함양대인 '제주의 허파'

▲ 교래곶자왈에 서식하는 환경부 멸종위기 2급인 애기뿔소똥구리.
한라산 리조트가 들어서는 제주도 조천읍 교래리는 신비의 숲으로 평가받을 만큼 생태계적 가치가 뛰어난 곳이다.

교래 곶자왈로 불리는 이곳은 제주 용암동굴 위에 있는 숲지대. 다양한 동식물이 서식할 뿐 아니라 빗물이 바위틈을 통해 지하로 스며드는 지하수 함양 지대로, '제주의 허파'로 불리운다.

특히 교래 곶자왈에는 멸종위기 동식물보호법상 국가가 2급으로 지정 보호하는 '애기뿔소똥구리'가 대량 서식할 뿐 아니라 세계적인 '가시딸기' 군락지이기도 하다. 가시딸기는 1914년 일본인 학자 나카이가 천지연 일대에서 처음 발견한 것으로 기록된 이후 90년 가까이 자생지가 확인되지 않았으나 최근 이 곳에서 대규모 군락지가 확인됐다.

또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국내 미 기록 종이었던 큰톱지네 고사리가 곶자왈에서 확인됐다. 또한 암뱀 고사리와 푸른개 고사리, 왕지네 고사리, 진퍼리개 고사리, 지리개관중 등 희귀식물들이 서식하고 있음이 속속 확인되고 있다.

하지만 사업자가 제출한 통합영향평가에는 애기뿔 소똥구리와 가시딸기 등이 없는 것으로 작성되는 등 부실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한라산 리조트 27개 골프코스 중 15개 코스가 곶자왈 지역이자 생태계 3등급 지역에 배치돼 있으며, 심지어는 골프장 진입로조차 곶자왈 지역을 꾸불꾸불 돌도록 계획해 놓고 있어 생태계 훼손과 생태축 단절을 우려하는 환경단체들로부터 거센 반발을 사 왔다.

이 문제는 국회에서도 거론돼 이재용 환경부장관이 직접 사업현장을 다녀갔으며, 환경부에서는 멸종위기 2급인 애기뿔 소똥구리 서식지를 보호하기 위해 정밀조사를 실시한 후 그 결과를 환경영향평가에 반영 심의해야 한다고 밝혔으나, 제주도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라산 리조트가 사용하려는 용수량도 엄청나다. 사업지구에서 사용할 용수량은 1일 6415톤으로 조천읍 전체 상수도 급수량 6157톤보다 많은 양일 뿐더러, 이중 지하수 사용을 계획하고 있는 2672톤 역시 조천읍 전체의 42%에 해당하는 엄청난 규모다. 지하수 채수량 400톤은 심의과정에서 감소됐으나 역시 엄청난 물량이다.

(주)D사가 사업자인 한라산 리조트는 이 같은 중요성 때문에 지난 2003년부터 개발을 반대하는 환경단체와 이를 강행하려는 사업자, 그리고 지역개발을 명분으로 내건 지역주민들 사이에 상당한 논란과 갈등이 이어져 왔다.

제주도통합영향평가심위는 지난 1월 26일 한라산 리조트 개발사업에 대한 심의를 갖고 '재심의' 결정, 반려했으나 한 달도 채 안된 지난 2월 24일 '조건부 동의'로 의결돼 환경영향평가 자체가 개발사업의 '면죄부'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주)D사는 조천읍 교래 곶자왈 일대 100만평 부지에 3678억원을 들여 2010년까지 27홀 규모의 골프장과 616실 규모의 호텔과 콘도미니엄을 건설할 계획이다.

덧붙이는 글 | 이재홍 기자는 제주의 소리(www.jejusori.net)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제주의 소리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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